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쪽이 어른이라면

by 자하

공방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름 앞에 ‘쌤’이라는 말이 붙는 사람들, 매년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상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공방을 ‘우리 집’처럼 여기는 사람들. 그 틈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낯설고 서툰 손끝, 그리고 매사에 조심스러운 말투로 하루하루를 시작했다.


“그분은… 말이 너무 직설적이야. 뭐랄까, 나보고 직접 그런 건 아닌데 꼭 나한테 들으라는 말처럼 해.”

엄마는 김치찌개를 끓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떤 말?”

“그냥, 뭐. ‘왜 이렇게 느리지..’ 같은 거? 딱히 누굴 찔러 말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그냥 듣고 넘기더라고.”

그 말을 하면서도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마치 그런 말을 꺼낸 것 자체가 어리광이라도 되는 듯이.

“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고.”

엄마는 꼭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나는 안다.

엄마는 화가 났다. 억울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할 줄을 몰랐다.

살면서 불편함을 말해본 적이 없는 사람.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표현하면, 자신이 틀린 것 같아지는 사람.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뒤를 돌았다.

나는 등 뒤에서 봤다.

말을 마친 뒤에도 몇 초를 더 서 있던 엄마의 뻣뻣한 어깨를.

엄마는 싸우지 않았다.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더 조심했다. 더 작아졌고, 더 늦게 들어갔고, 더 오래 남아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이 엄마를 노려 말한 게 분명한데, 엄마는 “그냥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걸 수도 있지”라며 넘겼다.


“나는 뭘 해도 항상 좀 느리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꾸 수틀을 다시 푼다. 분명 괜찮아 보이는데도, 다시 푼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넣고서야 안심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아무도 모르게 반복하는 것 같았다.


가끔 엄마는 말없이 한숨을 쉰다. 밥을 하다 말고,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창문을 열다 말고. 그러다 조용히 실을 꺼낸다.

그건 대답이 아니라 회피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엄마다운 방식의 저항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맞서지 않지만, 포기하지도 않는 방식.

할 말은 많지만, 말 대신 실로 감정을 덮어두는 것.


어떤 날은 그런 엄마가 너무 안쓰럽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존경스럽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말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실을 고르는 엄마가.

그런 마음이 작품 속에 한 땀 한 땀 박혀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공방은 여전히 텃세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엄마는 그 속에서 아직도 ‘그냥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때문에 혼자 스스로를 자책한다.

엄마는 어쩌면 그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그 사람 앞에서 작아진 자신을 더 미워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말을 아낀다. 대신 실을 고르고, 수틀을 편다.


나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자란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짠하고, 때로는 이상하게도… 닮고 싶어진다.

세상과 부딪히기보다 견디는 쪽을 택한 사람.

말 대신 작품으로 대답하는 사람.

엄마는 오늘도 묵묵히 실을 고른다. 그 조용한 선택이 사실은 가장 큰 용기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부끄럽게도 요즘 시험기간이라 연재시간을 놓쳤습니다..ㅠ

다음번에는 꼭 맞추도록 노력할게요!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