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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이동해

by 조윤효

시대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느낌이다. 요란했던 현직 대통령 탄핵 과정이 조용하게 역사의 뒷장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란 크고 굵직한 것들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역사도 모두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도 역사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 준다. 한 개인의 경험을 구술로 전해 듣고, 그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공부하면서, 개인이 살아낸 시대를 보여주는 책이다. 외할아버지 허홍무가 겪어낸 한국 근, 현대사의 이야기는 회색빛이다. 일제 시기부터 1959년 까지를 외할버지의 경험을 돋보기로 활용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가 잘 느껴진다.


아산 지주 집안이었던 할아버지의 왜정살이를 필두로, 몰락 속의 해방 전후 이야기,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 그리고 전쟁 후 풍경을 이야기한다. 계엄부터 탄핵까지 넉 달간의 짧은 기간도 마음이 무거웠고, 사라진 정의에 대한 분노가 짙은 안개처럼 일상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한일 합병 후 일제 치하에서 살아가던 조상들은 이보다 더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갔을 것 같다. 다시 안개가 걷히고 마음껏 봄의 기운과 꽃들의 화사함을 느낄 수 있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아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허홍무는 어릴 적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는 것이 그의 흑백 돌사진이 잘 보여 준다. 당시의 지주는 단지, 소작인위에 군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흉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을 돌볼 의무를 지닌 존재이기도 했다는 것을 책은 보여준다. 식민지 농촌 지주의 자선 행위는 조선 사회 지역유지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3명의 머슴이 있었고, 농촌의 권력인 정미소를 운영했던 허홍무 집안의 권세를 엿볼 수 있다. 일본으로 쌀을 싼 값에 가져가야 해서, 쌀로 만드는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한 일제 강점기에도 뒷돈을 주고 집안에서 몰래 술을 담가 마셨다고 한다. 땅을 파고 술독을 숨기고, 걸리면 뒷돈을 주고 무사히 넘어간 것이다. 서민들이 마시는 술에도 세금을 붙인 것은 보다 많은 세수를 늘리기 위한 일제의 정책이다. 빨대를 꽂아 조선의 단물은 모두 빨아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일본의 속국 상태가 현재까지 이어졌다면, 우리 삶은 어떠했을까. 일본의 오키나와 현 처럼, 자연스럽게 일본의 한 나라로 부당함에 대한 익숙함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쌀을 가마니에 넣어야 수출이 자유롭고, 양의 단일화와 손실을 줄일 수 있어 일제는 가마니 사용을 의무화했다. 당시 가마니 사용은 농촌 사회의 주요 산업이었고, 비농의 경우 60% 정도의 수입원이었다고 한다. 가마니 공급이 늘어나, 그 값이 폭락하기도 했던 시대의 대한제국의 농촌 사람들은 늘 생존을 위한 긴장감이 감돌았을 것 같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로서 법률 적용이나 대우, 급여에 차등을 줌으로써, 법률적 호칭으로 사용할 창 씨 개명을 반 강제적으로 시행했었다. 성을 바꾸는 라는 뜻이 아니라 씨를 새롭게 만들다는 뜻에서 창 씨를 실행한 제도는 조상의 근간을 잊게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초반 10년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일제 정치의 분위기 덕분에 학생 개인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을 시행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민학교의 모든 교사가 일본인으로 바뀌고, 한국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군인들로 길러 내는 사상을 주입하게 된다. 허홍무 또한 일본 선생님에게 매를 많이 맞았다. 일본인 교사들이 피지배자들인 조선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을지 상상이 간다.


일제는 임야 정책으로 숲을 잘 양성한 사람들에게 땅을 잉여한 조림대부제도를 시행했다. 허홍무 집안 또한 이 사업에 관여해 사유 재산을 늘렸다고 한다. 조선의 소나무를 탐냈던 일제는 조선 곳곳의 임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토지 또한, 소유자에 대한 명확성이 떨어져 더 용이하게 세금을 걷고자 토지조사 계획서를 1910년에서 1918년 동안 진행했다고 한다. 이때의 확정된 소유권이 지금까지 현재 대한민국 토지제도의 근간이라고 한다. 당시, 마을 단위로 면협의원은 후보자 추천회를 통해 정치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몰락 속의 행방 전후 이야기는 시대의 혼란이 개개인들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일본이 떠난 자리에 나라 안에서 좌, 우익이 대립하고, 미군정이 들어서는 동안에도, 일자리를 찾아 부평 공장 지구로 사람들은 몰려든다. 생계 앞에서 내일이 막막한 혼돈 속에서도 공부를 하고자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 준다. 초등학교도 갈 형편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당에서라도 공부를 하고자 했다고 한다. 서당에서 어린 학생부터 40이 넘는 학생까지 함께 공부했을 풍경이 그려진다.


