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수

by 이은경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보청기 센터에 근무하면서 '소등을 안 하고 퇴근했다' 던 지. 이런 실수는 다음날 출근했을 때 '사장님이 오늘도 나보다 늦게 출근하셔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귀여운 실수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근무 중 내가 저지른 역대급 실수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남은 일생동안 다시는 저지르고 싶지 않은 실수이다.

보청기 센터는 평수가 크지 않은 하나의 공간이다. 그 안에 사무집기와 책장, 검사 장비, 테이블 2개 등이 고정되어 있고 이곳에 대기실과 상담실에 각각 5명씩만 들어가도 꽉 차는 곳이다.

대기실과 상담실 사이는 유리벽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사장님이 상담실 안쪽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대기실의 손님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 유리벽의 대기실 쪽에는 그동안 사장님께서 보청기 업체로부터 받은 "올해의 영예로운 센터상"등 트로피와, 사장님이 그동안 봉사활동들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 어르신들 눈높이를 고려해 한 단에 쭉 놓여있고, 그 아랫단은 소모품으로 판매되는 보청기 배터리, 여러 곳의 보청기 업체들에서 만들어준 보청기 데모등이 있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트로피들은 모두 한 곳의 보청기 업체에서 매해 준 것 들이다. 예전에 사장님이 그 업체에 근무하면서 이 쪽 일을 배우신 인연이 지금까지 좋게 이어진듯하다.

손님들은 대기실에서 트로피와 사진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보청기를 구매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과 믿음을 얻는 듯하다. 솔직히 보청기 센터는 동네에 여러 곳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청력 검사 후 보청기를 제안하고 세팅하고 케어만 한다. 내가 근무한 센터처럼 사장님이 직접 간단한 수리까지 하는 곳은 드물다. 다른 센터는 보청기가 고장 나면 본사로 AS접수를 해서 서비스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상당한 시일을 보청기 없이 지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실수는 바로 사진들이 놓여 있던 선반의 디퓨져가 화근이었다. 이 디퓨저로 말할 거 같으면 대기실이 환기도 잘 안 돼서,, 또 근무 환경에서 좋은 향기가 났으면 하는 마음에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후 내가 직접 집에 선물 들어온 것 중 하나를 가져가 선반 한쪽에 놓아둔 것이다. 요즘은 고체 타입도 많이 나오지만 내가 가져다 놓은 디퓨져는 액체 타입에 스틱을 꽂아두는 예전 방식 제품이다.

보통은 오후 5시를 전후에서 마지막 업무로 사무실 정리를 하는데, 테이블이며 선반을 닦고, 컵을 씻어두는 정도이다. 곧 있을 퇴근을 생각하며 손걸레를 야무지게 빨아와서 상담실의 사장님 책상부터 닦기 시작해서 그 문제의 디퓨져가 놓인 선반을 닦는데,,,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손을 어떻게 움직인 건지,, 나도 모르게 디퓨져가 아래쪽으로 떨어지면서 그 안에 든 내용물이 다 쏟아졌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게 영화처럼 기억난다. 쏟아진 곳이 그냥 바닥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유리벽 선반의 가장 하단은 동글동글한 돌멩이들이 꽉 채워져 그 사이사이로 화분 3개가 놓여있다. 그 옆으로는 훨씬 자잘한 자갈 위로 물이 어느 정도까지 채워져 있고, 공기순환 펌프가 돌고 있고, 그 안에 나의 상꺼풀처럼 생긴 귀여운 관상용 새우가 살고 있다. 눈에 잘 띄는 빨간색 새우 2마리, 보통의 새우 색 3마리가 그 안에 살고 있었다. 상상이 되는가 그 예쁘고 작은 새우 생명들이 있는 그곳에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정말 너무너무 걱정이 되고, 순간 멘붕 상태가 되었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서 그 작은 새우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번뜩 떠오른 것이 사장님이 사용하시는 키친타월이었다. 나는 키친타월 한 롤을 쉴세 없이 풀어서 물 위의 기름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뉴스에서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장면에서 종이포로 기름막을 걷어내던걸 본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은 그 사고에 비할 수 없이 작고 미비한 것이지만, 이번 실수로 내가 심리적으로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거의 키친타월 한 롤을 다 썼을 때쯤 드디어 물 위로 기름막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100% 원래 되로 수습을 마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물의 기름막을 거둬내고, 앞쪽의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나무 바닥에 기름성분이 스며들 법도 한데 발을 디딜 수 없이 미끄러웠다. 한동안 그 미끄러운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내 실수를 이야기하는데, 생각보다 놀라지 않으시는 사장님의 반응에 너무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새우가 살아있는지 유심히 보니 애들이 너무 놀라서 숨은 건지, 죽은 건지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출근길 두발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새우들을 찾아보는데 색깔 없는 2마리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동안 아침마다 밥을 챙겨주며 정이 들었었는데... 그렇게 나의 실수로 새우 3마리를 보내고, 정말 말도 안 되게 그로부터 한 달 뒤쯤 이번엔 사장님이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해서 남아 있던 새우들마저 모두 죽게 되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 장면을 다시 보는 건 나에겐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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