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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나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시쿠라 후미노부

by 조윤효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정신없이 달리던 삶에 잠시 멈추라는 경종이 된다. 남동생 장인은 아직 젊으시고, 큰 키에 출중한 외모 덕분에 몇 번 뵙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분이시다. 속이 거북한 것 외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말기암이셨다는 것을 최근에 아셨다.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전 가족들과 거제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고 난 후 서울로 향하셨다. 병원에서 갑작스럽게 뇌졸증이 왔고, 9일 만에 가족 곁을 떠나 셨다. 명절이면 부모님 댁에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 주셨던 다정한 분이셨기에, 조금 충격이었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죽음은 가족들에게는 슬퍼할 현실감도 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리고 슬픔이 큰 파도처럼 밀려오리라.


2020년 전립 선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의사인 저자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호르몬 치료 덕분에 거의 3년을 더 사시다가 하늘로 가셨다. 어떻게 보면 인간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죽음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보편적 진리다. 저자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 모두의 삶의 숙제 같다. 책은 ‘전신암과 함께 살아가다’, ‘죽음을 준비하자’ 그리고 ‘100세 인생은 행복일까, 불행일까?’라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모든 것은 지금 당장 알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눈이 녹으면 보일 것이다.’ -괴테-


3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저자의 소망을 이룬 것 같다.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90세 부모의 말에 동감했다가 낭패를 겪은 저자 지인의 이야기는 좋은 조언이 된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에 여한이 없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 중에 하나가 부모가 먼저 떠난 자식을 위해 공양하는 역연이라는 말에 이모를 떠올린다. 사촌 수현이가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다 보고 가지 못한 그의 간절함은 어떠했을지, 떠난 자식을 위해 조용하게 공양하는 이모는 어떤 마음일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시려온다.

죽음은 빛을 끄는 것이 아니라 새벽이 왔기 때문에 등불을 끄는 것일 뿐이다.’ - 타고르-


저자가 준비하는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좋아하던 테니스를 계속하고, 새로운 취미를 위해 피아노도 배워보고, 의료 진료를 하고, 강연이 들어오면 강연을 다닌다. 그리고, 손자 유치원 하원도 도와주는 지극히 일상적이다. 단지, 죽음의 징조를 미리 알아두려고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연명 치료를 위해 거부를 자식들에게 알려 두었고, 저자의 바람 데로 집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집에서 곡기를 끊은 지 한 달 만에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 셨다고 한다. 말기 암 환자에게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고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먹어야 낫는다가 아니라 몸속 장기들에게 음식으로 일을 주기보다는 공복을 길게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낼 생각의 시간을 주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돌아보는 라이프 리뷰를 꿈속에서 만났다. 돌아보면 어린 자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아우렐리우스-


저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석양빛 강물이 연상된다. ‘요즘 들어 나는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처음부터 죽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일본 야구 선수의 인용말이 기억에 남는다. 재산을 남긴 사람은 하수, 사업을 남긴 사람은 중수 그리고 사람을 남긴 사람은 고수라는 것이다. 자신처럼 훌륭한 감독을 남긴 고수로 세상을 마감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사람을 남긴 고수가 될지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들려준다. 살다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살지는 못한다, 단지, 의식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잘살고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삶과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고,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저자는 지인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끝을 눈으로 확인하기보다는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은 크기에 따라 시간 흐름을 다르게 느낀다는 책 소개는 독특하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체중이 2배 늘면 시간은 1.2배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호흡과도 연결된다. 호흡이 느린 코끼리와 호흡 속도가 빠른 쥐의 삶의 길이가 차이가 있다. 의사인 저자는 심장 박동수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죽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를 가지며, 불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정리하는 저자는 이사를 준비하는 사람 같다. 남겨진 가족이 아픔으로 물건을 정리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삶이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팔딱거릴 때, 갑작스럽게 닥치는 죽음도 있고, 서서히 조용하게 진행되는 죽음도 있는게 자연이다. 끝을 생각하는 마음은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부르고, 부질없이 올라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힘을 준다.

오래 살기를 원하면 잘 살아라. 어리석음과 사악함이 수명을 줄인다.’ -벤자민 프랭클린


100세 삶이 행복일까? 100세 이상이 8만 명인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수 문제를 들려준다. 노년기 부부 갈등이나, 부인이 시부모와 남편까지 병시중을 하는 동안 함께 죽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다. 노년의 삶을 위해 오른손잡이이지만, 혹여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서 왼손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이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왼손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길 때 삶의 불편함을 최소화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읽었던 책중에 오른손잡이 사람들에게 새벽 양치를 왼손으로 해보라는 조언이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왼손 사용이 높아지고, 오른쪽 뇌 또한 자극이 되기 때문이리라. 부모님께 양치는 왼손으로 하시라고 다시 알려 드려야겠다.


황혼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 또한 일본 사회도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버드 대학에서 진행한 46~71세 간호사 5만 명은 손주를 돌보는 시간이 주 8시간을 넘는 경우 심장 질환의 위험도가 커진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딸 손주들 키우느라 응급실을 몇 번 갔던 셋째 형님이 떠오른다. 자식들이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키우는 게 안쓰러워 부모 된 입장에서는 당연히 도와주고 싶을 것 같다. 아이들을 안 낳는 것에 대한 우려에 앞서, 아이들을 맘 편히 낳아 키우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도와주는 제도가 필수인 시대다. 아이를 키우고 잘 길러내는 일이 개인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시대인 것 같다.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배려와 돌봄이 진정 앞서가는 선진국이 아닐까.


목숨을 읽는 것이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 요네스뵈-

죽음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상실은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속에서 죽는 것이다.’- 노먼 키즈

잘 정돈된 마음에 있어서 죽음은 단지 다음에 펼쳐질 대모험에 지나지 않는다.’ - J.K롤링

책 단락 사이에서 만나는 죽음에 대한 위인들의 명언들을 읽으면서, 공감도 가고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연결이 된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건강한 젊음과 손안에 든 귀한 삶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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