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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Jun 12. 2024

하루 한 권 독서

[알렉산드로스와 헬레니즘]- 이근혁

‘알렉산더’라는 이름으로 학창 시절부터 그의 인생이 궁금했었다. 여고시절 혜선이라는 친구는 알렉산더를 존경하고 흠모한다고 이야기했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알렉산드로스를 경배하는 그녀의 독특함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관심을 받던 인물이라 마음 한편에 늘 숙제처럼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의 저자 이근혁이 들려주는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는 담백한 맛이 있다. 2,300년 전의 일을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 인지 생각해 본다. 지나온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역사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 라틴어로 수호자라는 뜻을 가진 알렉산드로스는 동서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짧은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그 진한 농도가 너무도 강했기에 인생길이가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떤 교육과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그의 인생관과 꿈이 그를 이끌었는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프랑스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에 알렉산드로스의 삶을 소개하고, 그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평화, 민족 간의 화해, 도시화와 무역 발달, 정복자들의 선진 문화 확산을 추구한 위대한 통치자로 알렉산드로스를 평한 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대가 동서양의 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교류되는 시대인 것 같다. 온라인으로 그들 문화를 쉽게 배우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와 나라를 드나들면서 서로가 조용하게 섞여가는 과정 중일 것 같다. 알렉산드로스가 꿈꾸던 그 융합의 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정복이 아니라 공유의 문화로 인류는 서서히 알렉산드로스의 이루지 못한 꿈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20살 왕이 되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13살부터 16살까지 질의응답을 통해 최고의 사교육을 받았다. 당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변방 국가 중 하나였다. 연중 따뜻하고 산이 많아 폴리스들이 많았지만, 그중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가장 강력한 나라들이었다. 페르시아라는 강력한 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폴리스들은 힘을 뭉쳐 대항해 살아남았다. 폴리스들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통해 주도권을 잡지만, 스파르타와의 내전(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직면한다. 패자는 있지만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다고 한다.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테베라는 또 다른 나라가 그리스 문명의 군사적 패권을 가지게 된다. 

이때, 알렌산드로스는 18살에 테베에 볼모로 가게되어, 그의 인생을 바꾼 운명적인 기회가 된 것 같다. 마케도니아 보다 발전한 테베에서 군사, 외교 기술을 배우게 되고, 학문, 건축 등 발전된 선진 문화를 접하게 된다. 뛰어난 스승을 만나고, 선진 교육을 찾아 유학을 가서 배워오는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크게 만드는 교육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 필리포스가 그리스 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보았고, 아버지가 이루는 성취를 보면서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표를 뺏길까 봐 약간의 경쟁심을 보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안 원정 때 병사와 물자 지원 약속을 받기 위해 협상자로서 아테네를 방문했다. 20살의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나라 간의 협상법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아버지 필리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알렌산 드로스는 왕이 되었지만, 이미 마케도니아는 선왕이 잘 가꾸어둔 병사력이 새로운 왕이 그 기반에서 일어서기 쉽도록 도왔다.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해 본다면, 선대 ‘소수림왕’이 체계를 잘 정비해 둔 덕분에 광개토 대왕이 큰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있어고, 광개토 대왕의 아들인 장수왕 또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5세기 고구려 동북아시아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여전히 회자가 되어지고 있다. 고르디 온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말을 듣고 알렉산드로스는 그 끝을 칼로 잘르는 결단력을 보여준 사례는 유명한 일화다. 그래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상황을 지칭하는 말로 ‘고르디 온의 매듭’이라고 표현한다.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와의 만남도 인상 깊다.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알렉산드로스의 질문에 ‘저는 개, 디오게네스입니다. 햇살을 가지리 말고, 조금만 비켜 주시오’라고 응답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를 만난고 난 후, 그가 만약 알렉 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두 사람 모두 같은 해에 사망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흥미롭다. 


 20대에 왕이 되었지만,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고, 절제할 줄 수 있는 힘이 있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의 작은 세계에 만족할 수 없었다. 30살이 되던 해에 그리스, 이집트, 인도 북서부까지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계획도시를 정복지마다 세웠다고 한다. 현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시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알렉산드리아는 대도시로 성장했고, 헬레니즘 시대,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경제적, 문화적 중심가다 되었다고 한다. 


 알렉 산드로 스는 고대 그리스 세계와, 중동 그리고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융합하려는 시도를 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헬레니즘’은 기원전 30년부터 로마가 이집트를 병합하기까지 300년 까지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문화 융합의 한 일원으로 페르시아인과 그리스 군인의 결혼을 장려함으로써, 두 민족의 결합을 이루어 낸 것 같다. 자신 또한 포로의 딸인 록사나와 결혼까지 한다. 


 정복지에 알렉 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워 지식의 융합을 꾀했고, 오리엔트 지역에서 새로운 식물과 동물을 발견하면 표본을 채취해서 스승이었던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500종 이상의 동물을 관찰하고 분류해서 아리스토 텔레스는 ‘동물사’라는 대작을 인류에게 선물하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오리엔트 지역에 그리스 문화가 깊이 침투하게 만들었으며, 수 백 년 동안 새로운 철학과 자연과학, 미술이 화려하게 꽃 피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책은 헬레니즘의 예술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격정적이고 감각적이며, 관능미가 넘치는 예술인 헬레니즘은 인도의 불교문화와 결합해서 간다라 미술을 탄생시켰다. 석굴암의 ‘간다라 불상’은 커다란 천을 몸에 두르고, 장신구를 걸치지 않는 모습으로 물결 모양의 머리카락, 오뚝한 코, 입체적이고 굵은 옷 주름의 특징은 알렉산드로스가 우리 삶에까지 미쳤던 영향을 알게 해 준다. 알렉산드로스의 오리엔트 원정의 결과로 간다라 미술이 생겨나고, 동아시아 까지 전파를 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간다라 미술은 동서의 문화가 융합되었을 때, 발생되는 창조적인 영감을 역사적인 사례로 보여준 예다. 


 33살의 알렉산드로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시 나라가 분열되는 과정을 모든 역사가 닮아 있는 공통점 같기도 하다. 결국, 로마가 다시 정복하지만, 그리스 문화와 언어는 로마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는 서로 다른 듯이 흘러 가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동서양이 가진 그 독특한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과정으로 오늘날의 세계 그림이 완성되고 있는 듯하다.


동서양을 융합할 수 있는 알렉 산드로스 같은 인재를 키워낼 시대다. 우리 문화를 알고 세계문화를 알며, 온, 오프 라인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잘 융합해 더 나은 문명을 만들어 내는 인재가 탄생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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