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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Apr 28. 2021

하루 한 권 독서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근대사의 내용은 시험 비중이 높지 않아 관심의 영역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역사에 남을 만한 내용은 다들 나름 비중이 크고 시대 의식이나 생활의 큰 변화를 일으킨 것들에 대한 크고 강한 물줄기만을 다룬다.


시대마다 소시민의 아픔과 삶을 살아내기 위한 사투와 고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잔잔한 미풍이 되어 묻혀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서민들이 써놓은 글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가 잊을 수 있는 것들 또는 너무 소소해서 관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일상들이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조병국 의사 선생님은 75세 정년 퇴임 후 그녀가 겪었던 겪동기의 의사 생활 50년을 22가지 일화들로 그 시대의 아픔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은 80세가 넘지 않으셨을까? 그녀가 의사로서 일한 곳이 영세민을 위한 병원이라  최 하층의 서민들 삶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는 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었다. 부모가 생계가 막막하여 아이를 고아원에 버리고 그 버려진 아이들이 아파 그녀의 병원 치료를 받고 치료 후 미국이나 스웨덴 등 다른 나라에 입양시켰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입양 보내는 아이가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가서 양부모에게 인도하기 전에 그곳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찾도록 돕는 일은 자신의 업에 대한 소명이 없이는 평생을 하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아름다움이란 외관에서 오는 것보다 내면에서 삶으로 흘러나올 때 그 깊이가 더해진다. 조병국 선생님의 삶이 그래서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시대에 부모가 오죽하면 아이를 고아원에 버렸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 시대에 비해 현재 내 삶은 아이를 최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어진 조건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일하면서 집안일하며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 시간을 쪼개 쓰던 시절부터 아이는 당연히 나의 관심의 비율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나쁜 엄마는 아니었지만 이기적인 엄마였다는 생각에 스스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신이 엄마라는 사람을 아이에게 보낸 이유를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조금 귀찮아도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준비해 주어야 하고, 나를 위한 시간보다는 같이 있는 시간에 아이의 관심을 공유하고 들어 주고 삶의 여정 동안 그 사랑으로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애정과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일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자 세상에 오직 나만을 의지하고 있는 아이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었다.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싶어도 키우지 못했던 그 시절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우리보다 앞서 살아간 선배들에 의해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는 큰 행운아이다. 이제는 우리가 물려줘야 할 때이다. 내가 아닌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 것 인가?


의사로서 자신의 인생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은 풍요 로웠을 것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해 사랑으로 아이의 상처를 달래고 키워낸 입양 부모들이 대단하다. 그것도 피부색도 다르고 자신의 자식도 아닌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 훌륭하게 사회에 내보낸 많은 부모들의 선행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현재 인생의 황혼기인 그녀는 어떻게 인생을 향유하고 있을까?  겸손한 품성과 타인을 위한 배려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이끌어 간 그녀의 인생에서 배울 점이 많다. 진한 향기와 아름다운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 꽃은 아니지만 넓은 들판 작은 국화꽃처럼 은은하게 자신의 향기를  드러 내놓는 그녀는  그 시대의 배경을 뒤에서 받쳐주는 아름다운 그림 같은 사람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 아니다.  삶의 중심은 인간이고 그 인간관계에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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