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솔로입니다

소개팅 망한 소소한 썰입니다

by 검정

이 이야기는 처참한 결말, 아니 어쩌면 뻔한 결말로 마무리가 된다.

때는 2개월 전쯤으로 돌아간다.


내 나이 어느덧 27살, 회사 퇴근 후 집에 가서 소파에 누워 다리를 긁적이며 TV를 틀고 맛있는 것을 시켜 먹는 낙으로 살고 있다. 예전에는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서 놀거나 술을 마셨지만 어느덧 친구들도 한 명씩 커플이 되어 솔로를 탈출하였고, 금요일이나 주말에 커플인 친구들을 불러내기도 애매했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혼자서 TV를 보면서 베라나 엽떡을 시켜 먹는 삶! 얼마나 좋은지! 나는 커플들이 단 1도 부럽지 않았다. 혼자 있는 삶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슬슬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고, 30세 전까지는 시집 보내고 싶다는 엄마의 설레발에 40살이 되도록 시집 못간 친척 언니들처럼 나도 똑같은 루트를 밟을 거 같으니 기대하지 말라고 투닥거리면서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과 더불어 연애 및 결혼에 대한 조급함이 조금씩 생겨났다. '이러다 혼자 늙어죽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조금씩 생기자 혼자 다리를 긁적이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 모습이 갑자기 한심해보이던지!


나랑 비슷하게 오랜기간 솔로로 유지하던 대학교 친구의 잘되가는 소개팅 썰과 망한 줄 알았던 소개팅을 통해서 결국 연애까지 이어진 글쓰기 모임 멤버의 썰을 들으며 몇 년간 자만추를 고집하던 나의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소개팅을 해주고 싶다던 대학 선배의 말에 단칼에 거절했던 나는 미련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 소개팅이 아직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소개팅으로 연결되었다.


오랜 기간 솔로로 꽤 만족스럽게 살아온, 또 소개팅을 해준다고 하면 단칼에 거절했던 나의 소개팅 소식은 주변 사람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년에는 드디어 솔로 탈출이냐며 나 대신 설레발을 치는 지인도 있었다. 이번 생은 솔로 탈출이다! 혼자 먹는 음식도 같이 먹는다면 더 맛있겠지


소개팅 남과의 카톡은 꽤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졌다. INFP라던 소개팅 남은 꽤 다정하고 친절해보였다. 아침이 되면 "좋은 아침입니다"와 점심시간이 되면 어떤 점심을 먹었는지 궁금해했다. 카톡으로만 알게 된 요약 정보는 클래식과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카톡으로 꽤 얘기를 나눈 후 얼굴도 안 본 소개팅 남이 보낸 ❤이모티콘은 조금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되었다.


샀지만 안 입었던 검정색 롱치마를 뒤적뒤적 찾고, 나름대로 화장도 하며 소개팅 룩을 완성시켰다. 지하철 역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카톡으로 소개팅 남의 사진을 미리 봤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하얀색 안경에, 하얀색 윗옷과 바지로 나름대로 멋을 낸 모습이었다. 어색하게 인사 후, 걸음을 이동했다.


대화를 하면서 한 가지 확실히 느낀 점은 그는 매우 매우 과묵하다는 것이다! 이동한 후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됐다. 마치 한 편의 예능 진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은 마치 유퀴즈의 유재석!? "직업은 어떤 직업이세요?", "좋아하는 음악은 어떻게 되세요?", "어떤 취미 활동을 하세요?" 등등 다양한 질문과 더불어 적절한 리액션과 반응은 필수였다. 특이한 점은 소개팅남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예능 진행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소개팅남이 말이 많아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건 바로 클래식과 악기, 새 이야기를 할 때였다.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다다다닥 말이 많아졌고, 질문하느라 지쳤던 나는 눈 앞에 있는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기 바빴다. 베토벤 이야기를 열심히 하던 그는 "제 얘기 듣고 계세요? 제가 지금 말한 베토벤 제목 기억하세요?"라는 말에 스파게티를 우겨넣던 나는 황급히 스파게티를 내려놓으면 "아.. 아니요.."라는 대답과 베토벤의 클래식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이상형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그는 사람을 그 자체로 봐야지, 이상형은 딱히 없으며 이상형 관련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뒤로는 적막하고 조용한 공기만이 흘렀고, 계속 질문을 이어가던 나도 조금은 지쳐 말이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 뒤 카페에서도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 갔는데 외모를 통해 느꼈던 사회생활 속 불편함 및 페이스북에 나와있는 새 사진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예능 진행자이자, 상담자가 되었다. 마치 회사에서 대상자 분을 상담하는 기분이랄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는 "앞으로 만나면 회 먹을까요? 회 좋아하세요?" 등 만나는 것에 대한 미래지향적 이야기를 꽤 했고, 한사코 괜찮다는 내 말에도 지하철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기절했고, "오늘 재밌었어요^^"라는 소개팅남의 톡은 그 뒤로는 아침이면 "좋은 아침입니다"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점심이면 "식사는 잘 하셨나요?"가 알람처럼 왔다. 알람처럼 오는 질문에 단답식으로 대답하는 나는 이 대화가 빨리 마무리가 되길 바랐다.


"뭐야뭐야 둘이 잘 되가나보네!"라고 보낸 주선자에게 어느정도 솔직한 내 심정을 이야기하자 그 뒤 소개팅남의 톡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 내 소개팅은 망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나의 소개팅 결과를 모르는 지인들은 설레어하며 결과에 대해 물어보았고, 대답은 늘 "망했어!"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소개팅을 한 후 일주일 정도 나는 한동안 몸이 안 좋았다. 아무래도 소개팅 당시 기가 많이 빨린듯했다. 집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혼자 넷플릭스를 보는데 얼마나 행복한지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친동생부터 주변 친한 친구들까지 이제는 다들 커플이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나 혼자만 솔로인 게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커플 지옥, 솔로 천국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혼자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해주었다.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종종 대리 설렘을 느끼며 언젠가 나도 저런 로맨스를 경험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여기는 드라마가 아니고 현실이었다. 망한 소개팅을 뒤로 한 채 화장을 안하고 편한 옷차림 채로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을 시켜먹는 나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다리를 긁적이며, 혼자서 넷플릭스를 보며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여유롭게 보내는 혼자의 삶이 퍽 외롭지 않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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