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안다'라는 말은 쉬운 표현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과정이다. 수십 년 함께 지내온 나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은 경험과 축척된 지혜로 얻어낼 수 있는 산물 같다. 원서로 책을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수년 동안 했다. 읽다가 만 책도 있고, 사고 읽지 않은 책은 밀린 숙제처럼 마음 한편에 무게감을 주었다. 내 의지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달 아이들에게 원서 한 권을 읽고 난 후 시험을 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읽고 문제를 내야 하는 월간 업무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매달 한 권씩 읽겠다는 흐린 안개 같은 다짐이 시스템이라는 햇살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느낀다. 나라는 친구는 욕심은 많지만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훨씬 잘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을.
이번 달 읽은 책은 묘한 맛이 있다. Andrew Clements의 책들은 학교생활과 관련된 주제로 각기 다른 색을 보여준다. 우리말처럼 그의 문체 특성을 정확하게 꼬집어 낼 수 없지만 꾸준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다. 이번 책은 교사와 학생 간의 편견이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감정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소설의 장점 중 하나가 이름을 붙이기 힘든 감정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 실체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부를 누리고 사는 아이에 대한 편견, 그리고 갑자기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오게 되고 한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에서 생길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 결국 홀로 성장하는 아이의 정신적 변화 등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감정의 빛깔들이다.
주인공 Mark는 부모가 억만장자다. 부모는 일로 늘 바빠 그를 돌봐주는 러시아인 부부가 집에 함께 상주한다. 살던 집을 그냥 두고 새롭게 집을 사서 이사를 한다. 마치 유럽의 성들처럼 집 주위로 숲이 우거진 장면이 상상이 된다. 이사 오기 전에 그 큰집을 인테리어 하는 과정은 충분히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게 된다. 수십 명이 집안 곳곳을 새롭게 단장하는 과정은 조용한 마을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곳에 이사 온 외아들 마크가 학교 처음 갔을 때 당연히 호기심 어린 눈들을 끌어 들일 수밖에 없다.
3년간 정든 집을 두고 또 다른 주에 있는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어린 마크의 마음은 우울하다. 자신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그대로 새집으로 들고 가야 한다는 고집을 부린 이유가 익숙함이 허용되지 않는 환경일 것 같다. 텅 빈 그의 방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페니를 라디에이터 아래에 숨겨 둔다. 마치 자신의 일부를 그곳에 두고 가는 것처럼.
새로운 곳에 새집 그리고 집안 관리인 Leon과 Anna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바쁜 부모는 새로 정착해야 하는 집에 도착하지 않아 어린 마크가 느낄 수 있는 심리적 불안이 느껴진다. 레온이 차를 태우고 뒷문까지 열어 주는 것조차 그곳에서는 눈에 띄는 행동이라 거부하는 어린 마크의 현명함이 보였다. 5학년은 미국에서 우리나라의 6학년과 동일하다. 5학년을 졸업하고 9월에 중등교육 과정으로 들어가는 마크는 2월 학기말을 몇 개월 두지 않고 전학을 온 것이다. 아이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몇 개월만 다닐 학교에서 곧 헤어질 친구와 선생님에게 무관심한 건 당연할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접근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의 수업을 무시하고 창밖만 바라보는 그를 과학 선생님 Maxwell은 spoiled child(버릇없는 부잣집 아이)라 생각한다.
해마다 4월이면 5학년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 1주일간 숲에서 켐프를 하는 전통을 만들어 간 학교 행사는 과학 선생님인 멕스웰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 그로부터 받은 캠프 안내서와 부모 동의서를 받아 든 마크는 캠핑을 위한 준비를 한다. 자신의 집 옛 헛간으로 쓰였던 곳에서 혼자 밤을 보낸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이들과 선생님에 대한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한걸음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선입견에 휩싸인 선생님들은 마크의 변화를 무시하고 이로 인해 수업시간 동안 그를 다시 창밖만 바라보게 만든다.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달라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필요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서서히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무심히 그대로 대한다면 아이들이 시도했던 작은 용기의 불씨가 사라질 수 있으리라.
아이의 어른 같은 심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보여주는 반면, 어른인 교사가 어떻게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심리적 교차가 보이는 장면들과 교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견의 마음이 인간적이다.
캠프를 시작하며 조금씩 친구들과 소통하는 마크의 마음이 서서히 문을 연다. 친해진 Jason은 마크에게 자신이 가져온 작은 칼을 보여준다. 이때 등장한 멕스웰은 마크가 숨긴 칼을 발견하고 그에게 짐을 싸서 집으로 귀가 시키겠다는 조치를 결정한다. 'Zero tolerlance' 총이나 칼에 대한 소지는 무관용 정책이라는 학교 방침을 앞세운 멕스웰은 마크에게 배낭을 쌓아 자신의 차에서 기다리라 명한다. 멕스웰은 자신의 판단을 자문한다. 만약 다른 아이가 금지된 작은 칼을 들고 왔더라도 같은 조치를 취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그런 무거운 마음으로 관리소에 들어가 장거리 전화를 하던 도중 관리인이 칼에 세겨진 이름을 발견하고 주인이 제이슨임을 알게 된다.
한편 마크는 부당한 교사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홀로 산행을 감행한다. 그 뒤를 따라가는 초초한 멕스웰 선생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결국, 두 사람이 산을 통해 선입견 없이 서로를 도와 가며 캠프장으로 내려오는 과정이 재미있다. 아이를 부르는 교사와 소리를 듣고 도망치는 아이. 그러다가 자신으로 인해 캠프 전체가 망가질 것을 알고 다시 교사를 부르는 줄다리기 같은 심리가 제법 재미있다. 결국, 교사가 아이를 돕는 게 아니라 다리뼈가 부러진 교사를 아이가 보살피는 상황이 우습다. 읽다가 궁금해 학원에 있던 책을 들고 와서 바로 완독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책이다.
어린 마크의 자기 주도성이 보였다.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대신해서 자신이 감당하는 용기도 귀엽고, 교사의 권위주의적 명령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 내리는 과정들도 웃음 짓게 한다. 산속의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홀로 위로하는 어린 마크의 마음이 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만나 볼 수 있고, 미국의 학교 시스템과 생활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는 책이다.
인생의 사건과 경험들이 아이의 성장을 돕는 연료로 쓰여야 한다. 사춘기 문턱을 막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 한다. 홀로 이면서 함께인 경험들이 무엇이 있을까? 책을 보며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적 성장을 위한 활동들도 아이들이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게 어른인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닐까.
[재미있는 표현]
* It`s not like it matters. - 상관없다.
* You just have to tough it out. - 넌 그냥 견뎌 내야 해.
* That took some guts. - 그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 Cut him some slack. - 그 애를 그 만 좀 몰아 붙여요, 한번만 봐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