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주말은 길게 느껴진다. 평소와 다른 낯선 활동이 많아 뇌는 그 시간을 길게 느끼는 것 같다. 일분, 한 시간, 하루, 한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이 빨리 지나간 것 것처럼 느껴진다면 잠시 생각의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 삶에 소비되는 에너지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꼭 필요한 일과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꼼꼼하게 챙겨봐야 할 것들을 살필 때 시간의 속도는 더뎌진다. 하루를 길게 보내는 느낌이 좋아 주말은 그래서 일찍 일어난다. 느리게 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침착하게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칼 오너리는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니며 슬로우 씽킹의 12가지 핵심을 독자에게 소개해 준다. 각 나라마다 관련된 슬로우 씽킹 핵심 원리의 예를 보여주고 이론을 소개해 준다. 후반부에 한국의 게임문화 소개 부분은 웃음이 난다. 피시방의 연기 가득한 공간에 너도 나도 게임에 몰두된 10대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글 속에 묻어나는 영국인 특유의 재치가 살짝살짝 보인다. 유연함과 박식함 그리고 활동성이 느껴지는 그의 삶은 세계 각국을 직접 다니며 인터뷰한 내용도 함께 들어가 있지만 결코 속도감이 없다. 느리게 사는 활동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 수 있는 생각의 틀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뇌의 특징을 알아야 조급해지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는 심리를 이해할 것 같아 작가는 뇌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두뇌 시스템은 빠르고 직관적이고 의식하고 생각하지 않은 제1 시스템과 느리고 수고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 제2의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만약, 눈앞에 사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제1시스템 뇌의 역할은 과거 원시생활과 잘 맞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제2 시스템 뇌의 역할을 의식적으로 깨워야 한다. 원시 시대부터 생존 본능을 유전자로 이어받아온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느리게 생각하고 사고하는 법을 터득하기 위한 제2 시스템이 에너지 절약을 위해 그 활동을 약화시킨다. '생각하는 것은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인데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적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라는 헨리 포드의 인용글이 우리 뇌의 그런 성향을 알려주는 듯하다.
우리 뇌의 또 다른 성향으로 낙관 주의 편향(미래가 더 나으리라는 믿음)은 지나치면 역효과가 난다고 한다. 장밋빛 안경을 쓴 우리는 손쉬운 퀵 픽스 Quic fix(빠르게 고치는 것)가 훨씬 그럴싸해 보인다고 한다. 뇌는 익숙한 해결책을 좋아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를 '아인슈텔룽 효과'라고 한다. 우리의 최고 사령관인 뇌는 변화를 싫어하는 '현상유지 편향'이 있기에 퀵 픽스 습관을 버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에 투자한 인력, 기술, 마케팅 등에 투자한 돈이 많을수록 그 해결책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더 나은 해결책을 찾지 않는 성향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좋은 음식과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곁들이면 전체 식사의 칼로리가 낮아질 것이라는 (사이드 샐러드 착각) 비논리적인 부분도 있고 일반 규칙을 입증하는 예외로 치부하는 확증편향을 가진 터널 시야가 생물학적 숙명이라고 한다. '대중은 빠른 결정을 좋아하는데, 그런 태도가 지도자들로 하여금 최악의 직관을 따르도록 부추긴다.'라는 인용글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실을 인정하는 사고가 느리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첫 요소라고 한다. 특히, 권위나 지위가 높을 때 과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영국 공군의 과실로 배우는 시스템 구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떤 조직이든 현재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좀 더 장기 적인 관점으로 과실을 마음 편하게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해야 하는 중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래야 발전하게 되고 큰 사고 예방이 된다는 작가의 주장은 몇 년간 우리나라 젊은 층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수백 명의 인명을 잃게 된 뼈아픈 교훈을 연상시킨다.
창의성은 잠복기가 필요한데 서두르면 창의성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또한 옳고 그름을 선택해야 할 때 그 문제에 대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 경우가 5배나 높게 옳은 판단을 한다고 한다.
