하루 한 권 독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버트런드 러셀

by 조윤효


책 제목이 그의 인생 시간을 보여 준다. 앞으로 가야 할 길보다는 지나온 길이 더 긴 사람의 말을 듣고 싶었다. 새책이 주는 그 풋풋함과 인생을 잘 살아온 한 사람의 향수 같은 이야기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저자는 철학, 수학, 과학,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한 사람이다. 1970년에 세상과 작별을 했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언급된다. 이 책을 쓸 당시 그의 나이는 80세였다. 그는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과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하루 3000자 이상을 고치지 않고 바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휴머니즘적 감수성으로 태어난 책들은 크게 지식의 탐구와 인간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책을 경창하는 자세로 읽어 갔다. 그가 쓰는 문장들은 나 이듬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한 인간으로 한층 성장된 묵직함이 느껴진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으로 힘을 얻고, 지식으로 길잡이를 삼는 삶이다. (The good life is one inspired by love and guided by knowledge.) '라는 문장은 그의 삶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책은 자아성찰, 행복, 종교, 학문 그리고 정치에 대한 그의 의견들이 논리 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그의 첫 소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로 시작되는 글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그 공감대 때문에 책 제목이 된 것 같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 열정의 근원이다. 반전 연설로 감옥도 가보고 교회 연설 중 폭력을 당하기도 했지만 살짝 스치는 삶의 스크래치 정도로 가볍게 다룬다. 살아오면서 생기는 많은 상처들을 그의 노년의 눈과 감성은 그저 지나온 가벼운 상처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별이 빛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숫자라는 질서가 사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지배하게 해주는 피타고라스적인 힘을 파악하려고 노력해 왔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들에게 고문당하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혐오스러운 짐이 되어버린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그리고 고독과 빈곤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한 연민을 해결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고통스러워했던 삶이 그의 생애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한다. '나는 이런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이런 삶을 다시 한번 살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객관적 대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혜와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마음이 통합됨을 느끼는 시기에 쓴 글이 이 책이 된 것 같다.


세계 공동체 불행의 원인이 선택에 의한 것이라 조언한다. 행복과 생명보다 무지와 습관, 신념과 열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결과로 불행이 싹을 틔운 것이라고 한다. 제도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제도를 변화시킨다. 결국 두 분야 모두에서 개혁이 나란히 이루어져야 함을 조용하게 어필한다. 누구나 늙어 간다. 그의 사상처럼 늙어감이 아니라 성장해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그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식의 차이가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녀는 노년에 잠을 이루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새벽 3시까지 습관처럼 대중 과학 서적들을 읽으며 행복한 노년의 시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꼭 자야 한다는 습성을 버리고 그 시간에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유연함이 노년에 꼭 필요한 지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길 수 있는 두 가지 심리적 경계를 이야기해준다. 과거에 대한 부적절한 집착과 젊은 이들에게 매달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한다. 관심이 사려 깊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자애로워야 성공적으로 나이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자녀들과 손자들의 삶에 개입하지 말고 성인이 된 자녀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한다. 실수라는 것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의 일부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노인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는 것은 다소 천박해 보인다는 말과 함께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을 소개한다. '당신의 관심사를 더욱 폭넓고 공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공감이 간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잘못된 세계관과 잘못된 윤리와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이라는 말은 병든 삶에 의사 처방 같은 진단이다. 단순한 행복과 복잡한 행복, 본능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행복에 대한 멸시는 타인의 행복에 대한 멸시를 부르고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숨기기 위한 우아한 가면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공산주의자들을 이야기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고, 세계 대전을 보았기에 그가 갖는 세계관은 연민이 묻어 난다. 행복의 비결로 가능한 폭넓은 관심을 가질 것과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물들과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어떤 취미에 몰두하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명분에 헌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애정은 사람을 잘 관찰하여 그들 각자의 기질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애정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건강과 충분한 물질적인 행복의 조건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릇된 이론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생리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도 한다. 불행한 사업자들에게 철학을 바꾸기보다는 걸음으로써 행복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한다.


