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권은 1장 더 받아야 맛이지!

by 이은경

첫인상 만으로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순전히 외모, 말투, 행동을 보고 좋게 느끼는 사사로운 감정.

보청기 센터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그룹으로 굳이 나누어 보면 첫 번째 그룹은 부부 사이에 알콩달콩 오시는 경우, 두 번째 그룹은 부모님의 나이와 상관없이 자식이 같이 오는 그룹, 마지막 그룹은 아는 지인끼리 센터 소개차 오는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어르신 부부에게 처음 만남부터 호감을 느꼈다. 솔직히 얘기하면 어머님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이 어르신 부부는 내가 센터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센터 고객 이셨다. 들은 바로는 아버님이 신장투석을 주기적으로 받으셔야 하는 몸상태 이어서 역시나 근처 병원 방문길에 센터에 오셔서 가끔 보청기 점검을 받으신다고 하신다. 몇 년 전 처음 어르신 부부가 센터를 방문하셨을 때 나는 어머님을 보고 흠칫 놀랐다. 다른 날과 같이 그날도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센터 문이 열리고 키가 175cm 정도 되는 어머님이 한 손으로 문을 잡고 뒤쪽을 바라보며 대기하니, 곧이어 그 뒤를 아버님이 쫄래쫄래 따라 들어오시는데 두 분의 키 차이가 족히 20cm는 되어 보인다. 두 분은 키 차이만큼이나 나이차이도 상당히 나 보인다.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할아버님과 어머님이라고 두 분을 칭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조금 혼란스럽다.

80대 초반의 아버님은 160cm가 안 되는 작은 키와 체구에 동그란 얼굴형, 살짝 눈이 처진 귀여운 이목구비를 가지셨고, 신장이 안 좋으신 탓에 얼굴 혈색이 짙은 나무줄기처럼 어두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머님은 그에 반해 175cm의 모델을 능가하는 키와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딱 보기 좋은 체격이시다. 실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50대 정도로 밖에 안보이신다. 중단발의 펌 헤어스타일로 오실 때마다 완벽하게 웨이브를 뽐내고, 얼굴은 방금 전 마사지 샵을 다녀오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볼과 이마에 진주펄 광이 차르르 난다. 본인의 우아함이 잘 드러나게 웜톤계열 스타일링으로 따스함과 편안함을 더했다. 어머님의 화룡정점은 작약 꽃향기로 추측되는 플로럴 계열의 향이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난다는 것이다. 그 뒤로 몇년 동안 어머님은 처음 그 모습, 그 향기 그대로시다. 단 몇 초 사이에 두 분이 어떻게 결혼하셨는지 궁금해지지만, '할아버지가 진짜 많이 쫓아다니셨을 거야.'라며 혼자서 단정 지어 버리는 심심한 상상을 해본다.

어머님은 성격도 밝으시다. 아프신 아버님을 안쓰러워하면서 말씀 끝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신다. 이러니 누구라도 이 어머님을 만나면 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센터에서 내 자리는 대기실 한편에 있는데 정면은 출입문, 한쪽 벽은 상담실로 통하는 문, 다른 두면은 벽이다. 창문이 없는 벽이어서 자연 채광을 느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런 탓에 매년 겨울, 기온이 낮고 흐린 날이 건 기온이 높고 맑은 날이건 모두 그리 따뜻하지 않다.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8시간은 지속 가능한 대형 핫팩과 발목까지 올라오는 어그, 목에 두른 스카프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의 겨울 필수품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스타일링보다는 추위로부터 내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검정연필 같은 모습이 되었다. 어두운 헤어컬러에, 블랙엔 화이트 스트라이프 스카프, 회색 후드티에 패딩조끼, 검은색 바지와 어그.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이 검정 연필 같은 스타일링으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 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냄새를 만든다.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 하지만 기왕이면 좋은 향기가 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나 역시 향수를 종종 사용했다. 그런 나는 이 어머님을 만나고부터 향수를 더 가까이하게 되었다. 전에는 머스크, 플로럴, 우디 향을 가기지 않고 사용했지만, 어머님처럼 향기로 나를 표현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너무 강한 머스크향은 쫌 멀리하고, 달달한 향과 깨끗한 향으로 나를 표현해 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에서 "언니 향수 어떤 거 써요?"라는 질문에 잦아져서 기분 좋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어머님에게 귀여운 반전이 있다. 센터가 있는 건물은 분당에서도 오래된 건물이어서 최근까지도 주차권을 넣어야 하는 방식으로 주차장이 운영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차권이 필요한신 분은 센터를 나가시기 전에 주차권을 받아 가시는데, 이 어머님은 매번 너무 귀여우시다. "주차권 드릴게요." 하면 항상 "1시간짜리 한 장 더 줄 수 있어?" 라고 하시며 미소 지으신다. 내가 이미 어머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기에 이 과정에서 둘 사이 미소가 한 번씩 더 오갈 뿐이다. 살뜰히 꼭 꼭 주차권을 1장씩 더 챙기시는 모습이 몹시 귀엽기만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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