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돼지가 되겠습니다

돼지인 것을 인정하기까지

by 검정

"너 남자친구 생겼어!!?"

얼마전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친구가 물었다. 친구 왈, 모태솔로인 내가 드디어 연애하나 싶었다고 했다.


자꾸 생각난다. 가슴이 자꾸 두근거린다. 이런 게 사랑일까


충분히 헷갈릴 수 있는 문장이다. 친구가 헷갈리지 않게 아주 친절하게 사랑에 빠진 존재를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친구는 허탈한 듯한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내 가슴을 떨리게도 혹은 설레게도 만든 그 존재는 바로 삼겹살이다.


나는 삼겹살을 참 좋아한다. 일주일에 최소 3일 정도 먹을 정도로 많이 먹고, 삼겹살 팟 모임을 만들 정도로 진심인 편이다. 진하고 영롱한 선분홍색의 삼겹살, 빨간 김치, 하얀 버섯과 양파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맛있게 익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짙은 갈색이 될 무렵 청록색 상추 안에 김치, 콩나물, 삼겹살, 버섯, 양파들을 얹어 입 안에 넣으면 힘들었던 일상이 사르르 녹는다.

삼겹살 2.jpg 내 사진첩을 보면 내 사진들보다 삼겹살 사진들이 더 많다. 다클써클 내려온 셀카사진보다 얼마나 영롱한가..!

하지만 슬프게도 삼겹살을 좋아해서 자주 먹게 되면 살이 찌기 시작한다.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살을 눈치채지 못하기도 했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어우, 살 많이 쪘다. 아가씨가 돼서 그렇게 살 찌면 좋아하는 사람 없어. 다이어트 약도 먹고서라도 살을 빼야지." 라는 아빠 친구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부끄럽고, 숨고 싶기도 했다. 외적인 내 모습을 신경쓰지 못했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들어도 무례한 말을 드라마처럼 멋있게 받아치는 모습을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당시에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외적인 내 모습을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 후 힘들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도 살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회식 때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살을 빼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삼겹살과 멀어져야 한다고 무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삼겹살을 좋아해서 많이 먹게 되면 계속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되구나 생각을 했고, 내 모습이 부끄러워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좌절감과 스트레스의 감정이 반복되자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나서 삼겹살과 매순간 함께였던 삼겹살 팟 친구들과 애써 멀어졌다. 회사 끝나면 샐러드나 단백질 쉐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닭가슴살을 헛구역질해가면서 먹기도 했다. 회사가 끝나면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떨면서 먹기보다는 혼자 한강을 걷거나 바로 집에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멍 때리기도 했다. 신기하게 체중계의 숫자는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눈에 띄게 웃음기가 없어졌고, 살 빠졌다 소리와 함께 얼굴이 우울해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다.


살면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는 애가 갑자기 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물어보았다. "난 사람들한테 사랑 받고 싶거든. 근데 살찌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 같더라고." 내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 했다.

"그런가..? 나는 너 평소에 살 쪘다는 생각 해본 적이 없거든. 근데 사람들 기준에 맞추다보면 기준이 끝도 없더라고. 살을 10kg 빼도 더 빼야 된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지금이 딱 좋다는 사람이 있고, 살 빼기 전이 더 낫다는 사람도 있고 일일이 사람들 기준에 맞추다보면 아예 내가 사라지더라고. 그냥 너답게 살아."


회사 내에서는 막상 살을 빼니 다른 고쳐야 될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너무 자주 끄덕거려서 사람을 부담스럽게 한다고 하기도 하고, 너무 적극적인 스타일이라서 나대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스타일이라도 했다. 좋아하는 삼겹살과 멀어져 살을 빼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으 듣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계속 고칠 점들을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시작한 다이어트가 나에게 있어 의미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되었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다이어트를 유지하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나는 슬프게도 다이어트는 포기했다. 돼지팟 친구 생일을 축하해줘야 한다는 핑계로 애써 멀어졌던 삼겹살과 오랜만에 재회를 했다. 상추 안에 김치, 콩나물, 양파, 삼겹살을 넣어 한 입에 먹었고, 입 안에서 음식들이 어우러졌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났다.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던 친구들은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본다고 "역시 우리는 돼지로 살아야 돼! 대신 건강한 돼지로 살면 되지."라고 껄껄 웃었다. 그 뒤 다이어트는 깔끔하게 실패하였다.


전 회사 사람은 너무 감정적인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 거 같다고 자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사람을 상담하는 일을 하는 나한테 공감하는 능력은 매우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이다. 감정적으로 공감을 해주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어 공감을 잘해주는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과거 제주도 한달 살기를 했떤 경험을 돌아보자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았다. 나대는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 있었는데 분위기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느낀 것은 다른 사람들 일에 오지랖 부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그게 좋은 이야기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나는 그냥 나인데 누구는 싫어하기도, 누구는 좋아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좋아할 예정이다.

남들이 줄여서 먹으라고 했던 삼겹살도, 자꾸 먹게 되니까 조금만 만나라고 했던 돼지팟 친구들도, 내 나대는 성격도, 너무 공감형인 성격도, 그냥 좋아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참 행복해보인다, 좋아보인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거 같다. 물론 아직도 내 주변에는 너 성격, 외모 고치는 거 어때?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웃으며 "감사하지만 생각만 해볼게요. 안 고쳐질 확률이 더 커요."라고 말한다. 웃으면서 다른 사람 말 안 듣기! 실천중이다.


혹시나 예전처럼 누군가 나에게 살을 안 뺄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웃으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예정이다.


네! 저는 건강한 돼지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