허홍무 집안은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의 터무니없는 홍보로 금광 채굴에 뛰어들어 집안이 몰락하게 되고,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허홍무 가족은 마을을 떠나 외가댁과 가까운 마을로 이사 가고, 외삼촌과 자신의 아버지가 함께 정미소를 운영한다. 한때, 지주로 살던 습성이 있어 사돈이 서로 화합하여 정미소를 운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엄마와 떨어져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허홍무의 그 시기는 불안하기 그지없었을 것 같다.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3분의 1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것도 시험을 쳐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허홍무는 중학교 시험을 통과하고도 돈이 없어 등록을 할 수 없었다. 교육을 단지 의무로만 생각하는 요즘아이들은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이 얼마나 큰 삶의 혜택인지를 알까.


일제가 떠난 대한민국은 대혼란이었다. 가끔 분단된 우리 현실의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쉽게 예를 들어주었다. 우리 집 엄마, 아빠를 이웃집 사람들이 이혼시키고, 우리 집의 모든 일들을 그들이 돕는다는 명분으로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과 같다. 분단된 나라에서 60% 이상의 전력이 북한에 있다 보니, 남한은 전기가 부족했다고 한다. 북한 쪽에서는 지주들이나 면서기 같은 공직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인민재판에 의해 이웃 사람들에게 죽어나고, 남한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부역 행위자로 국군 헌병에게 총살당하는 그 혼돈의 시대에 개인의 삶은 없다. 그저, 몸 성하니 살아남아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해방 후 북한이 남한 보다는 경제적 여건이 나았다.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을 침략할 것이라고 소련에 요청했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장개석이 마오쩌둥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도망가고, 중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미국이 한반도를 방어선에 넣지 않는다는 발표가 떨어지자 북한의 남한 침공을 소련이 허락한다. 결국, 전쟁이 터지고, 물밀 듯 몰려드는 인민 공화국 세력들이 아산땅에도 나타난다. 매일 저녁 인민재판이 이루고 지고, 참여하지 않으면 죽음을 당한 시대에서 그나마 베풀고 살았던 허홍무의 집은 인민재판에 넘겨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뿐 허 씨 부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산에 땅을 파고 숨어 살던 허홍무에게 고모가 몰래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치안 공백 속에게 살아간 사람들의 잔혹성은 쉽게 상상이 간다. 흑인 노예들이 새운 나라 아이티 공화국은 정부가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범죄 집단들에 의해 나라가 내전 중이다. 민간인들이 살상당하고, 인권 보장이 없고 물론, 기본 생활도 힘든 상황이었던 아이티 공화국은 한때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남과 북한의 전쟁이 끝나고, 삼팔선이 확정되고 난 후, 남한 정부는 부족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복무 대상을 앞뒤로 일 년씩 늘렸다. 만 18세에서 29세의 남자들은 군 복무 동안 일본식 군국주의 영향으로 극단적 상명하복 분위기에서 구타와 비 인간적 처우로 탈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월급이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운전을 배우기 위해 허홍무는 시골에서 빌린 돈을 가지고 도시로 가지만, 이틀만에 병역기피자로 오인받아 강제로 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 허가가 나지 않아 4~5년 동안 군을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피로감이 느껴진다.


극장이 들어서고 젊은 연인들의 문화와, 군인들에게 무상으로 입장을 허락했다가 돈을 받게 된 과정들 그리고 연애결혼과 집안에서 정해지 혼처로 결혼해야 한다는 갈등들이 당시의 소용돌이 속 한 풍경을 보여 준다. 연탄집 아가씨와 결혼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한 허홍무 삶들이 하나의 흑백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한 개인의 삶은 짧다. 개인이 걸어가는 그 주변 환경이 역사가 가지는 배경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우리들은 얼마나 큰 복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일상이 전쟁인 곳도 있고,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로 본능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곳도 있다. 그런 모난 자갈길을 하나씩 골라내어 준 앞선 세대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안전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더 나은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민주 공화국인 대한 민국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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