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리커피, 연경재
“나, 다음 주에 부산 내려가.”
인턴 퇴사 후, 3박 4일 동안 부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커피’. 평소 무계획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유튜브에서 부산의 유명한 카페들을 찾아 저장해 두었다. 둘째 날 2곳, 셋째 날 2곳, 마지막 날 2곳. 나름 커피 투어 동선까지 계획했다.
첫째 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부산행 KTX에 올랐다. 부산에 도착했을 땐 시간이 꽤 늦어 있었다. 숙소 근처 쌀국수 가게에서 저녁을 해결한 뒤 체크인을 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일 방문할 카페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처음 가려고 한 카페가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서 적어도 9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눈을 뜨자마자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숙소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 달려 중앙역에 도착했다.
첫 번째로 향한 카페는 에어리커피였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농축유 라떼’. 일반 우유에서 수분을 더 날려서 달콤하면서도 크림치즈 같은 독특한 풍미가 느껴진다고 했다. 가격은 일반 우유의 다섯 배 정도 비싸다고 한다. 버스에서 미리 메뉴판을 확인했는데 농축유 라떼 가격이 32,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매장에 도착한 후 충동구매를 막기 위해 메뉴판은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매장 1층에는 바 테이블 형태의 1인석과 2인석 세 자리가 있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잘 정돈된 원두 진열대가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의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오픈런을 해서 그런지 1층엔 나 혼자뿐이었다. 2층에는 4인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창가 자리에는 외국인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스며들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주문한 필터 커피를 직원분이 2층 자리까지 가져다주었다. ‘에티오피아 마테 마테오스 콜드 퍼먼테이션 내추럴’. 한 모금을 마시자 부드러운 산미가 먼저 느껴졌고 마무리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산미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이렇게 맛있는 필터 커피는 처음이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농축유 라떼 메뉴판을 확인해 봤다. 그런데 2만 원이었다. 버스에서 봤던 3만 2천 원보다 훨씬 저렴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농축유 라떼 세트를 결제했다. 잠시 후 음료와 함께 직원분이 원두와 농축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농축유 라떼는 레몬 같은 산미가 나면서 라즈베리 향이 은은하게 났다. 민트 초코 맛도 살짝 느껴졌다. 농축유는 달달한 크림치즈 맛에 바닐라 향이 살짝 감돌았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연경재였다. 4층짜리 건물로 우드톤 인테리어가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3층까지는 홀, 4층은 오피스 공간이라고 했다. 이곳은 에스프레소가 유명한 카페였다. 이미 연달아 두 잔의 커피를 마신 터라 속이 살짝 쓰려 에스프레소 대신 플랫 화이트로 주문했다. 우유가 들어가서인지 에스프레소의 특별함을 온전히 느끼긴 어려웠다. 그래도 고소한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았다. 3층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큰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세 잔이나 연달아 마시니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드립 커피의 카페인 함량이 에스프레소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는 걸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어지러움을 참다 결국 숙소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캡슐 호텔에 묵었는데 2층에 투숙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카페 공간이 있었다. 마침 사람들이 모두 외출한 시간이라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일기를 적어 내려갔다. 하루를 정리하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든 생각은 커피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이 꽤 크다는 것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카페에서 어떤 향과 맛을 만나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