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중고서점에서 산 책은 오랫동안 순서가 밀려 있다가 휴대폰 들여다보는 대신 책을 들여다보자는 작은 결심이 선 날 읽은 책이다. 하루 2500번 휴대폰을 만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작은 시간들이 소리 없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책에 사진이 있는 게 아니라 사진에 글이 있다. 세계 각국을 여행한 여행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저자가 만난 사색의 중얼거림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삶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리고 인생이 담긴 사진들과 저자만의 독백이 잔잔한 평화를 준다.
저자는 아마 사랑을 할 나이쯤에 사진을 찍었나 보다. 책 속에 연인들의 입맞춤은 아름답다. 나이에 따라 삶의 관심이 달라진다. 결혼할 짝을 찾는 시기는 사랑이 삶의 중심이 된다. 중년은 살아온 세월보다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인생의 길이를 가늠하고 건강과 행복한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한다. 노년 삶의 관심은 무엇일까? 유아기적 관심이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인생의 길을 되짚기에는 뭔가 빠진듯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 먼 훗날이었던 시간을 벌써 지금 살아가고 있다.
첫 그림의 '배'는 왠지 사람을 상징하는 것 같다. 겨우 한 명 정도 않을 수 있는 작은 빈 배들이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함께 있지만 곧 배들은 각자의 바다를 항해할 것이다. 저자의 글 중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바다에 우리의 몸을 맡겨 흘러가는 것 자체가 열정적 삶이다.
저자는 스페인, 멕시코, 중국, 티베트, 페루, 이탈리아, 캄보디아, 인도, 영국, 루마니아..... 셀 수 없이 많은 나라를 나그네의 모습으로 또는 단기 체류자의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냈다. 카메라가 담아낸 사진들 속에서 저자의 사념이 보이는 듯하다. 왠지 사진을 찍고 글을 써보는 취미를 가져보고 싶게 만든다. 지구 곳곳에 살아가는 삶의 소리는 무엇인지 모를 닮음을 안고 있다. 칼라 사진도 있지만 흑백의 사진들이 더 매력적이다. 단 몇 가지의 색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성을 담고 있어서 일 것이다. 인간은 원래 단순한 것을 좋아해서 그럴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3인칭 관찰자로서 이야기하는 듯한 표현들이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을 주기도 한다. 사진과 저자의 사색들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연극 한 편도 만난다. 맹인 여자와 말 못 하는 남자의 마주침은 쓸쓸하다. 말하지 않는 남자에게 소리 내서 말하는 여자 그리고 자신을 볼 수 없는 여자를 위해 그녀 손바닥에 글을 쓰는 남자는 여자가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여자의 마지막 독백,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군요.....'라는 대사가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같이 떨어진다.
멕시코 이발사의 배려도 기억에 남는다. 면도를 해주는 비누 4가지를 손님에게 선택하게 하는 작은 배려와 전문성이 따뜻하다. 소박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최고로 살아가려는 작은 의식 같다. 마추픽추에서 옥수수를 파는 청년의 이야기도 흐뭇한 미소를 만들어 낸다. 옥수수를 다 먹고 난 후 서로 잔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작은 적막. 소년은 옥수수를 선물한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부자다.
포도밭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포도를 사러 온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포도밭 주인 청년은 높은 포도 값을 요구한다. 여자의 항의에 그는 이야기한다. 포도만 산 것이 아니라 그 포도가 달린 나무까지 주는 거란다. 매년 와서 따가라고 한다. 그 후 매년 포도를 따러 간 그녀는 6번째 날 그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랑 고백을 폭풍처럼 쏟아내지 않고 안개가 퍼지듯 잔잔하게 상대의 마음속을 점령해 버린 포도밭 청년의 현명함이 멋스럽다.
한 달간 살다 갈 집에 낯선 이 가 다음 사람을 위해 남긴 선물 이야기도 좋다. 그리고 또 한 달을 산 저자가 다음 사람을 위해 선물을 남긴다. 삶은 이렇게 물려주는 것이다. 내가 받은 사랑과 혜택을 그렇게 연결 지어 주어 삶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고 탓하지 말고, '나는 왜 이럴까........'라고 늘 자기 자신한테 트집을 잡는데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고백 같은 조언도 좋다.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의 카메라가 잘 담아냈다. 그리고 조용하게 남 이야기하듯이 흘러가는 글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휴대폰보다 재미가 있다. 사진에서 오는 삶의 소리가 매력적이다. 우리는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무엇이 부족할까. 삶을 살아가는데 더 중심을 두어야 한다. 누리는 삶, 경험하는 삶, 느끼는 삶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가야 인생 합주곡은 더 멋진 화음으로 최고의 명곡을 만들어 낼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떤 각도로 삶의 렌즈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걸까. 결국, 지구별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짧은 찰나 같은 생을 살다가 우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자처럼 일상을 바라보는 렌즈의 방향을 조정하는 손을 가져야겠다. 니체가 말하는 성자는 자신의 삶의 희열과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니체의 기준으로 저자는 성자인 것 같다. 서로가 느끼는 삶의 희열과 비전을 공유하기 쉬운 시대다. 즉, 우리 모두는 쉽게 성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수많은 성자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책이 좋다. 저자의 사진첩 같은 책이 일상의 무료함을 잊게 해 준다. '휴대폰 대신 책!'이라는 다짐을 굳혀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