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보청기를 사용하는 분이 계시거나, 혹은 보청기를 착용 중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청기 사이즈가 평균적으로 성인 여자 엄지손톰 정도 크기입니다. 이렇게 작은 몸체 안에 소리를 받아들이는 스피커, 가장 중요한 부품인 앰프, 리시버등의 부품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청기 자체도 작은데 그 안의 스피커, 앰프, 리시버는 대체 얼마나 작을지 상상이 되시죠?
그 작은 보청기는 사용이 수월한 기계는 아닙니다. 가격도 비싼 건 한쪽에 300만 원 이상입니다. 이런 고가의 보청기가 고장이 나거나 말썽을 부리면 당연히 누구나 속상하고 화가 날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보청기가 이상하면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고 즉시 센터로 오십니다.
센터에 보통 제가 출근하는 시간은 8시 30분경입니다. 출근해서 바로 해야 하는 몇 가지 일이 있고, 서수원에서 분당까지 대중교통으로 출근 인지라 혹시 모르니 여유롭게 출근합니다. 도착하면 못다 한 메이크업 마무리를 위해 쿠션팩트도 팡팡팡 두들겨주고, 챙겨간 사과 2~3조각도 먹고, 사무실의 모든 멀티탭을 켜고 냉난방기기도 가동합니다. 본인에게 정말 짠돌이신 사장님용 물도 화장실에서 받아와야 합니다. 이게 은근히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세면대에서 200ml 머그컵에 수차레 물을 받아 1.8L 페트병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사장님은 그 물을 커피포트에 끓여 하루 종일 보이차도 드시고, 계절에 따라 아이스커피, 핫커피도 드시고, 간혹 컵라면도 드시곤 합니다. 이런 일련의 준비 과정을 마치며 9시가 거의 다 되고 뒤이어 사장님이 출근을 하십니다.
하루는 전날 저녁에 보청기가 이상했던 단골 어르신이 사장님 뒤를 이어 바로 센터에 오셨습니다. 어르신은 용인 쪽에 거주하시는데, 분당 쪽으로 병원도 다니시고, 친구분들도 만나시는 등 이쪽에서 활동을 많이 하세요. 아침 일찍 나오셔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시고 센터 오픈 시간에 맞춰 오시는 겁니다. 어르신은 보청기가 이상해서 오시는 건데도 이런 일이 비번 하기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지하철 쪽에서 갓 구운 따뜻한 호두과자도 한 봉지 사 오셨습니다. 여기 호두과자 여름에 먹어도 맛있습니다. 큼직한 후두 알갱이, 과하게 달지 않은 팥앙금, 바로바로 굽는 시스템. 어르신이 호두과자 봉지를 무심하게 주시며, "먹고 해라"라고 한마디 하십니다. 그 후 사장님께 "보청기 봐줘, 이상해" 이러시며 보청기가 어느새 사장님 손으로 건너가 점검을 받는데 대부분 귀지나 먼지 때문에 스피커 쪽이 막혀 작동이 안 되는 경우입니다. 어르신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사장님이 현미경으로 보청기를 보고 에어건으로 귀지나 먼지를 제거하면 정말 단 10여 초 사이에 보청기가 다시 살아납니다. 어르신들마다 다르긴 한데 어떤 분은 보청기 관리를 안 해도, 여기서 말하는 관리는 1주일에 한두 번 안 쓰는 칫솔로 보청기 소리 들어가는 쪽을 털어주고, 마른천으로 보청기 표면을 닦아주는 게 다입니다. 처음구매 후 몇 년간 아무 불편 없이 사용하시는 분도 계시고, 반대로 어떤 분은 주기적으로 보청기가 귀지로 막혀서 센터에 오시곤 합니다. 보청기를 사용하면 귀 입구를 막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귀지가 더 많이 생기는게 보편적이지만 사람에 따라 보청기 센터를 방문하는 횟수가 달라지는 게 신기합니다.
쉽게 해결되는 문제로 번번이 센터에 방문하시는 게 미안한 어르신들은 빈손으로 못 오시고 호두과자며, 과일, 박카스 등을 사 오곤 하십니다.
센터가 위치한 건물 1층 코너에 과일가게가 있습니다. 바구니라는 말보다 소쿠리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에 수북이 담긴 복숭아며, 참외며, 그 많은 과일은 점심때를 정점으로 무섭게 팔려나가고, 오후 4시경엔 거의 모든 장사가 끝나고 정리를 하는 좌판 가게입니다. 이 과일가게에서 어르신들이 과일을 사다주시는 겁니다. 당연히 번듯한 상점에서 판매되는 과일과 다르게 조금 작고 못생기기도 했지만, 그 가게 특유의 푸르스름한 비닐 과일 봉지를 들고 센터를 방문해 주시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매번 귀하게 받아서 사장님께 전해드립니다. 어르신들은 일종의 보청기 AS차 방문을 미안하게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사장님도 그런 어르신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작은 부분에도 성심을 다하십니다. 그런 사장님과 어르신들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정과, 신뢰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