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후쿠오카

나 혼자 여행기

by 고은

달콤했던 휴학을 끝내고 '사망년'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3학년을 시작했다. 복학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과제에 치이며, 정신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어느 때처럼 커피 수혈을 하며 과제를 하고 있을 때 유튜브 뮤직의 추천으로 Vaundy 노래가 흘러나왔다. Vaundy의 踊り子. 정말 오랜만에 듣는 노래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들은 게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3월, 후쿠오카 여행을 하면서 Vaundy 플레이리스트를 매일 들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Vaundy 노래는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가져온다. 흩날리는 벚꽃과 빛나는 나카스 강,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들. 노래를 들으며 그날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기억에 젖어 잠깐 동안 현실에서 벗어난다. 언제 다시 벚꽃이 흩날리는 후쿠오카를 볼 수 있을까. 단지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날이 그리웠다.


후쿠오카 여행은 영국 여행을 간다는 대학교 언니의 말과 함께 시작됐다. 휴학생일 때 여행을 가라고 하지 않던가. 그럼 나도 휴학생이니까 여행을 가야지. 맥락 없이 시작한 나의 여행은 정말 생각의 흐름대로 진행되었다. 혼자 해외여행을 처음이었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치안이 좋은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일본이었고 그중에서도 혼자 가기에 가장 좋은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서치를 하던 중에 후쿠오카성 벚꽃 축제가 '3월 24일 ~ 4월 2일' 동안 열린다는 글을 보았다. 어느새 여행의 목적은 벚꽃 구경이 되어 있었다.


축제 날짜와 벚꽃 개화 시기를 생각해서 비행기를 예약했더니, 출국은 일주일 뒤였다. 시간이 없는 만큼 정말 모든 게 계획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여행을 위한 준비는 항공권, 호텔, 도시락 와이파이 예약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짐도 옷 몇 벌과 화장품, 여권 등 필수적인 것만을 챙겼고, 혼자 여행은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태블릿을 가져갔다.


출국 당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일본은 어두웠다. 본격적인 여행은 내일부터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잠에 들었다.



3월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부지런했다. 미라클 모닝에 빠져있었던 때라 6시에 기상을 하던 습관이 있었고 일본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2일차,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한 후에 밥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벚꽃의 나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온 세상이 벚꽃이었다.



마침 '이치란' 본점이 5분 거리에 있었고 24시간 영업이어서 아침으로 라멘을 먹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침 7시의 라멘 가게는 웨이팅이 없었다. 손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의 왼쪽 끝자리에 두 명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유창한 한국어가 들렸다. '해장은 라멘이지.'



후쿠오카성을 가는 길에도 벚꽃이 정말 많았다. 3박 4일 동안 몇 년 치 벚꽃을 다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도 벚꽃, 저기도 벚꽃. 추운 겨울에 지붕에 쌓인 눈 같았다. 벚꽃이 핀 거리가 새하얗게 빛났다.



이른 아침에 간 후쿠오카성은 축제 시작 전이었고, 부스가 오픈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녀서인지, 문득 여행객이 아니라 동네 마실을 다니는 주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어때. 하얀 꽃들과 맑은 아침 공기 속에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 다닌 덕에 발은 이미 부어있었다. 휴식을 위해 톈진 지하상가로 갔다. 이후 오후 5시에 다시 간 후쿠오카성은 축제라는 것을 멀리서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축제 장소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부스들도 많았고, 모든 거리가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필름 카메라로 일본의 풍경을 기록했다.



일본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저녁 시간에 진행하는 '라이트업' 이벤트였다. 밤 벚꽃을 보기 위해 공원의 이곳저곳을 돌면서 주변이 어두워질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라이트업'은 입장권을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었는데, 구역 1곳, 3곳(10000원 정도) 중에 선택이 가능했다. 3곳은 사쿠라엔(桜園・天守台), 다몬야구라(多聞櫓), 오타카야시키아토(御鷹屋敷跡)를 포함하고 있었다. 3곳을 볼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한 후 첫 번째 장소인 사쿠라엔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성터의 계단을 올라갔을 때 공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몰 시간대여서 해가 지고 있었었고, 벚꽃은 노란색 빛을 받으며 점점 푸른빛이 되었다.



두 번째 장소는 오타카야시키아토, 벚꽃 옆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오전에는 열지 않았던 포장마차들에 불이 켜져 있었고,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올 때쯤 손에 티켓이 없는걸 확인했다. 역시 일본에서도 물건을 잃어버리는 습관은 그대로였다. '날도 어두워졌는데, 호텔로 가야겠다.'라는 일종의 정신 승리를 하며, 결국 마지막 라이터업 장소는 보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가며 후쿠오카성 근처를 다시 지나갈 때, 벚꽃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물에 비친 벚꽃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쿠오카를 갔다 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지인들에게 봄에 일본을 꼭 갔다 오라는 말을 한다. 봄에 후쿠오카를 갈 수 있는 날이 또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