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한순구
눈앞에 올라야 할 거대한 산이 있다. 선뜻 오를 마음이 들지 않을 때는 한걸음만 먼저 생각해 본다. 한걸음은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인류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큰 산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연대기로 처음부터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보는 관점에 따라 부분적으로 발췌된 내용으로 들려주는 책은 한걸음이 된다.
저자는 게임이론으로 역사를 새롭게 보는 법을 알려 준다.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역사에서 알려진 사실들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3가지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적 사실은 옳고 그름이 명확할 수 없다. 해석력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역사관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들을 읽어야 할 이유다.
단, 1 %를 고려하지 못해 큰 실패를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 삶을 매의 눈으로 보게 한다. 99%가 그 작아 보이는 1%로 실패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것은 없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힘이 될 수 있다.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이 죽고, 다시 분열의 시대를 걸쳐온 중국 역사에서 항우와 유방의 격돌은 유명한 이야기다. 유방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가졌지만, 결국 항우는 자결로 패망한다. 저자의 말처럼, 항우가 자신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에게 보상을 조금 지연시켰다면, 끝까지 자신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가 아니라 관중으로 자신의 근거지를 옮겼어야 했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 수 있지만,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보여준다. 장개석과 모택동의 이야기도 그 한 예이다. 중국 본토를 지켜내기 위해 일본이라는 외부의 적에 맞서 협력했지만, 장개석은 내부의 적에게 패해 대만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유방을 위해 싸운 한신은 너무 똑똑해 ‘토사 구팽(토끼 사냥을 다 하고 난 후 죽게 되는 사냥개)’을 당한다. 살아남기 위해 한신이 처해야 했을 조언도 일리가 있다. 모든 욕심을 버린 듯 행동하고, 자신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유방을 향해 보여주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책 ‘정관정요’를 쓴 이세민은 당나라 왕이 되기 위해 두 형제를 죽였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은 번영을 누렸지만, 권력 앞에서는 형제나 가족은 도구가 되어버린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싸움인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외부의 강한 적을 위해 로마 연합군은 뭉쳐, 전쟁 이후 장군이나 특권층은 부를 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 사병과 시민들은 빈부 격차로 생계가 더 어려워지자 결국,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분란으로 로마는 무너진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웠다. 백제와 고구려보다 더 약세였던 신라가 두 나라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었다. 이 책을 통해 그 과정이 이해가 된다. 신라의 공신이었던 김춘추는 사위가 백제에 항복을 하게 됨으로써, 정치적 입장에서 살얼음 판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고구려, 일본, 당나라를 오가며 도움을 요청한 김춘추의 삶은 결국, 당나라의 도움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고 왕이 된다.
청나라를 피해 천해 요지였던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결국, 청사신들 앞에 삼배를 하는 수치를 겪게 된다.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고, 전례에 따른 안일한 대처 때문이었다. 겨울에 꽁꽁 언 강을 건너, 예전과 달리 여러 성을 함락하는 방법이 아닌 꼭꼭 걸어 잠가둔 성들을 그냥 지나쳐 6일 만에 한성까지 달려온 당의 속전속결법을 간파하지 못했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국가들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가, 상대적으로 군사의 수도 많았으나 사단별 권한을 부여한 방식 때문이다. 또한, 시민 권리에 대한 의식이 강화된 프랑스 군대는 전쟁을 자신들을 위한 전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 군대와는 동기가 차별화되어 있어서다. 바다 때문에 영국을 정복할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영국과 수입, 수출을 금지시켰고, 이로 인해 다른 유럽국가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가 영국의 수출, 수입으로 의존하는 국가들이 많았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 나폴레옹에게 자연스럽게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에서 링컨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었다. 노예 해방을 찬성하는 북군의 수가 훨씬 우세하고 식량도 풍부했지만, 실제 남군의 로버트 장군은 전술이 뛰어난 장군이었다. 하지만, 게티즈 버그 전쟁 전인 빅스 버그의 전투가 남군의 실패로 끝나자, 데드라인에 대한 시간제한 굴레 때문에 1% 성공 확률을 가지고 진격 명령을 내린 로버트 장군이 패하게 된다. 그때, 시간 제약에서 벗어나 회군을 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북군의 내부 정세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임기를 1년도 남기지 않았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북군이 전쟁에서 이기지만, 실제 노예 해방은 그로부터 2년 뒤에 이루어진다.
결국, 역사를 게임의 원리로 본다면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외부의 적을 위해 내부의 분열이 규합된다. 승리 후 공로자에 대한 합리적 배분이 차후의 분란을 없앤다. 조직을 위해 승리를 거두지만, 지나치게 자신의 공로를 과시하면 제거가 된다. 중요한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시간 제약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전례를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역사를 읽다 보면,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솔로몬 왕의 반지에 새겨진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다. 찬란할 것 같은 삶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 빛바랜 사진이 된다. 긴 인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시간은 순간처럼 짧다. 그 제한된 시간을 인식하게 해주는 게 역사다. 잘 알려진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