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는 돌고 돈다. 어둠 속에 은밀하게 내려앉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송두리째 바꾼다. 그 어둠을 직시하는 과정은 두려울 때가 있다. 계엄령해제부터 대통령 탄핵 가결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어두운 과정은 겨울바람처럼 사람의 마음을 잔뜩 움츠리게 했다.
전두환의 계엄령으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일독했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전망 좋은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을 세계인에게 더욱 주목받게 만든 12.3 사태는 읽을 책 우선 순위를 바꾸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냥 눈감고 모른 척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게 문학인 것 같다.
광주 계엄사태 때 한강의 아버지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중학교에서 희생된 3명의 학생에 대한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10살의 어린 소녀 한강의 가슴에 파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 다시 광주로 찾아가 16살 동호의 이야기를 살려냈다.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전남대 부속 병원에서 계염령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을 가족에게 찾아주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동호. 정미와 정대 남매는 동호의 사랑칸에서 세를 들어 살던 남매다. 동호는 두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은 또래 같은 학교 정대와 친밀감은 강했다. 시위 현장에서 정대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어렴풋한 느낌으로 정대를 찾아 나선 동호는 군인들의 총을 맞고 죽은 사람들의 신원을 기록하는 일을 돕게 된다. 나이에 비해 키가 작던 그의 외모로 현장에 있던 누나, 형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친구 정대가 쓰러지던 자리에 살기 위해 도망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긴 듯하다.
1인칭 시점이 아니라 전지적 관점에서 바라보듯이 서술되는 이야기는 감정의 보호막이 된다. 사실 같지 않은 잔혹함을 1인칭 시점으로 대하다 보면, 자칫 우울감과 분노 속으로 독자를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동호를 지켜보던 눈에서 정대로 옮겨 갈 때, 잠깐 혼돈스러웠다. 총을 맞고 죽은 정대는 군인들이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야산의 한 곳에 열심자로 쌓아놓고 거적으로 덮는 과정을 지켜본다. 결국, 자신의 몸이 불로 타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과 이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한다.
동호가 죽기 전 병원에서 만났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형들과 누나들의 삶을 신의 눈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한 명의 독재자가 복종하지 않는 다수에게 가해지는 잔혹성은 아시아 역사에서 쉽게 만나는 사실들이다. 나와 멀리 떨어진 다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웃이고, 또는 내가 그 원안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만들어 내는 소설이다.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에 대한 외모 묘사와 그들이 입고 있던 교복과 옷에 대한 묘사가 가슴 시리다. 옳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양심이라는 유리구슬이 때 묻지 않아 온몸으로 자신을 던진 것이다.
병원으로 진압 군인들이 총을 들고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나 형들의 권유에도 떠나지 않고 병원에 남아 있던 동호는 집으로 돌아가자는 엄마의 애원을 저녁밥 먹으러 곧 돌아갈 거라 달래고,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겼다. 시민을 향해 서슴없이 총을 쏘는 군인들에게 맞서 구식의 오래된 총을 쏘지도 못하는 학생들. 진수 형의 말처럼, 총을 내려 두고 두 손 들고 군인들을 향해 걸어가면, 어린 너희는 살 수 있다는 말을 실행한 동호를 포함한 다섯 명은 온몸으로 총을 받는다.
월남전에서 베트콩들을 마치 벌레처럼 죽이던 군인들이 그 잔인성을 그대로 광주에 쏟아냈다. 반항하는 사람들을 죽인 대가로 받아 든 몇십만 원의 돈과 계급 포상은 이들의 광기에 기름을 부었다. 데모 현장에서 잡힌 이들에게 가해진 고문과 인권유린의 이야기는 믿기지 않는다. 악의 잔인성 그리고 죽을 줄 알면서도 타인을 돕는 선의 희생을 생각하게 만든다. 타인을 짓눌렀던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였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 어느덧 노년의 삶을 살고 있을 그들 또한 희생자일 수 있다. 악의 도구로 쓰인 자신의 몸을 용서할 수 없던 사람들의 남은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데모로 희생된 가족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부모들의 일그러진 삶을 보게 된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한 삶이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치러진 아픈 역사의 기저 위에 세워진 것이다.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의 자유, 글의 자유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까지 긴 시간을 걸어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어 안도감이 드는 주말이었다.
한강 작가가 온몸으로 받아내며 써내려 갔을 그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세상에 나올 때 아무것도 없이 왔으니, 지금 들고 있는 모든 것이 덤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선으로 가는 가장 작은 행동 같다.
온라인 뉴스에서 만난 한 장의 사진을 보며 허탈감이 일었다. 천수를 누리고 갔다는 전두환과 그를 도왔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세를 믿고 싶어 진다. 이생의 삶은 순간이고, 내세에서 살아갈 삶이 길다면, 비록 이생의 삶을 누리고 살았을 지라도 내세의 그 긴 시간 동안 회계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 믿어 본다.
우리 손안에 든 자유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자유 또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보편성을 이야기했다. 악의 보편성만큼 선의 보편성도 있다. 선의 보편성이 확산되는 우리나라 사회구조가 있어 다행이다.
내세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 민주열사들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대를 지나온 이 사회를 잘 지켜낸 현재 사람들의 연결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