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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Apr 01. 2024

하루 한 권 독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김성우, 엄기호

책과 영상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우리 일상의 지식과 정보를 엮어내는 시대다. 구두로 전달되어 온 지식들이 어느 날 종이 위에 내려앉고 인류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은 책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내용들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길고 지루한 텍스트로 필요로 한 정보를 얻기보다는 누군가 쉽게 요약한 짧고 재미있는 영상이 당연 인기가 많다. 


 언어리터러시 연구자 김성우 저자와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여행을 즐기고 페다고지에 관심이 많은 엄기호 저자가 서로 대담하는 형식으로 쓴 책이다. 두 분의 명석하고 예리한 관찰력과 견해가 도움이 된다. 영상이냐 책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문해력이라는 관점으로 두 매체의 특징을 이해하고 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문해력’이라는 용어보다 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포함한 ‘리터러시’라는 단어를 책에서는 다룬다. 유네스코에서 정의한 리터러시란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 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말한다. 


책은 영상매체가 생활에 깊이 파고든 현실이 리터러시의 위기인가, 변동인가를 이야기한다. 읽기는 여전히 유효한지, 읽기에서 보기로 변화된 사회에서 미디어와 몸의 변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다리를 놓을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을 이야기한다. 


 리터러시를 다루기 전에 지금의 문화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초등학생들은 문자매체보다 영상 정보로 접근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얻는 영상매체를 선호할 것 같다.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로 시간 구성 방식, 정보 채널, 감각의 비율이 바뀐 시대라고 한다. 책을 읽는 독서가 사라지고 있고, 독자에서 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아지고 있는 비대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로 전하는 중세에서 텍스트로 전하는 근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주체성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텍스트로 지식을 얻는 근대에서 영상매체로 지식을 얻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주체성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 것일까. 시대에 따라 리터러시의 개념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보는데, 문자로 시험공부를 하고 세상을 영상매체로 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까. 정보나 이야기가 읽고 쓰는 것이 아니리 보고 찍는 것으로 변화됨으로써 새로운 거짓 정보에 쉽게 넘어가고, 소통 표현에 대한 욕망으로 쉽게 넘어가는 시대라고 한다. 소셜미디어부터 만나는 아이들은 기초적 ‘동영상 리터러시’가 먼저 발달하게 된다는 말이 인상 깊다. 리터러시를 정의하는 방식은 권력과 연계되어 있고, 성인 중심으로 되어 있어 평가 방식이 동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지금의 지식 생태를 생각해 보게 한다. 


 리터러시 능력이란 개인의 역량으로 바벨탑을 쌓듯이 높이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연결해 주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들의 담화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시대를 바로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삶을 읽어내는 리터러시와 권력화된 리터러시, 그리고 나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리터러시가 인간사회의 서열을 만들어 내고 지배와 피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는 저자들의 말을 이해할 것 같다. 누군가를 비인간화하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기에 칼을 다루듯이 리터러시를 다루어야 함을 느낄 수 있다. 


 읽기는 여전히 유요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담화는 책의 무게를 가해 준다. 많은 지식이 위계 없이 널려 있는 초텍스트의 시대에서 지혜, 지식, 진리, 역사 인식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문자를 우리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문자가 우리 사고방식을 바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필요한 출발점이 진정으로 읽기가 삶에 유효한 가이다. 텍스트는 역사적 길이와 사유 자체를 길어지게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경우 텍스트가 갑갑하고 자신을 속박하고 그 주어진 틀에 맞추어야 시험을 쳐야 하는 상황아다 보니 자유에 대한 구속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유튜브 시청으로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를 연결시켜 무한 데로 볼 수 있는 자유와 연결해서 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영상매체로만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문화적 경험의 폴이 좁아질 수 있다고 한다.


 리터시의 개념이 책을 넘어 영상까지를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단지, 한 매체에 올인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의 폭을 좁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리터러시는 개인적 역량이지만 그 역량을 키우는 것은 사회적 역량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소통부제에서 오는 혐오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저자들의 담론에도 공감이 간다. 지금 우리는 다매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음식에서 편식이 건강에 이롭지 못하듯이 다매체를 통해 정보의 영양 균형을 맞추는 개인적 지혜도 필요하다. 책은 진입장벽이 높은 개인적 영역이고 다양하지만 내 안에서 정보로 쌓이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반면, 영상은 그것을 제작한 사람의 주관적 요약 가능성이 크고, 지식의 호흡이 짧아지게 할 수 있다. 저자들의 말처럼 개별 매체의 성격을 따져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뇌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뇌가 특정 방식의 매체 소비에 익숙해지면 주체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변화된 몸으로 다른 매체를 만날 수 있다는 말도 긴장감을 준다. 


 영상매체를 통해 얄팍한 지식을 조금씩 접하지만 자신의 식견과 관점으로 체화하기는 어렵다. 또한 깊이 있게 읽어 낼 수 없는 리터러시와 저자의 죽음이 나타나는 시대는 발효와 성장의 시간이 없고 깊이 있는 지식과 지혜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이야기는 어떤 매체로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앎의 문제가 아니라 다룸의 문제를 논할 시대다. 앎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인상 깊다. 책이냐 영상이냐라는 문제라기보다는 무엇을 하든 이것들을 통해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것같다. 


 저자들이 언급한 홍천여고의 독서 토론방식도 더 알고 싶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학교교육은 활동적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되어야 함을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독서 토론법도 관심이 간다. 영화 한 편과 책 2권을 읽고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나의 리터러시와 다른 사람의 리터러시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면 교육이라는 기능이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발휘할 것 같다. 


 시험을 위한 리터러시가 아니라 읽기를 돕는 시험으로 전환도 미래 인재 교육을 위한 학교 교육의 대안이 될 것 같다. 리터러시가 자칫 소수의 ‘엘리트’ 전유뮬이 될 수 있음을 책은 언급한다. 리터러시를 돕는 학교 교육과 사회제도가 필요하고, 영상매체에만 몰두되지 않도록 개인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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