종교에 대한 그의 견해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각도의 시선을 선물한다. 그는 신이 나 내세의 문제들의 진실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불가지론자이다. '사물들이 반드시 출발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상상력이 참으로 빈곤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어린 시절 형성된 기억은 삶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모로부터 들어온 경우 도덕적 이유로 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증거를 찾고자 한다고 한다. 또한, 신의 존재는 이 세계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정의가 존재하기 위해 신이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믿는 강력한 마지막 이유가 재미있다. 안전에 대한 소망, 즉 나를 보살펴주는 큰 형님이 있다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큰 형님 갖은 신이 있다고 믿는 게 훨씬 유리할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종교가 강고해지고, 독단적인 신앙이 깊어질수록 그 사회의 잔인성은 더욱 커졌고, 상황은 한층 악화되었다.'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행해진 종교의 많은 실수들이 증명해준다. 수천 명이 마녀 사냥으로 화형 되었고, 종교 전쟁이 빈번이 일어났으며,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지 못해 여전히 지구촌의 한 곳에서는 서로를 향한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필요악이 되지 않기 위한 종교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의식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선일 것이다.

종교를 이성적 논리보다는 정서적 토대 위에서 받아들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며, 세상에서 오는 공포에 비굴하게 복종하지 말라는 말은 노년의 저자가 후손들에게 전해 주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조언이다. 그의 말처럼 좋은 세상은 두려움 없는 세계관과 자유로운 지성을 필요로 한다는 말에 공감이 커져 간다.


학문에 대한 그의 의견도 귀하다.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이 필요한 시대라고 한다. 우주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이론적 측면의 철학과 인생의 목적들을 올바로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는 감성적 철학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다양한 세계상들을 이해하는 연습을 하면 마음의 폭이 넓어져 새롭고 풍부한 가설들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인류는 과학과 과학적 기술 덕분에 악을 위해서는 하나가 되었지만, 선을 위해서는 아직 하나가 되지 않았다. 세계 적인 상호 파괴라는 기술은 배웠으나 전 세계적인 상호협력이라는 기술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인류가 감정의 한계 안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공감을 한정하는 습관 안에 다른 집단들에 대한 증오와 공포에 빠지는 심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지식이 앞선 시대가 역사적으로 훨씬 많았고, 그 지식과 상응하는 지혜를 발전시켜야 균형감이 생긴다고 한다. 여기서 균형감이란 어떤 문제의 중요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고, 그 각각에 적절한 중요도를 부여하는 역량을 말한다. 그래서 지혜는 전체 인간 활동 속에서 놓일 수 있도록 계산된 폭넓은 연구에 따라 교육 속에 보안되어 세계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큰 생각이다. 교육이 지식을 위한 장만이 아니라 지혜를 키워내는 장으로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은 후손들이 가슴에 담고 가야 할 조언이다. 지식과 기술이 증가 함에 따라 지혜도 더 많이 필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지식과 기술이 우리의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지혜와 지식이 함께 성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장의 삶의 지혜가 드러나는 구절들이다.

'우리의 목적이 현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세계는 과거 어느 때 보다 지혜를 필요로 하다. 만일 지식이 계속 증가한다면, 미래 세계는 지혜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탁월한 선견지명의 눈이다.


그의 마지막 글도 인상 깊다. 죽은 자를 심판한다고 알려진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 신에게 마지막 인간을 승인받기 위한 그의 변론의 편지다. 마지막 인간이 오시리스 신에게 제시하는 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역량의 범위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신께서 유예를 허락하시어 우리가 고대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벗어나 빛과 사랑과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인간 종이 보존될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가 아는 한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가능성 때문이라는 그의 말이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마무리되는 책이다. 악은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하며, 지식과 지혜가 함께 갖추어 인간 삶의 균형감을 주어야 한다는 그의 깊고 넓은 사상이 잘 드러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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