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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Sep 02. 2022

하루 한 권 독서

[피부는 인생이다]- 몬터 라이먼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들 보고 있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 딩거의 인용글이 저자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 같다. 18세기까지 피부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장기처럼 대우를 했던 것이다. 피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저자는 이야기 한다.

더 젊어 보이고 더 아름다워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책이 아니다. 피부의 근본적 이야기다. 10개의 단락들의 제목만 봐도 책의 무게 중심을 느낄 수 있다. 만능 기관, 진드기와 미생물의 천국, 직감, 빛을 향해, 피부 노화, 첫 번째 감각, 심리적 피부, 사회적 피부, 피부가 일으킨 분열, 정신적 피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피부색이 갖는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드는 소재들이다.


 의대 입학 후 첫 시험을 앞두고 가려움과 습진으로 고생한 저자는 곧 피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만나는 일상적 일들이 때론 이렇게 한 사람의 전생을 깊이 있게 이끌 수도 있다. 독자의 시야와 생각을 넓혀 주는 등대 같은 책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다.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인체의 표면인 피부가 마음의 기능에 그리고 인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의 이론 '피부가 존재의 중심이 된다'라는 말은 책을 읽고 난 후 완벽한 공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조용하게 사색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의학적 설명으로 난해한 부분이 있지만, 뒤로 갈수록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피부가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돕기도 하지만 피부병이나 인종차별로 인간 분열을 일으키도 한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피부가 철학과 종교, 언어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를 외부로부터 보호해 주는 피부는 피하조직, 건피, 표피로 구성되어 있다. 표피는 기저층, 가시층, 과립층, 각질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위대한 일들은 작은 것들이 여러 개 모여서 이루어진다.'라는 빈센트 반 고의의 인용글이 우리 피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피부는 2킬로그램 정도지만 그 표면에는 1,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즉, 우리의 피부가 어떤 생명체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각각의 미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가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손을 볼 때마다 얼굴을 볼 때마다 그들을 대면한다면 삶의 균형이 깨질 것이다. 신이 적당히 인간의 시력을 조종해 두셔서 다행이다.


인간은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 운동 보다 특효약에 더 매력을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건강식품 시장이 이런 인간욕구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말에 백배 공감한다. 어느 순간 건강식품에 대한 당연한 소비를 해오고 있다. 낚인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피부는 이카루스의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중도를 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안 된다.' 피부와 태양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했지만 그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에 최초의 선크림을 개발했다고 한다.


 비타민 D는 햇빛을 통해서도 합성이 되지만 음식을 통해서도 섭취해야 한다고 한다. 고양이나 개 또한 음식을 통해 비타민 D를 섭취해야 한다고 한다. 털 아래 피부 기름이 햇빛에 노출이 되면 콜라겐이 비타민 D로 변해 그사이로 올라오기 때문에 자신의 털을 햝는다고 한다. 즉, 털을 햝고 있는 애완 고양이나 개들은 생존을 위해 비타민 D를 열심히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 소개된 헉슬리의 소설 '세계국' 사람들은 내부 장기는 늙어 가는데 외모는 영원한 30대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젊음에 대한 인간 욕망을 보여 준다. '인류는 노화와 전쟁 중이며 피부는 최종 전투가 벌어지는 싸움터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헉슬리의 책을 통해 저자가 느끼는 마음도 잘 전달되어 온다. '주름이 치료되어야 하는 문제 일까? 아니면 나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까?'라는 의문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 책을 읽는 나도 잠시 책을 내려 두고 함께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이 마감되고 죽음이 찾아오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피부가 우리에게 죽음과 맞서 싸우라고 종용한다.' 탁월한 표현이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삶을 오롯이 살지 않는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저자의 질문은 오로시 젊게 보이기 위한 노력에 취중해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다. 살아있는 동안 삶을 오로시 살기 위해서는 나이에서 오는 주름을, 나이 들어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일상적 촉각이 사회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웨이터가 손님의 팔에 살며시 손만 올려도 팁이 20%나 올라간다고 한다. 주방장이 면접자를 대할 때 면접자가 내민 서류가 두툼할수록 지원자를 고용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포옹은 옥시토신, 엔도르핀 같은 '행복'을 느끼는 호르몬과 여러 종류의 강력한 분자를 배출하기 때문에 유대 관계를 깊이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 전의 고도원 씨의 포옹 캠페인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통한 정서적 안정감을 위한 그의 깊은 생각이었음을 알 것 같다. 아기와 엄마의 피부 접촉의 치유 효과와 치매노인에게 해주는 마사지가 인지기능과 정서 기능을 올려준다는 촉각의 이야기도 읽는 재미를 준다.


 유럽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의 미라 '얼음 인간 외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피부가 갖고 있는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낀다. 45살인 그의 몸은 61개의 작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문신의 80%가 중국 정통 의학 경혈점과 일치했다고 한다. 문신을 반복해서 세기면 오히려 면역기능을 증대해서 흔히 발생하는 감염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그 시대의 인류도 알고 있었다. '내 몸은 나의 일기장이고, 내 문신은 나의 이야기다'라는 문신을 즐긴 조니 뎁의 인용글이 이해가 된다. 마오리족의 얼굴 문신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 재산 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가슴팍에 '심폐 소생술을 하지 마시오'라고 문신을 세긴 환자의 의견이 존중되어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피부를 통해 외부에 내가 원하는 바를 전해온 조상의 지혜를 본다.


 피부가 일으킨 분열에 대한 이야기는 씁쓸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을 일으킨 정해진 자연적 피부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단 1밀리미터 두께에 멜라민의 양 같은 사소한 요소가 어떻게 이토록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주었을까라고 질문하는 저자의 의문에 꼭 같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이주를 통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도나 먼 곳에 자외선이 작은 곳으로 이주하면서 피부색이 옅어졌다고 한다. 타고난 피부 색소의 양차이를 표시하는 세계지도와 미국 항공우주국 위성에서 촬영한 지구 자외선 노출 농도를 나타낸 지도가 일치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피부는 내적 존재와 바깥세상을 분리하는 울타리가 되어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타인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기능은 피부를 사회적 무기로 만들었고 인류를 괴롭힌 두 가지 강력한 힘에 이용됐다. 바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열망과 힘을 얻으려는 욕망이다.' 우리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를 정의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진화 과정에서 생긴 멜라닌 양의 차이가 피부색을 다르게 했고, 한 색깔의 피부에서 시작된 인류가 다양한 피부색을 갖게 된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이 '다름에 대한 존중'임을 깨닫는다.


 '인체를 보호하는 피부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과 내적 자아가 분리된다. 세상에게서 우리를 지키는 방어막인 동시에 세상과 접촉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피부가 갖는 의미가 생각보다 깊다. 세상과 나의 경계에 서서 나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 중 하나가 피부다. 세상에는 우리의 인식이 닿지 않는 좋은 정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책이 그 인식의 깊이와 넓이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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