느리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시간이 한 시간이라면 55분은 문제를 규정하고 나머지 5분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이해가 간다. 우리 삶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문제들만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큰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작게 나누어 그 요소들을 하나씩 해결해 갈 때 큰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 할덴 교도소의 범죄인 돌봄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범죄 행위에 대한 죄를 처벌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다시 사회에서 일반 사람 들고 잘 살아가기 위한 사람들로 대하는 자세가 재범률이 현저히 떨어지게 한다고 한다. 교도관 상당수가 범죄학이나 심리학 전공자이고 이들의 명칭을 대면 접촉관이라 부른다. 대면 접촉자들은 범죄자들의 친구로 그들의 인생 상담과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방법을 찾아주는 책임이 있다고 한다. 감옥 안은 마치 작은 원룸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하고 깨끗하게 되어 있고, 심지어 범죄자들의 가족과 휴가를 보낼 수 있는 펜션 개념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니 그들의 장기적 관점이 놀랍다.
슬로우 씽킹을 위한 방법으로 장기적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 외에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이 간다. 선한신은 디테일 속에 거주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오케스트라 선발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다. 커튼을 가리고 심사자들이 연주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을 모르게 단원들을 뽑기 시작한 이후부터 오케스트라 단원에 여성 연주자가 5배 더 늘어난 이유라고 한다. 우리의 뇌는 편견이라는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하고 진지하게 준비하는 마음이 시간을 이긴다'는 편에서는 '처음 2초를 신중하게 살피는 법'을 이야기한다. 명성이 높을수록 과신과 예측의 부정확도가 높다고 하니 전문가의 의견을 너무 맹신해서도 안될 것 같다.
협력과 충돌에서 해답을 찾는 방법이 슬로우 씽킹의 또 다른 전법이다. MIT대학의 '빌딩 20'에는 공학자, 생물학자, 화학자, 언어학자, 물리학자, 켬퓨터 과학자, 심리학자, 기계 전문가, 군 징병 관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들의 집단 실험 일부로 놀라운 발명을 세상에 탄생시켰다고 한다. 고속촬영법이나, 촘스키 언어학, 보스 헤드폰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 '마법의 인큐베이터'라고 불린다고 한다.
실험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풀 때 더 창의적이 되고, 대상이 우리와 멀 때는 좀 더 추상적 사고를 한다'라는 말에 공감이 된다. 일에 문제가 생기고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을 때 조금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효과적인 이유다. 자신의 기존 세계관을 강화하지 말고 의문을 제기하는 웹사이트를 탐색하고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 보라는 저자의 조언이다. 변치 않는 자기편이 '자신, 책, 지식'이라 이야기도 공감이 간다.
대중의 지혜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들은 집단 지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되도록이면 많고 다양한 대중을 이용해야 하지만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대중은 존중을 원하고 제대로 대접할 때만 그 지혜를 제공하여 통찰과 열성을 쏟아낼 것이라고 한다. 아이슬란드가 전 국민이 함께 정치문제를 해결했던 방법과 '폴드 잇(복잡한 단백질 가닥들을 접어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3차원 형태로 만드는 게임)'은 에이즈 바이러스 복제에 필수적인 어떤 단백질의 구조를 해독한 사례는 놀랍다.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중이 지혜를 발휘할 공간과 시간을 주는 것이다.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손쉽게 회수하는 법을 고안한 것도 전문가가 아니라 시멘트를 다루는 근로자였다고 한다.
자율권이 많은 직원들이 명령과 통제에 따르는 직원보다 4배 더 빠르게 조직을 성장시키고 이직률 또한 3분의 1이나 낮다고 한다. 그래서 구글은 업무 시간 중 근로자들에게 20%는 개인 시간으로 사용하도록 권장한다고 한다. 그 20% 자유 시간에 지메일이나 구글 뉴스 같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하니 서둘러 결과를 얻기 위해 몰아세우기보다는 급할수록 느긋하게 생활하는 게 결국 삶에 더 도움이 될 듯하다.
'지구가 80억, 90억 혹은 100억까지 인구를 부양하려면 우리는 살고 일하고 이동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생각하는 방법도 그렇게 바꾸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슬로우 씽킹일 것이다.'라는 저자의 마지막 끝인사가 울림처럼 남는다. 빠른 대안책 빠른 결과 빠른 삶을 원하는 제1 뇌 시스템이 아니라 에너지가 더 많이 소비되더라도 느리고 깊게 숙고하는 제2 뇌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옛 선인들이 보여주는 그림처럼 느긋하게 삶의 강을 유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두꺼운 책을 참으로 느리게 읽었다. 또 하나의 내편이 생긴 기분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