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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Aug 26. 2022

하루 한 권 독서

[친절한 조선사] -최형국

조선검 전수관에서 글을 마침이라는 머리글과 책 시작 전의 저자 소개가 독특하다. 그에게 문무예를 겸비한 괴짜 실학자라는 칭호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이해가 갔다. 저자는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조선시대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고 작은 기록이라도 소중하게 잘 꺼내 그 시대를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크고 중요한 일만이 역사 기록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소시민 이야기와 작은 일상 또한 가치 있는 공부가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어느 시대든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역사를 이해하고 안다는 것은 미래를 이해하는 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삶은 그 모양과 색채는 달라 보여도 결국 끊임없이 같은 궤도를 굴러가는 수레바퀴 같다. 그의 책은 왕들의 소소한 이야기, 역사 속 소시민 이야기, 조선시대 동물 이야기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무겁게 독서하는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두고 책들 사이사이 전해 주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의 다독임을 느끼며 일독했다.


 사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왕과 관련된 일화들이 신선하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기록해야 했던 그들은 초창기에는 땅을 향해 거의 엎드리듯 글을 썼다고 하니 나이 지긋한 사관에게는 직업병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결국,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 앉아서 글을 기록하도록 허락을 받았으니 저자의 말처럼 사관들이 모여 잔치라도 벌였을 것 같다.


 소시민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 신윤복의 작품이 정겹다. 그 시대의 일상을 글로도 볼 수 있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가 그린 그림과 저자의 이야기가 잘 어울려 독자의 이해를 한층 도와준다. 물론, 김득신이나 박물관에 소장된 그림들도 소개가 되어 있지만, 유독 신윤복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난다.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아내었을까. 환영받지 못한 업을 가진 그가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내 시대가 지날수록 가치를 발휘하는 일을 해낸 것일까.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골프와 비슷한 격구가 있었다고 한다. 말을 타고 격구를 하는 그림을 보니 역동성이 조선의 또 다른 모습임을 알 것 같다. 세계사를 보면 한 왕조가 500년을 지속한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조선 500년은 가치 있는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세종 대왕이 그 긴 역사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좋은 발판을 마련했다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뚱뚱한 세종 대왕도 격구를 즐겼다는 표현은 의외였다. 해박한 학식에 책을 읽는 정적인 활동만 연상이 되었던 왕이었는데 직접 말을 타고 격구를 즐겼다고 한다. 절대 권력자인 왕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신하들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고 한다. 도교 사상인 경신일은 60일마다 년 6회가 돌아오는데 이는 몸속의 삼시충이 나와 천제에게 잘못한 일을 일러바친다고 한다. 그래서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 장수한다는 이유로 밤을 세가며 경구를 즐긴 세종의 이야기는 의외다.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놀고 싶었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것 같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주요 과목이 격구였다고 하니 놀이와 군사훈련을 잘 결합했던 선조들의 지혜로움도 보인다.


 세종의 노예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파격적이다. 아이를 낳은 여자 노예에게 90일의 출산 휴가를 주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 또한 부역을 하지 않고 30일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고 하니 오히려 오늘날보다 더 앞선 복지 정책을 실행한 것 같다.


 비록 중국에서 화약의 비법을 배워왔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조선화된 특수 화약 무기를 만든 최무선과 그의 아들 최해산의 이야기도 인상 깊다. 중국이나 일본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불꽃놀이를 보여 주었고, 그들의 감탄사를 받았다고 한다. 화약 기술의 발전은 무기의 발전 기술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종국에는 불꽃놀이를 사신들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상소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조선시대 화약 제조법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것 같다.


 홍어장수 문순득의 이야기도 놀랍다. 일본에 표류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신 필리핀으로 표류하게 되고 그들의 언어를 배워 조선으로 돌아온 그의 용기와 배짱이 후에 조선에 표류한 필리핀인들이 본국이 어디인지 돌려보낼 수 없어 9년 동안이나 조선에 채류 되어 있을 때 그가 필리핀 언어로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조폭과의 전쟁이 있었고, 한류의 기원인 조선 통신사의 마상재 팀은 배용준 '욘사마'의 인기를 능가했다고 한다. 말위에서 다양한 동작을 보여주는 자료나 마상재 팀의 출현에 일본이 들썩일 만큼 요란했음을 보여주는 그림들도 흥미롭다. 17세기에는 앞선 문명을 자랑한 조선의 글이나 문장보다 마상재의 마재인들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하니 그 시대부터 한류의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슬픈 역사인 임진왜란 이야기 속에 중국이 보낸 흑인 용병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흑인들은 그 시대에도 용병이나 노예로 외국에 나가 싸웠던 것 같다. 그들의 활약사가 사료에 소개되지 않은 것을 보니 큰 역할을 못했을 것 같다.


 코끼리를 선물로 받은 조선은 그 관리에 있어서 큰 골칫거리였음을 보여준다. 먹는 양이 많아 고을마다 돌아가며 코끼리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빡빡한 서민의 삶에는 짐이었으리라. 코끼리에 밟혀 죽은 하인으로 코끼리도 귀양을 갔다고 하니 우습다. 처음 보는 낙타에 사람들이 놀라고 그림 속에 낙타가 등장한 것을 보니 조선 시대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음을 알 것 같다.


 흥선 대원군 시대의 무명 갑옷 이야기와 지금 시대의 비행기와 같은 비거, 날아다니는 배라는 비선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정조 대왕이 낀 안경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겨울에 얼음을 다음 여름까지 보관하기 위해 동원된 서민들의 고난한 삶도 그 시대의 한 단면이다. 정양용이 제안한 실질적으로 얼음을 만들고 보관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 또한 역시 실학자 다운 면모를 볼 수 있다. 학문이라는 지식이 삶이라는 터전에 지혜로 자리 잡을 때 그 지식이 빛이 됨을  다시 한번 느낀다.


 허균이 자신의 누나인 허난설헌과 비교할 정도록 뛰어난 여류 시인 이옥봉의 이야기도 애잔하다. 이옥봉의 시는 맑고 기상이 드높아 군더더기가 없다는 찬사를 받지만 서출 자식이라 결혼하지 못했고 양반가의 첩으로 살아가지만 다시는 시를 짓지 않는다는 조건을 어겨 결국 자신이 쓴 시들을 몸에 감고 물속으로 뛰어든 그녀의 삶이 가슴 아프다. 소도둑으로 몰린 사람을 구명해주기 위해 10년 동안 쓰지 않았던 시로 그의 누명을 벗어나게 도와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죽음을 선택하지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 이옥봉 그녀가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떠했을까. 시대와 사람은 하나의 그림이다.  시대에 따라 개인이 가진 재능이 만개한 꽃이 되기도 하고 피지도 못하고 꺾이는 꽃이 되기도 한다.


 조선의 다채로운 삶이 잘 녹아 있어 즐겁게 읽은 책이다. 삶의 소리는 비슷하다. 단지, 이를 어떻게 삶의 화음으로 만들어 가는지는 개인의 역량인 것 같다. 조선 그 긴 시대의 길가를 산책한 느낌을 준 책이다. 저자의 독특한 관심사 덕분에 조선의 작은 일상을 맛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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