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by 조윤효

대학 때 이 책과 인연을 맺으려고 했었다. 낙관적이고 미성숙한 마음은 지루함을 이겨 내지 못하고 책을 덮게 만들었다. 가슴속에 있는 정체 모를 열정과 삶에 대한 호기심은 한 여성의 삶의 방식을 조용하게 관찰할 인내력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타인의 세상이 궁금해지는 나이가 된 걸까? 읽는 동안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일상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으로 홀로 독백을 하게 만드는 기묘한 현상이 생겼다.


책을 의무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 인 것 같다. '책은 사색을 위한 소재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일상에서 작은 것들을 관찰하는 힘이 서서히 생기고 있고 주위의 다양한 일들이 나도 모르게 사색의 도구로 바뀌는 것이다. 수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철학들이 머릿속 동굴 속에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필요로 할 때 하나씩 꺼내 서로 다른 것들을 끼워보고 맞춰 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들이 서서히 그 형체를 들어내는 단계를 밝아 가고 있다.


루이제 린저의 전체 얼굴이 책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아름답다. 그녀가 그려낸 이 책의 주인공 니나는 저자 루이제 린저를 무척 많이 닮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녀의 프로필에 반 나치 운동으로 감옥을 갔었던 것과 책의 니나도 같은 혐의로 감옥을 간다. 책은 그 시대를 가장 잘 보여 준다. 루이제 린제의 눈을 통해 히틀러 정권의 독일 소시민의 일상을 느껴 보고 싶었다.


니나를 18년 동안 짝사랑해온 의사이자 교수인 슈타인의 수기식의 편지글이 전체 소설 속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만든다. 소설과 글을 쓰고 있고 삶의 방식이 독특한 니나는 그녀의 언니 마르크 레트를 거의 이십 년 만에 만나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구조이다. 글 중 자매는 서로의 모든 것을 알기도 하지만 반대로 서로를 전혀 모를 수도 있다고 시작하는 마르크 레트의 1인칭 관찰자의 고백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그녀들은 후자의 경우이다. 며칠 후 영국으로 떠나기로 예정된 니나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삶의 방식들을 이해하기 위한 자매간의 대화가 시작된다.


생각보다 작가가 담고 있는 의미가 커서 마치 큰 바위 같은 느낌이 들어 내 것으로 어떻게 조각을 해야 하는지 망막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니나와 철저하게 자신이 정해놓은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언니 그리고 이상을 꿈꾸지만 실천할 용기가 부족한 삶의 방조자 같은 슈타인의 오랜 사랑이 어우러진 소설이다.


위험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열정적일 것도 없는 슈타인의 삶 속에 20살이나 어린 니나가 어느 날 잔잔하게 마음의 호수에 서서히 물결을 일으킨다. 슈타인과 니나의 대화 속에 니나의 말이 공감이 간다. '사람이 자기 속을 보이면 보일수록 타인과 더욱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말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말없는 공감이 삶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데 또 하나의 돛이 되어 용기 있는 결단을 심어 준다. 니나에 대한 슈타인의 사랑은 삶의 희망이었던 것 같다.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고 지배층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폭력이 만무하는 시대 속에 나약한 지식인이 선택한 희망은 마음껏 자기 색을 드러내는 니나를 희망으로 삶은 건 아닐까?


그 시대의 여자들은 살아 남기 위해 남자라는 울타리가 필요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각기 다른 두 아이의 아빠를 가진 자식들을 키우고 한 번의 이혼과 또 다른 사랑으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 남자를 보호하기 위해 떠나는 니나는 용감하다.


그녀는 '남들을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있어요'라고 항변한다. 그녀의 삶은 온전히 그녀의 선택으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것 같다. 글 중 마르그레트는 이야기한다. 니나가 그런 정신적인 자세를 얻기까지 그녀는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라고.


니나를 어려울 때마다 묵묵히 지켜 내주는 슈타인의 독백도 인상에 남는다.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생각될 때 이렇게 쉽게, 사는 것이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시대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시대를 그녀의 스타일에 맞추는 듯한 삶이다. 흔히,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한다. 하지만 모난 니나는 사랑스럽다. 그래서 슈타인은 그녀의 삶을 지켜내 주고 싶었나 보다. 용감하게 사랑하고 살아가는 니나의 삶과 그녀의 삶의 방식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슈타인의 사랑이 무거운 시대를 살아낸 시민들에게 어떤 위안을 주었을까? 머뭇거리기에는 생이 짧다. 특히, 젊음은 더욱 짧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의 여정을 통해 내 삶의 궤도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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