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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Jun 14. 2024

하루 한 권 독서

[말을 삼키다]- 현주 수필집

작가의 이름난에 ‘현주 수필집’이라고 써야 할 것 같다. 2012년 등단 후 7년이 지난 후 조용하게 세상에 책을 내려둔 그녀의 느린 걸음이 여유를 보여준다. 뭔가 해내고,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성급한 마음을 참아낸 그녀만의 속도가 그래서 아름답다. 책의 표지말인 ‘말을 삼키다’라는 예쁜 글씨는 작가의 엄마가 정성스럽게 써준 글자다. 그래서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본다. 딸의 책 표지에 글을 써주기 위해 정성을 들였을 엄마의 사랑이 함께 보인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도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은 개개인에게 다른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 같다. 그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책이 되어 세상의 또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저자가 만나는 모든 일상과 일들이 글의 소재가 되어 느리면서 여유 있는 배경 음악 같은 소리를 낸다. 글을 통해 마음을 읽어 가는 기분이 좋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감정들이 작가의 손끝에서는 예쁘게 포장되어 일상의 선물이 된다. 

 저자처럼 글을 쓰기 위해서는 흘러지나 가 버리는 생활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물건들도 스캔하듯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눈을 가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들리는 소리와 보이는 것들을 손끝으로 살포시 하얀 여백의 종이 위에 내려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발’이라는 우리 몸 한 부분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라고 표현했다. ‘생각은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가지만, 발은 언제나 현재에 머무른다. 모든 생물은 꼭 자신의 크기만큼 오늘을 지탱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력서를 손에 들고, 무엇인가 꽉 채우지 못한 그 공허감은 누구나 들 수 있는 감정이다. '나'라는 사람을 이력서라는 공간에 잘 넣어서 멋스럽게 표현하고 싶지만, 쓸만한 글귀가 부족함을 느낄 때는 저자처럼 괜히 옷 타령을 해보는 경험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면서 신발을 수선하던 노인의 손을 그의 이력서로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다. 


 ‘봄기운을 찾아 바깥으로만 다니는 사이 우리 집 안에서도 작은 봄이 쉬고 있는 걸 미처 몰랐다.’ 집안의 화분에서 피어난 개발 선인장의 진분홍 꽃을 보고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마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던 사람이 결국은 행복이 자신의 집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 같다. 


 ‘새로운 상황을 만나면, 가끔은 말을 삼켜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말을 삼키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수다를 떨 때는 후련할 것 같지만, 돌아서면 공허함이 오히려 커진다.’ 저자가 들려주는 말을 삼키는 이야기는 조용하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혼자만 쏟아낸 대화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 방문을 닫고 부모님의 시선에서 벗어났던 경험을 ‘문 닫은 방은 자유를 얻는 통로’라고 재취 있게 표현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하면서도,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 그 생각조차 내려 두게 된다. ‘버린다는 것은 한순간의 필요와 불필요라는 단호한 결정으로 판가름이 되는 다소 냉정한 심판 과정이다.’ 판단을 미루는 게으름이 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어렵게 한다. 제대로 덜어낼 줄 아는 지혜를 물건에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사고까지 확장한 저자의 현명함이 보인다. 나의 생각과 고정관념, 상투적인 생각들도 쓸모없는 물건처럼 머릿속에 잔뜻 쌓아 두지 말고, 가볍게 덜어 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결혼 후, 계단이 많은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저자의 집에 친구가 찾아온다. 친구는 직장 맘으로 살아가면서 잠깐의 휴식을 위해 저자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가 자신의 삶을 보고 위로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을 조용하게 표현해 두었다. ‘갑자기 일상의 모든 게 버거워졌고, 한동안 딱지조차 생기지 못하는 생채기를 안고 몸살을 앓았다.’ 


 ‘행복의 시작을 남편과 아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옮겨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웃고 우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시 홀로 서는 감정 연습은 공감이 간다. 

 ‘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가는 것은 그럴싸한 스케줄이 아니라 문득 찾아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힘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찾아온 소중한 새로움이 익숙함에 가려 놓치지 않게 되길 바란다.’ 새해가 시작이 되면 수첩을 사고 무엇인가 계획과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은 작은 의식들을 수년씩 반복해 오던 내게도 조용하게 건네는 조언이 된다. 


 읽는 삶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만나는 어렵고 재미없는 책을 들었다 났다 했던 그 경험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저자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글자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라고 표현했다. 맛깔스럽게 표현한다. 저자의 글은 다행히 무겁지 않다. 작은 배낭 속에 산뜻하게 넣어둔 요긴한 물건처럼 들고 산행하기 좋은 무게다. 


 할 일이 끝났다는 후련함과 아직도 소중하게 보낼 오늘이 남아 있다는 안도감이 겹쳐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해지기 직전 낮과 어둠의 틈새가 좋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내 하루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과 그 이유를 표현해 본다. 잠을 잘 자고 일어난 홀로 깨어있는 이른 새벽을 사랑한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일마다 의미를 만들어 자신의 삶을 재단해 보는 습관도 배울 점이다. 은은한 달빛을 담은 월요일은 여유와 편안함으로 자신의 안을 채우고, 모닥불 피우는 화요일은 타인에게 관심과 친절을 베푸는 요일로 정한다. 흐르는 강물이 바다로 가는 수요일은 묵묵히 목표를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나무 같은 목요일에는 나무처럼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데 집중한다. 빛나는 금요일은 금처럼 한 푼의 가치를 소중히 여지는 마음을 가지며, 풍요로운 대지인 토요일에는 삶의 여유를 가지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포근한 햇살 같은 일요일은 가족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하기 위해 , 맛깔 스런 음식을 준비하고,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선물해 보는 것이다. 


 요일마다 기억해야 할 삶의 지혜를 연관 지어 두어야겠다. 벤자민 플랭클린처럼 평생 자신이 닦아야 인성 목표를 수첩에 적어두고 매일 실천을 체크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저자처럼 요일에 의미를 만들고 그 매주 다가오는 시간들을 살아보자는 생각을 얻었다. 사람마다 각기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있다. 그 장점들을 보는 눈과 그리고 내 생활에 적용해 보는 지혜를 가져보는 시간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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