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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박홍순

by 조윤효

'그날은 온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불안한 일정이든 아니면 행복한 일정이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어이 그날은 어김없이 왔다. 삶도 마찬가지다. 노년이든 죽음이든 그날은 어김없이 올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보며 노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70대 중반 이신 엄마와 80대 중반을 넘어선 어머님의 삶을 보며 어떤 마음으로 노년을 맞이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저자의 책에서도 이야기한다. '자신의 미래에 노인이 기다리고 있으나 아는 정도지 실제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노년기 초입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80대, 90대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막연함 속에 놓인다.'


노인이 일반적으로 겪는 심리적 고통을 톨스 토이는 '인생론'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기 생존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계속 살아 나갈 수 없는 때가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다.' 노년의 삶을 단지 외적인 행위나 경제적 상황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스며드는 심리나 정신적 상황을 동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책은 나이 든 채로 산다는 것, 나이 든 채로 죽는다는 것 그리고 나이 든 채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큰 주제로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인용한 책들은 주로 소설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인간의 속 마음을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책 사이사이 소개된 그림들도 저자의 깊이 있는 공부와 융합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 중 노년의 문제를 소설 속 인물들과 그림들 그리고 저자의 사유의 힘으로 조화롭게 보여 준다.


박완서 소설 <오동의 숨은 소리여>중 손자 손녀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안쓰럽다. 먼저 간 부인이 남편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를 방관자의 눈으로만 봐야 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간섭하지 말라는 말은 그가 보기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의 사랑이다. 이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무관심의 다른 이름뿐이다.' 아무런 역할도 의미도 인정받지 못하는 생활은 하루하루 죽어 가는 시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할아버지의 독백이 쓸쓸하다. 정보화 시대는 세대 간의 단절의 절벽을 더 가팔라지게 만든다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인과 젊은 사람과의 단절뿐만 아니라 개인 간의 단절도 어느 순간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의 이야기는 슬프다. 그의 가족 그림은 삶의 애달픈 소망을 보여 준다. 1945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여자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부모를 북에 두고 월남한 그는 부인이 부친 사망으로 일본으로 간 후 4년간 재회를 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리움이 그림에도 묻어 난다. 결국, 영양실조로 세상을 뜬 그에게 가족은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시몬드 보부아르의 '노년'이라는 책에 대한 인용글도 생각을 깊게 만든다. '노년의 삶이 이전 삶에 대한 패러디가 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전형적 패러디란 손자녀를 양육하며 살아가는 노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부부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일이 없는 부모에게 삶을 패러디하게 하는 일이 많다. 나 또한 특정 시기를 어머님의 도움을 받았었기에 마음이 무겁다. 부모의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 시대별 시기별 누릴 수 있는 삶의 권리를 자식의 이기심으로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있어도, 없어도 고달픈 노년', '삶을 이완할 권리', '불안은 노년을 장식한다.'라는 소제목들도 노년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수명에 대해서만 호들갑을 떨고 소멸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인간적이라 볼 수 없다. 태어난 이상 떠날 운명을 지닌 게 인간이라면 소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인간은 드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이다.' '죽음이란 삶의 다른 이름뿐이다. 엄밀하게 보자면 모든 인간은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을 살아간다.' 저자의 사유를 통해 다시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인간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죽음에 귀 기울이면, 삶이 들린다'라는 소제목은 젊은 우리를 향한 외침 같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노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젊었던 일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 현 모습으로만 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닥칠 현실임을 쉽게 잊는다. 인생을 오직 삶만 생각하고 즐거움만 생각하며 죽음을 부정하고 미워하는 미국식 낙관주의는 죽음을 최대한 멀리하고 당장의 삶에 몰두하라는 인생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무한 성장의 이데올로기는 계속 사는 것, 즉 장수를 보장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고 한다. 현대인의 삶은 죽음에 노출되어 있으나 죽음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죽음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아니라 그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간 문제로만 받아들인다고 한다. 명확한 해석이다. '나에게는 지금도 앞으로도 위협적이지 않은 것, 언젠가는 찾아오겠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막연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 자라난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이 순종을 부른다는 이야기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오늘의 생활이 그대로 계속되리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일상의 반복 안에 자신을 맡긴다. 무한한 반복 속에 있으니 오늘의 소중함도 절실하지 않다.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나중에 괜찮아진다는 막연한 기대로 넘긴다. 기회는 다음에도 얼마든지 온다는 기대 때문이다.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에 눈을 감은 채 살아간다.' 저자의 폭포수 같은 외침이 잠든 나를 깨우는 느낌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삶에 대한 애착을 가장 크게 느낄 때는 바로 죽음을 마주 했을 때다.' , '행복은 오직 찾는 사람만 모습을 드러내다. 일차적으로 항상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오늘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과거의 반복적 삶과는 다른 전망을 찾는다. 비로소 외적인 의무가 아니라 자기 행복이 주요 관심사로 등장한다. 인간에게 행복을 실현하려는 노력은 삶 자체의 의미와 곧바로 연결된다.' 책 속의 글들이 살아 있는 지금 이 시간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다. 어느덧 흘러 지금의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누리는 방법을 생각하며 생활해야 함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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