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윤효 Apr 30. 2021

하루 한 권 독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

학문의 중심이 계단처럼 되어있다고 한다. 잘 살지 못할 때는 경제학 중심,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을 때는 인문학 중심 그리고 부유한 사회는 고고학 중심이라고 했던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라는 말은 생소했다.  우리 문화제를 돌려받는 이야기이다. 외규장각은 정조가 강화도에 조선시대 왕실의 의전과 예식 내용을 소상히 기록해 보관토록 한 도서관이었다.

천주교 탄압으로 서민 8천 명이 죽임을 당했고, 또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순교한 사실 때문에 프랑스 군대가 조선의 땅에 침범해 의궤 340권을 약탈해 갔다.


먹고살기 바쁜 1970년대 고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박물관 한편에  중국 문화의 일부로 급되어 찬밥 신세처럼 궤짝에 허술하게 담긴 우리의 의궤를 찾아내 반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정부에 알렸지만 무산되었다고 한다.  경제 중심의 논리에 해캐묵은 문화재 반환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 우리 사회 전반은 선진국의 문화와 그들이 만들어 낸 물건에 빠져 있었다.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가 발전된 지금 새삼 우리 것에 대한 고유성과 시대를 만들에 낸 조상의 정신과 업적을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340권 중 297권이 남아 있지만, 20년간의 기나긴 기다림으로 고국의 품에 들어온 의궤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품어야 할까? 500년 조선 왕조의 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의궤는 우리의 혼이요 우리 삶의 정체성이다.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집착을 보이는 프랑스인들에 대해 새삼 놀랬다. 그들의 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해온 문화재들이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 해외 이탈을 예방하기 위해 프랑스는 문화재 타국 유출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 금지된 선을 넘어 우리 의궤를 찾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기록된 글이다.


그들에겐 세계 각국의 문화중 하나 일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긴 중요한 문서였기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우리 것을 돌려받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의미 있는 줄다리기를 해온 이들에게 감사하다.


글 중 우리의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우리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프랑스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만들어 내야 했기에 프랑스 외교부에서 적극 도왔던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문화 수호자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5년마다 대여하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돌려준 것이다. 그들의 문화재가 이런 식으로 본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하면 프랑스의 박물관은 텅 빌 것이다 라는 논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치인의 용기 있는 배려로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것이다.


조상의 역사와 문화는 나무의 뿌리와 같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곧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의 분위기가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 먹고살기 위한 경제학에서 사람의 삶을 품위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한 인문철학에서 이제는 더 높은 삶을 지향하는 역사와 고고학이 학문으로 꽃 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고 박병선 박사님이 우리의 의궤를 펼쳐 들고 마치 사랑하는 자식을 품듯이 어루만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할 일이 너무도 많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모두 해내야 한다고 하셨다. 80이 넘는 나이에도 그 나이듬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언젠가 내게도 세상을 떠날 시간이 왔을 때 해야 할 일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세상과 이별할 수 있는 담백한 삶을 꿈꿔 본다.



작가의 이전글 Gesture 영문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