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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01. 2024

하루 한 권 독서

[그림의 힘]- 김선현

생각의 나열들이 손끝으로 나와 음악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고, 글이 되기도 한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누군가의 머릿속 생각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들이다. 어떻게 보면 글은 직접적 방식으로 음악이나 그림보다는 이해하기가 쉬운 장르다. 우리 생활 속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림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일상의 한편에서 잊히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몇 점의 그림들을 가지고 있다. 무명의 작가가 정성 들였을 그 그림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화장실에 놓은 꽃그림은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있고, 신발장 위에 놓인 풍경 그림은 그 색채가 고향을 연상시킨다. 현관 밖에 걸린 묵직한 고전풍의 그림은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우리 집을 지켜주는 작품 같다. 이 책은 그림을 관찰하는 마음을 준다. 


 미술 치료계의 최고 권위자라 불리는 저자는 그림이 담고 있는 화가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다. 그림을 설명해 주면서, 외로운 사람들과 삶에 지친 사람들 그리고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실제로, 그림을 통해 치유 효과를 보았던 사례를 통해 그림이 가지고 있는 조용한 힘을 잘 보여준다. 


 책 소개 글에서 저자는 ‘저는 그림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그림 감상 후 사람들의 뇌파가 달라짐을 언급해 준다. 그래서인지, 그림과 그녀의 설명이 들어간 글들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읽게 만든다. 일, 사람과의 관계, 부와 재물, 시간 관리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화두는 삶에서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장 향상하고 싶은 5가지 주제라고 한다. 그래서 책은 이 다섯 가지의 큰 주제와 연결해서 그림을 소개한다. 익히 알려진 그림도 있고, 처음 접하는 그림도 있다. 자상한 선생님처럼 이것저것 꼼꼼하게 설명해 주는 그녀의 품성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어 가면서,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과 그들의 눈으로 그림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된다. 실제 그림을 살 수는 없지만, 모조품이라도 몇 점의 명화 그림을 사야 겠다. 그리고 진품은 아니지만, 작가가 그려낸 모양과 색채를 자주 들여다 보고 그림을 그린 화가와 대화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왜 특정 사람들이 수억을 주고 명화를 소장하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바실리 칸딘 소키의 ‘동심원들과 정사각형들’이라는 그림은 영원을 상징하는 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단색을 통해 에너지를 선물하고 싶어 한 화가의 마음을 이야기해 준다. 그림이 담고 있는 에너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실제 치료 효과를 준다고 한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는 익숙한 그림이다. 밖을 내다보는 남자와 그 밖에 점처럼 작아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그림을 통해 왠지 여유가 느껴진다. 저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끔 잊는 사람들에게 좋은 그림이다. 


 그림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이 시지각 경로를 통해 뇌에 전달이 되고, 이로 인해 미술이 치료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미술치료에서 감정의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느낌에 초점을 많이 둔다고 한다. 


 에두 아르 마네의 그림 ‘비눗방울 부는 소년’은 너무 잘하려 애쓰기보다는 소년처럼 호흡을 비눗방울 안으로 자연스럽게 불어넣으면서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내려 두어 보면 될 것 같다. 

 앙리 마티스의 ‘붉은 조화’ 속 그림의 빨간색은 상승과 분출의 양가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짜증이 날 때 이 그림 속 빨간색이 사람의 마음을 누그려 뜨려 줄 것 같다. 불안을 해소해 주는 그림으로 산드로 보티 첼리의 ‘비너스 탄생’도 익숙한 그림이다.

 

 조르수 드라 투라의 ‘작은 등불 앞의 막달라 마리아’ 그림은 집중을 요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서 까만 연기를 조용히 태우며 빛을 발산하는 양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 양초를 보며 뭔가 골똘히 사색하고 있는 막달라를 보면서 함께 생각에 빠지게 된다.


 후고 짐베르크의 ‘부상당한 천사’ 그림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부상당한 천사를 두 아이가 앞뒤에서 두 개의 긴 막대기 위에 태우고 가는 장면이다. 한 손에 꽃을 들고 이마에 흰 천으로 부상 부위를 알려주는 천사는 힘없이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니다. 그 천사를 옮기고 있는 아이들의 어두운 표정은 여러 생각을 피어오르게 한다. 왜 아이들이 천사를 옮기고 있는지,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천사는 왜 다쳤는지... 어두운 계열의 아이들의 소박한 옷과 눈처럼 하얀 천사의 깨끗한 옷이 대조되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는 보기만 해도 따뜻함이 묻어 난다. 금발의 두 여자 아이는 음악을 통해 서로 깊은 교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중섭의 ‘해와 아이들’이라는 그림을 보며, 그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일본인 아내가 아이들과 해방 후 일본에 건너 간 후 긴 세월동안 못돌아 오고 있었을때, 그들을 기다리며 보냈을 아빠 이중섭의 마음이 보인다. 


 프리다 칼로의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은 조금 혼돈스럽다. 여기저기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을 뒹글고, 남장을 한 여자 칼로의 표정은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가 스스로 신체의 한 부분에 강한 자극을 주면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면서 연인에게 받은 상처를 그림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화가의 그림이 안쓰럽다. 


 세기의 천재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중 ‘우체부 조세프 룰랭의 초상’의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자신 외의 타인을 그리지 않은 고흐가 조세프를 그렸던 이유가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세프의 당당한 모습과 헤오리처럼 말리는 작은 수염들이 여자들의 머리카락처럼 예쁘게 그려져 있다. 삶을 전투처럼 살아내고 있는 고흐를 따뜻하게 받아 준 조세프는 그래서 그림 속에서 표정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인상을 풍긴다.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세요. 누구나 자신 속의 문제로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그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화가는 희망, 상상, 자유, 변화 가능성, 다양성을 그림에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감상자는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의 심리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그림은 이런 인식을 유도해 우울한 감정을 해소해 주는 훌륭한 창작이다. 그림이 좋아진다. 그림을 생활 속으로 불러들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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