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겉표지에 멋스럽게 한 가닥으로 머리를 묶은 예쁘장한 이수의 일기는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4남매 중 장남으로 생각이 아름다운 어린 철학자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일상과 사색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시에 '걸어가는 늑대들'을 만들어 미얀마 난민학교, 아프리카 친구들, 제주 미혼모 센터에도 도움을 주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동화작가다. 8살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사색과 성장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마치 어릴 적 만났던 '큰 바위 얼굴'이라는 동화 속 주인공 같다. 결국, 바위에 조각상인 사람을 찾던 아이가 자라 자신이 그 인물이 되듯이 저자는 세상을 조금 더 따듯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큰바위 같은 어른으로 자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이수의 엄마가 궁금했다. 어떤 가정의 그림을 그녀는 꿈꾸었을까. 그리고 어떤 가정을 아이들에게 안겨 주었을까. 책을 읽고 나서 유튜브로 이수의 삶을 살펴보았다. 엄마 또한 동화 작가이고 자신의 아이들 이수, 우태, 유담이 셋과 정신 지체가 있는 가슴으로 낳은 딸 유정이 까지 따뜻하게 품어내는 그녀의 인품이 이수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엄마처럼 일상에서 피어나는 사색들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보고 그림을 그려내는 이수의 삶에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색을 본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색이 아니라 수수하지만 뒤에서 다른 사람들의 색을 바쳐주는 수수한 색채가 느껴진다.
어떤 가정을 꿈꾸었던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제대로 했던가. 이수네의 집을 보며 결국 가족이란 사랑으로 서로의 성장을 돕고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과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구성원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수의 언행과 행동을 보고 그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지길 꿈꾸는 아이의 푸른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가족 그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가끔씩 불어 닥치는 폭풍우들을 잠재우는 따뜻한 태양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과감하게 항해할 힘이 나는 이유가 마지막 휴식처인 가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르치려 들지 말고 자유로운 생각을 존중해주고 그 편안한 안식처를 만드는데 노력해야겠다.
이수의 일기 중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 '로큰롤 인생'을 보고 그 극 중 배우의 대사는 죽음에 대한 이수의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킨다. 공연을 위해 춤을 연습하던 영화 속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지만 그는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난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어.'라는 대사를 만난다. 그리고 이수는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서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닐까?' 이수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영화와 책 그리고 그가 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들이 책을 통해 내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게 한다. 존재할 수 있는 그 시간에 행복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복이다. 그 복에 욕심을 덧칠해서는 안된다.
'노 키즈 존 No Kids Zone'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에서 거절당하는 이수 가족의 일화를 읽으며 함께 속이 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 하는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 그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어른들은 잊고 있었나 보다. 어른들도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별생각 없이 가끔 들어봤던 말이었지만 이수의 글을 보니 편협하고 이기적인 어른들이 만들어 낸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브 스필 버그가 제작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묻는 질문을 책에 잘 인용한 이수의 글이 더욱 가슴 한구 석을 무겁게 한다. '아빠, 왜 개와 유대인은 가게에 들어 갈 수 없어요?'
어른인 우리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게 선을 긋고 다름을 부정하고 그리고 삶의 경계선을 만들어 낸다. 노 키즈 존과 노 유대인에 대한 그 뒤에 깔린 생각은 안타깝게도 사랑이나 존중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이수의 생각도 존중할 만하다. '행복해 지기 위해 하는 많은 일들 중에 그 하나로 인해 다른 꿈들이 방해받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귀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면 슬플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사색의 도구로 글을 써내려 가는 이수는 마치 인도의 영적 시인인 타고르를 연상시킨다. 타고르의 시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겸손과 신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삶에 대한 감사함이 이수의 글에서도 느껴진다. 곧 거대한 거인으로 우리 곁에 이수가 드러날 것 같다.
이수의 일기를 통해 이수의 엄마가 들려주는 조언과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빈 배'에 대한 이야기는 이수에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자연스럽게 스스로 터득하게 해 준 것 같다. 두 배가 부딪쳤을 때 그 부딪친 배에 사람이 없을 때는 화를 내지 않고 있다가 사람이 타고 있을 때는 서로 싸우고 화를 내게 된다고 한다. 빈 배가 되고 싶다는 이수의 말에 제법 울림이 있다.
정신 지체가 있는 동생 유정이를 보고 '우리를 대신해서 아파주고 있다'라고 표현해주는 엄마를 통해 이수가 마음으로 동생을 받아들이도록 도운 것 같다. 동생 유정이의 표현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마음을 전기 충전으로 표현한다. 자신을 충전하는 전기가 없으면 죽는다고 한다. 어린 유정이가 오빠 이수에게 말한다. 엄마는 운동할 때, 아빠는 우리를 놀릴 때, 이수 오빠는 밥 먹을 때, 유정이는 영화를 볼 때 전기가 충전된다고 표현한다. 마음 에너지에 충전을 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주기적으로 충전하고 있는가. 가끔 잊어버린다. 충전하는 일을.....
이수 엄마의 고향에서 만난 시장 사람들을 통해 꼬마 철학자는 새로운 사실을 본다. 부침개를 팔고, 감을 팔고 콩국수를 팔며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 또 살아가는 더 높은 가치인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철학의 도구로 삼는다. 이미 우리는 신이 주신 선물을 가득 가지고 있다. 양손 가득한 선물을 내려두고 관찰할 시간보다는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양손의 선물을 껴안고 공간을 만들어 내려고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수의 읽기를 통해 엄마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부모인 동화작가부부 김나연, 전기백 씨를 통해 어떤 가정을 가족에게 선물해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삶이라는 그 큰 선물을 가지고 일상을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된 것 같다. 성장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 성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즐겁다. 이수의 더 큰 성장이 기대된다, 영혼이 자유롭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배움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작은 철학자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