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새벽 예불에서 108배까지

by 고은

"아니... 이 길 맞아?"
"모르겠어... 으어... 무섭다."


새벽 3시 50분, 숙소 문을 열고 나오니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길도 잘 모르고 주변도 어두워서 헤매기만 했다. 보타전을 찾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향했는데 1500여 개의 관음상이 보이지 않아서 그제야 잘못 온 걸 알아차렸다. 겨우 시간을 맞춰 4시 반에 보타전에 도착했다. 문 앞엔 이미 네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네 명이 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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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방석 하나를 꺼내 들고 빨간색 책도 챙겼다. 책에서 반야심경을 펼쳐 스님의 말씀에 맞추어 절을 드렸다. 어제 뵈었던 스님께서는 “예불을 드릴 때는 눈치가 빠르면 좋다”라고 하셨다. 내 자리 앞에는 기둥이 있어 스님이 보이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을 힐끗힐끗 보며 동작을 따라 했다. 반야심경을 따라 읊어보기도 했다. 낯설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예불 이후에 찍은 사진


15분이 지난 후 보타전에서 나와 무료 차를 제공하는 건물로 향했다. 커피, 율무차, 보리차가 보였는데 배가 고파 율무차를 한 잔 뽑았다. 옆에 놓인 긴 탁자에 앉아 단 맛을 음미했다. 보타전 옆의 작은 절에서도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앞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새벽의 맑은 공기와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감정이 반가웠다.



율무차를 한 잔 더 마시던 중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가 있는 것 같아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아주 애교가 많은 녀석이었다. 사람 손길에 익숙해 보였고 배도 스스럼없이 보여줬다. 우리 집 앞 편의점 고양이가 제일 애교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날 생각이 바뀌었다. 귀여운 녀석. 우리가 다시 올라가자 잠시 후 계단을 타고 올라와 탁자 위에 앉았다. 동그란 뒷모습이 치명적이었다.



6시에 있는 아침 공양 시간에 맞춰 1층으로 내려왔다. 밥을 얼른 먹고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이 속도라면 이미 해가 다 떠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를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침 공양은 어김없이 맛있었다. 어제 가장 맛있었던 청경채가 다시 나와서 좋았다. 브로콜리, 버섯, 두부 등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반찬들이 담겨 있었다.



아침 공양 후에는 의상대에서 일출을 보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친구와 사진을 찍었다. 이후 해수관음상 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문을 열고 있었다. 친구와 하나씩 사서 먹었는데 나는 설레임 바닐라라떼맛을 골랐다. 믹스 커피처럼 달콤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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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마친 뒤 숙소로 들어와 맨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가 카페 다래헌에 가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좋다고 했다. 슬프게도 오픈 시간을 착각해서 다래헌에 가지 못했다. 다래헌 오픈 시간은 오전 9시였다. 주변을 조금 돌다가 수련원으로 돌아갔다.


수련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는 쿠키 기념품을 샀고 아까 봤던 고양이와 다시 마주쳤다. 쓰레기통 뒤에 있던 고양이의 머리를 살짝 긁어주자 애교를 부리며 내 곁으로 나와줬다. 고양이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9시 20분부터 11시까지는 108배 체험이 있었다. 스님께서 먼저 108배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 뒤 절을 하는 방법과 염주를 꿰는 순서를 알려주셨다. 설명이 끝나고 동영상에 맞춰 염주 꿰기를 시작했다. 절을 하다 보니 마치 버피 테스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갔다. 완성된 염주는 작고 귀여웠다. 손으로 만지면 매끈한 감촉이 느껴져서 손가락으로 계속 돌리게 됐다. 그리고 작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염주와 함께 실로 묶었다. 스님께서는 1년 뒤에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내 소원은... 비밀이다. 체험이 끝난 뒤 간단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고민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명상을 꾸준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스님께서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번뇌에 빠질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받았던 옷과 베개 커버를 반납하고 가방을 챙겨 수련원을 나섰다. 1박 2일 동안 편안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산뜻했다. 왼손으로 염주를 달그락거리며 흔들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속세 음식을 먹었다. 낙산사에 도착했을 때 먹었던 쌀국수 가게에서 햄버거도 팔고 있었다. 역시 햄버거는 맛있었다. 시간이 남아 바다 구경도 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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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나는 정말 번뇌에서 자유로웠을까? 아니었다. 다시 취업 걱정과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머리를 채웠다. 더 나은 선택, 더 행복한 삶을 원했다. 아직도 욕심이 많았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보였다. 요즘 매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1박 2일 동안 잠시 번뇌에서 벗어난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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