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기에 더 아픈

by 자하

엄마란 무엇일까?

엄마의 존재를 단 한 번이라도 자세히 생각해 본 적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나의 기원이자 모든 것인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싸우고 만다. 오늘은 잠시 엄마와 나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다.


우리는 역시 같은 가족답게 짙은 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엄마의 거친 성질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오게 되었다. 쉽게 화가 나고 큰 소리를 치며 쉽게 흥분하는 그런 성격말이다. 시작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에 벌어질 수 있는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게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잔소리라는 것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고 물론 나도 잔소리를 싫어한다. 엄마도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잔소리를 하고 듣게 된다. 나는 그런 사실에 화가 났고 엄마는 그런 사실에 그만 지쳤을 뿐이다. 그게 다이다. 뭔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 하던 대로 건성거리며 대답을 했고 엄마는 그것에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린 이미 곯을 대로 곯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서로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참아왔던 것인 게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후벼 팠다.

방을 닫으며 들어왔을 때는 이미 늦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잘못의 무게는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다르다고 단정하며 나 스스로 수긍해 버렸다. 그리고 감정이 점점 진정되자 극도의 죄책감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를 엄마로 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보다 큰 몸을 갖게 되면서 그만 엄마라는 선을 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저 미안함.

또 그 미안함을 넘어서는 죄송스러움.

여러 가지의 감정이 복잡하게 흘러가며 머릿속은 점점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나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자신을 먼저 굽히며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딸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쭈그리고 있는 동안 엄마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어쩌면 영영 못할 수도 있다. 엄마가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갈 시간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나의 자존심을 조금 접어서 엄마에게 날려야겠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