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최태성
앞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백미러가 있는 이유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로 안전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라는 백미러가 필수다. 학창 시절 역사는 외워야 할 오랜 옛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시절 저자 같은 역사 선생님을 만났다면, 역사는 평생 즐겁게 배워도 좋을 과목이 되었을 것 같다. EBS역사 강사이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는 400년 명문 경주 최 씨 후손답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100리 밖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로 유명했던 최 씨 가문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아낌없이 후원했던 명문가의 후손이다.
역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선을 배우는 학문이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란 말에 공감이 간다. 역사 공부를 통해 살아 가는데 영감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살아 있는 사람을 멘토로 정할 때는 검증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으나 역사 속 멘토는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완전체를 보여 준다. 나라가 시끄럽고, 역사관이 왜곡되고, 남북이 나뉜 것도 안타까운데,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주듯 나라가 동서로 분열된 것을 보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 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저자의 외침이 온몸을 흔든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역사가 네게 가르쳐 준 것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로 전개된다.
삼국 시대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정사로 인정받기 힘든 신화와 설화를 다룬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비교는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를 잘 보여 준다. 인어공주가 있다면, 우리는 해녀 ‘아리’가 있고, 트롤이 있다면 우리는 도깨비가 있다. 삼국유사 속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는 놀고 즐기는 여행에서 테마 여행으로 바뀌는 시대 흐름 속에서 잘 각색해 내면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에 역사와 문화를 담아낼 때, 세계적인 행사될 수 있다.
덴마크 미래학자가 이야기하듯 앞으로의 세계는 ‘드림 소사이어터 Dream soiety’로 향할 것이다. 정보화 사회를 넘어 꿈과 이야기 등의 감성 요소가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 같다.
역사는 아득한 시간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이라는 말도 공감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그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실체가 있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선례를 남기면 후손은 그 궤적을 따라간다. 눈 덮인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듯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발자국이 후손이 따라올 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차례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지만, 1954년 또다시 헌법을 고쳐 장기 집권하려 했던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의 길을 따랐고, 윤석열 대통령도 그 헛된 꿈을 꾸게 만든 것 같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역사의 영웅으로 만들어야 윤석열의 장기 집권이 정당화된다. 장기 집권을 위한 계엄령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윤석열이 역사 왜곡을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위싱턴은 3선 가능성이 높았으나 스스로 사양했다. 그는 선례를 남긴다는 역사적 안목을 갖고 있었기에 명확한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역사가 삶의 완벽한 해설서가 될 수 있음을 알 것 같다. 인류의 생존 방식은 연대를 통한 협력이다. 오늘날처럼 각자도생을 외치는 것은 생존에 분리한 방식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연대라 함은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강한 고구려와 선진 백제를 이기고 통일한 가장 작은 나라 신라는 황룡사 9층 목탑을 통해 꿈을 공유하는 매개체를 만들었다. 함께 꾸는 꿈이 불가능을 넘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의 나라 잉카제국의 폐망 또한 오만과 무지가 어떻게 한 나라를 망치는지 보여 준다. 180명의 군인을 동원한 피사로가 600~800만 병력의 잉카 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게 세계사다. 강하다고 자만해서도 안되고, 지금 약하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사람의 삶도 이와 같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생각 조건은 창의 융합형 인재라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구텐 베르크의 인쇄술이 세상을 바꾸는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구텐 베르크 보다 78년이나 앞서 직지심체요절에서 인쇄술을 사용했다. 단지, 구텐 베르크는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만들기 위해 열매의 즙을 짜는 압착기인 프레스를 활용해 금속 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보급성을 넓힌 것이다. 인류의 삶을 바꾼 획기적인 발상들은 창조라기보다는 조합에 가깝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하면 좋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연구한 것처럼 보이게 한 이유도 융합을 통한 보편성에 접근한 방식이다.
‘사람이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세상이 변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쌓고, 정보를 나누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자의 말이 지금 대한 민국이 직면한 상황을 극복하는 법을 말해주는 듯하다. 자국 이익 중심이 팽배해진 세계에서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역사가 보여 준다. 거란이 대군을 끌고 고려에 침입하지만, 정세를 정확히 알고 있던 서희는 오히려 강동 6주 땅을 얻어 냈다. 변방의 작은 나라 고려가 막강한 몽궐로부터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 또한 지혜롭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협상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함께 이기는 전략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고구려 장수왕은 체면보다 실속을 챙기는 유연한 자세로 전성기를 유지했다는 것 또한 우리가 눈여겨볼 사항이다. 세계는 더 이상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자국 실용주의로 변했다. 좌익, 우익이라는 역사 속 유물이 된 사상을 화두로 삼는 어리섞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북한 주민들의 오열과 슬픔으로 울부짖던 이유가 ‘경험의 공유’ 때문이라는 말은 ‘아하’라는 깨달음을 준다. 역경을 극복한 자신들의 젊은 시절과 그 성공과 연대감 때문인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옹호도 이와 같다. 자기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는 것이다.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를 역사 속 인물들은 잘 보여 준다. 삶을 던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김육은 땅을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내게 하는 제도인 ‘대동법’ 시행에 자신의 온 삶을 바쳤다. 결국, 지역 공물로 세금을 바치면서 고통받던 서민들의 삶이 한 사람의 의지로 나아지게 된 것이다. 이름도 없는 흙수저로 태어나 당나라에서 성공한 장보고가 신라로 다시 돌아와 완도 앞바다에 청해진을 만들어 왜구 침략을 막은 것 또한 대단한 일이다. 중국에서 자신의 부를 누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돌아온 그는 염장에 의해 암살당하지만 자신의 삶은 여전히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타인과 비교하는 삶은 자신을 쉽게 초라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면서 더 나아질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둘 때, 개개인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나무가 된다.
600억의 전 재산을 가지고 만주 서간도로 건너간 이회영은 학교를 짓고, 인재 양성을 하고 독립투사를 지원한 그의 삶도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다. 다음 세대에는 식민지 조국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 좋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독립투사들의 의지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편한 세상을 만들어 냈다. 법관 출신이었던 을사오적들과 달리 박상진은 국권을 상실하자 평양법원 발령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내고 대한 광복회를 조직하고 의열 투쟁을 했고 결국, 일제에 의해 삶을 마감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물으라는 저자의 말을 명심해 본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화두를 만났다. ‘한 번의 젊음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의 선배들이 후손을 위해 만들어둔 역사의 무대는 우리가 받은 선물이다. 우리 세대는 어떤 삶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까.
인생의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 역사다. 각자의 삶에는 자신만의 궤적이 필요함을 알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온도는 얼마인지 생각해야 한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함께 잘 사는 세상. 사람의 평가는 관계로부터 시작한다는 것 또한 역사가 보여 준다. 역사를 공부한 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공부하는 것이고, 인생을 공부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삶에 굴곡이 있듯이 지난 역사를 보면 굴곡이 있다. 그러나 긴 호흡을 가지고 보면 사람과 세상에 낙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살만한 세상에서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다. 역사 공부의 매력을 알려주는 좋은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