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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인생은 뜨겁게]- 버트런드 러셀

by 조윤효

한 사람의 생을 담아내기에는 600쪽 가까운 책의 두께도 모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께감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2주에 걸쳐 조금씩 그의 삶을 탐색해 보았다. 삶은 누구나에게 공평하다. 개별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삶의 공평성을 받아들이고 자신 있게 자신답게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러셀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가 걸어온 길을 길잡이 삶아 어떻게 내 삶의 색채를 발견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제대로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색채가 있다. 러셀의 삶의 색체는 밝은 오렌지 빛깔 같다. 노년의 삶까지 같은 색을 유지하는 연속적인 힘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1970년 98세의 나이로 그의 빛은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개별 인간의 찬란한 색도 우주로 들어가면 그 암연의 검은빛이 되버리듯이.....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를 거쳐 중년 그리고 노년기를 보낸 그의 인생행로는 중년 이후의 삶부터 노년기 까지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마지막까지 잘 타오르다 꺼진 촛불 같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란다. 형과의 나이 차이가 많아 형제가 생의 공간을 공유한 시간은 적다. 기숙학교 생활을 하는 형은 러셀에게 큰 위안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나이에서 오는 차이도 있으나 자유분방한 기질의 형과 기독교 정신을 강조하는 할머니 사이의 가족 기류에서 어린 러셀은 침묵이 주는 안정감을 택한 것 같다. 할머니의 두려움 없는 태도, 공공정신, 인습에 대한 경멸, 다수의 의견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배운 그는 평생 소수에 속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하기에 1차 대전시 반전 운동을 펼칠 수 있었고, 그 이후 핵무기 반대 운동의 소수의 길도 과감하게 택한 것 같다. 유년기의 정신이 노년기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집 주위로 펼쳐진 방치 되어 황폐해진 정원은 어린 러셀에게 더없이 멋진 아지터가 되어 주었다 한다. 나를 외부로부터 차단시킬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할머니 방침에 따라 그는 정규 학교 과정이 아니라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후에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 도덕 과학을 전공하고 그 만의 세계를 넓혀 간다. 그가 11살 되던 해 형으로부터 배운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의 지적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사건 중에 하나였고, 마치 첫사랑처럼 매혹적이었다.' 이때 생긴 수학적 호기심은 러셀 삶의 큰 방향을 결정 지어 주었다고 한다. '일몰을 바라보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수학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할 수 없었다.'라는 표현은 그가 수학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중학시절 미국에서 캐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이 어린 반기문에게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씨앗을 심어 준 것처럼 유년기에 접한 경험과 사람이 한평생 키워낼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그 씨 뿌리는 과정을 부지런히 해야 함을 알 것 같다.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라는 러셀의 지식에 대한 탐욕은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다. 사랑에 대한 갈망,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기둥이었다. 65세에 세 번째 부인에게서 세 번째 아이인 아들을 얻었고 80세 다시 결혼을 했던 그의 삶은 쉼 없는 사랑을 보여 준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그의 수줍음과 감수성과 형이상적 성향은 아버지 집안 레셀 가문에서 물려받은 것이고 정력과 건강과 이성적인 정신은 어머니 집안 스탠리 가문에서 받은 것이라 한다. 그의 기질이 자서전 곳곳에 나타난다. 자신의 성향을 알고 문제 삼지 않으며 러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절대적 진리에 의심을 가지는 불가지론자인 그는 청년기 종교에 대한 변화된 그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믿음이 사라지는 것과 침묵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나는 고통이 심했다.'

그의 첫 결혼은 5살 연상인 엘리스와 시작이 된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며 그의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같은 상황을 맞았던 결혼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한번 살고 있다고 느낀 장면이 인상 깊다.


화이트 헤드 부부와 3년간 '수학원리'를 지필 했지만 너무도 빠르게 인생 무대에서 퇴장해 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당혹스러웠다. 어린아이들을 세상의 무대에 홀로 두고 떠난 그들을 보며 '인간의 영혼은 모두 고독하다'라는 레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를 통해 만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도 재미가 있다. 부유한 오스트리아 유대인 부모 밑에 자란 비트겐슈타인의 자발적 가난이 인상 깊었다. 전쟁 속 참호 속에도 책을 써 러셀에게 검토를 부탁한 제자 비트겐 슈타인의 성품도 독특하다. '논리학에 빠져 있을 때는 폭탄이 터져도 알지 못했고, 그 정도는 사소한 일로 본다.'라고 표현한 그는 논리 철학이라는 학문에 큰 획을 그은 사람답다.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소련, 중국, 오스트레일리아를 종횡무진한 그의 삶의 행로는 숨 가쁘다. 늙을 틈이 없는 삶을 살아 냈다. 세계 대전을 통해 인간 본성에 깃들인 잔인성을 깨닫고, 발전된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어떤 공멸을 주는지에 대한 자각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로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힌 이야기와 핵무기 사용 반대 단체인 CNP 조직을 만들어 세계적인 과학자들의 서명을 받아내기 위한 과정 또한 잘 소개되어 있다. '나는 인류가 좀 더 덜 고통스럽게 사는 법을 깨치게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지혜의 비법을 밝혀 내고자 애썼고, 그것들을 전 세계가 귀 기울이고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게 선포하고자 했다.' 과학적 방법을 동원했을 때 전쟁이 인류에게 미치는 해악이 얼마나 더 커질지를 세계인들에게 알리고자 한 그의 쉼 없는 노력을 보여준다. 결국, 핵무기 반대를 위한 '아인슈타인 - 러셀 선언'을 만들어 낸다.


아인슈타인과의 인연도 짧게 소개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러셀을 '자신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대중의 계몽과 교육에 활용해 온 사람이다.'라고 표현했다. 러셀의 삶은 점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행로를 걷게 되고, 실제 세계적으로 그의 이름이 많이 알려졌었다고 한다. 1950년에 노벨 평화상을 탄 것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책을 탄생시켰고 그가 가진 사고의 명료성들이 그의 존재감을 더욱 키워 나간 것 같다. 공산주의와 비공산주의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구 소련 대통령인 흐루쇼프 서기장과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 하워에게 편지를 보내는 실천적 지성인의 모습도 아름답다. 그의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도 교훈이 된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나라들을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중립 국들이 국제 정세에 이성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그는 이념보다 인류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리고자 노력했다.


위기일발에서 벋어 나기 위해 새로운 사상, 새로운 희망, 새로운 자유 그리고 그 자유에 대한 새로운 제한이 필요하다는 그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함을 보여 준다. 세계 정부를 지향했고, 희망을 지키기 위해 지혜와 정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삶의 화두를 보여 준다. '끔찍한 것들로 세상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세상과 우주와 인생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공산주의 , 파시스트, 나치즘에 대한 이념들이 인류를 뒤흔들었고, 그들을 격파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보존하고자 애써 온 많은 것들이 상실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성찰이 연속인 일상을 살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는 이야기한다. 역사를 편견 없이 쓸 수 없는 이유가 편견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편견을 갖지 않고서는 재미있는 역사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편견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후세에 맡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참으로 크게 살다가 간 사람 같다.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고 하나 존재의 무게감을 견뎌내고 지탱해가는 것 또한 힘든 과정임을 레셀의 삶은 보여준다. 그의 무게감 있는 삶의 행로를 보며 이타적 삶에 대한 그 큰 바다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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