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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Apr 15. 2024

하루 한 권 독서

[끝까지 쓰는 용기]-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는 마치 ‘끝까지 살아낼 용기’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엄마의 5형제자매들이 꽃들 속에 나란히 찍힌 사진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가족톡에 올라왔다. 형형색색의 튤립 속에서 한때 젊음을 자랑했던 이모와 삼촌들의 얼굴에 묻어난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그 오랜 시간을 견고하게 잘 지내온 그들의 모습이 꽃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젊었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의 모습이 여전히 낯설다. 꽃만큼 예뻤던 막내이모는 내 기억 속에 항상 젊고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녀도 하늘나라에서 웃으면서 내려보고 있을 것 같다.


 살아낸 흔적을 온몸으로 새기는 게 삶이라면, 그 삶을 차곡차곡 쌓아 기록하는 일이 글을 쓰는 이유일 것 같다. 끝까지 살아낸 삶을 기록해 내는 힘을 가지고 싶은 이유 중 과거의 내 감정과 삶을 언제든지 다시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20대는 어떤 고민이 있었고, 30대는 어떤 꿈을 꾸었으며 40대는 어떤 일에 몰입되어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써야 함을 알 것 같다. 


 ‘글을 쓰면 그것이 아주 짧은 문장이라도 눈에 보이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어요.’ 작가의 말처럼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글을 통해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말을 배워야 하듯이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써 내려가는 관점에 따라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숨 쉬듯 밥먹듯이 쓰는 삶이 잊히기 쉬운 평범한 한 개인의 존재 증거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내가 없는 지구상에서 먼 훗날 내 아이가 같은 시기의 삶을 살아내면서 부모의 삶과 생각을 글로 마주할 때, 어떤 느낌일까. 


 저자의 ‘공부할 권리’라는 책을 3년 전에 인상 깊게 읽었었다. 탄탄한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번 책은 책 사이사이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때보다 무게감을 덜어내고 좀 더 개인적인 솔직함을 드러낸 책이다. 마치 조금 거리가 있었던 사람에서 사이가 가까워지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글을 쓸 때 궁금한 모든 것들에 대한 질의 응답으로 책은 문을 연다. 그리고 작가가 매일 쓰며 배우고,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대담에서 저자가 주는 조언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12시간 책만 보고 글을 쓰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영화 한 편을 보고, 3점의 그림을 감상하며, 3곡의 음악을 듣고 쓰라고 조언한다.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언어를 뛰어넘는 사유를 하라고 한다. 단조로운 생활과 기복이 없는 삶이 무미건조한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삶에 다른 변조의 변화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심어 준다. 

-‘그 문장은 왜 아름다울까’를 생각하는 것이 문장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멋진 문장을 만난 기쁨에 들떠 왜 아름다운지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저자의 조언데로 ‘왜’를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세상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소중한 글감으로 넘쳐 난다는 생각도 좋은 조언이다. 저자의 말처럼 뜨겁게 예열되어 있어야 만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글 속으로 기록해 둘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기억해 두고 싶은 마음으로 종종 사진을 찍어왔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함께 기록해 둘 때, 더 깊은 가치를 발휘할 것 같다.


 ‘무진기행’을 10번 읽은 저자의 애정 어린 책들에 대한 소개는 읽어가는 동안 눈도장을 두 번씩 찍게 만든다. 그래야 그 책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쉽게 인연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써 내려간 수십 권의 책 또한 읽어야 할 목록으로 자리 잡는다. 한 작가의 책만 집중적으로 읽어가는 독서법으로 저자의 책을 선택해야겠다.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본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자기 발견의 기쁨을 주는 글쓰기는 마음 챙김의 몸짓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계속하는 기본 생활이 되어야 함을 알 것 같다. 쉽게 읽히는 책은 진정한 새로움을 줄 수 없고 깊이 사유해야 할 문장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고 한다. 쉽게 읽히는 책에 길들여진 건 아닌지 가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이유가 깊이 있는 사색을 해보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생각하는 법, 사색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저 수많은 생각들이 정체 없이 떠돌다가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 이다. 생각의 정렬이 사색이 아닐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종류별로 서재의 책꽂이에 꽂듯이,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 보는 것을 사색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사랑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준다. 저자가 좋아하는 빈센트반 고희가 저자의 쓰는 삶과 여행하는 삶을 이끈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고는 삶을 제대로 써낼 수 없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쓰는 삶이 치유의 삶이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몸짓이 된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 준다. 


 저자 덕분에 윤이형 작가의 외로운 투쟁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책도 곧 만날 운명을 만들어야 함을 알 것 같다. 잘못된 제도에 대한 침묵은 더 나쁜 관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 무관심으로 나를 포장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장녀로 자란 저자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장녀가 아니지만 저자의 외침처럼 엄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굴레를 가끔 장녀인 언니가 이야기를 했었다. 자신은 연이 되고, 엄마는 그 연을 조종하는 얼레가 되어 삶의 많은 부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그 틀이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언니는 그녀 안의 어린 자아를 만나는 명상을 통해 그 깊은 사슬에서 자유롭게 연이 되어 지금은 저자처럼 자신만의 하늘에서 맘껏 날고 있다. 


 다정 다감한 저자의 책이 매력적이다. 그녀가 겪었던 마음의 갈등에 대한 솔직함과 읽어낸 책과 써낸 책들이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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