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들어온 책 제목이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났다. 얼룩진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책과 인연을 맺었다. 거인과 난장이라는 대립구조가 상징하는 그 크기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 거인을 꿈꾼다. 거인을 꿈꾸는 난장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 안에 든 작은 공을 거인의 키만큼 던져보는 일은 아닐까.
소설이지만 인물 구도도 조금 혼란스러웠다. 각자의 개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넋두리처럼 해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 작은 이야기들을 묶어 소설이 된 것이다. 내가 만난 소설 형식 대부분은 일관된 화자가 한 목소리고 이야기 한다던가 또는 같은 사건을 다른 두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몇 명의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어 느긋하게 생각 없이 읽다가는 페이지를 자꾸 앞으로 돌려 읽게 된다. 최인후의 <광장>과 같이 한국 근대 소설의 고전이라 불릴만한 책이라는 서평을 통해 책의 깊이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문 해력의 수영실력이 더 나아져야 함을 느낀다.
1976년에서 1978년까지 연재되어 오던 글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하나의 다리라는 완성된 책이 태어났다. 그래서 그 시대의 흐름을 좀 더 밀도 있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급격한 탄생으로 사회라는 세상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지 못해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마치 임산부의 산통처럼 진통을 겪고 오늘날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난장이와 꼽추 그리고 앉은뱅이는 분명 사회적 약자이다. 이들은 신체에서 오는 삶의 불합리한 구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다. 세상은 이들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이들 또한 그런 세상을 따뜻하게 보지 못한다. 극 중 난쟁이는 달나라로 가서 일하는 꿈을 꾼다. 세상이 자신들을 버리듯이 그는 달을 통해 이상 사회를 꿈꾸며 세상을 버린다. 그의 자식들인 영수, 영호, 영희는 그런 세상에 부모와 함께 온 비를 맞는 듯한 느낌이다. 10대인 그들이 만나는 사회는 강제 철거되는 집, 공장에서 수시간 약을 먹어가며 뜬눈으로 일해야 하는 노동자 그리고 좌절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난쟁이 아빠를 보여준다. 삶의 무게가 가속되는 이들의 일상에 꿈은 사치가 되고,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아픔이 보인다.
반면 자본가의 자식인 윤호와 재벌가 경호의 내면 이야기를 통해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대립 집단이 묘한 이질감을 준다. 작가가 책을 쓰던 시절에서는 이런 불평들이 발전이라는 허울로 가려져 노동자의 희생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으리라. 지구촌의 어떤 나라들은 아직도 이 과정을 밟고 있으리라. 그때를 보고 지금을 보니 우리도 모르게 사회의 의식들이 아이가 자라듯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야 하는 일차적 목표를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가난과 불행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난장이 아버지와, 그 불합리성을 온몸으로 외치며 행동으로 나서는 적극적인 난장이 아들 영수의 이야기를 슬픈 이중주로 들려 준다. 결국, 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의 의지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살아 낸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난장이 가족과 풍요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가진자들의 흔들리는 독백이 독특하다. 부족하던 넘치든 삶의 소리는 요란하다. 변하지 않을 듯한 세상을 포기하고 순종하느냐 아니면 비록 작지만 변화라는 다리에 작은 돌이라도 되어 자신을 던지는 용기를 가지든 그것은 한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용기를 낸 작은 돌들이 쌓여 결국 성을 짓고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그래서 그 뒤를 밝고 따라오는 우리들에게 안전한 삶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작은 개인의 용기들이 모여 산을 이루는 것이다. 나하가 변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소심한 푸념보다는 나하나라도 변해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산을 이루어 낸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시대가 있는 것 같다. 삶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실천한 작은 난쟁이들이 거인 제국을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책의 제목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사회적 약자인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은 그의 아들 영수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기계를 다루듯이 노동자를 대하는 회장을 죽이려 하지만 결국 그를 닮은 회장의 동생을 살인한다. 영수라는 작은 공을 난장이가 사회에 던졌지만 그의 작은 돌이 균열을 만들어 내고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욕심의 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어둡고 슬픈 역사이야기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부당함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과 긍정성이 태어남을 알 것 같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가 마주할 때 가치가 있다. 다양한 책을 통해 시대가 걸어온 길을 알아 갈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작은 난쟁이가 쏟아 올린 공이 헛되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