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오늘을 탐색하며..
“선생님, 저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을 겁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나는 중독자들을 상담하고 중독에 대해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담하다 보면 술에 의존한 것을 넘어 죽고자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죽겠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긴장되고, 불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불안함을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 들키는 순간 그 사람은 정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불안함을 최대한 숨긴다. “선생님, 지금 죽고자 하는 마음이 1~10으로 표현하면 몇 정도일까요? 주변에 죽고자 하는 도구들이 있을까요?”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 경찰과 생명팀과 함께 출동을 한다. 중독 뿐만 아니라 생명들을 살리고자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중독에 대해 상담을 받고자 연락이 온다. 술, 도박, 마약 등 중독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느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인생이 이미 포기되었다고 하고, 가치가 없다고 하기도 한다. 딱 봐도 어려보이는 외모를 보고 중독에 대해 경험해본 적도 없을 거 같은 사람이 자신을 공감해줄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지만 나도 한 때는 술에 의존했고,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나는 첫 회사를 6개월 만에 퇴사했다. 첫 회사에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결재받으러 온 나를 보고 얼굴만 봐도 싫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고쳐야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향적이고 밝다고 들었던 나는 눈에 띄게 어두워져갔다. 당시에는 보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물어봤다. 힘들어보이고, 어두워보인다는 말을 참 많이 듣기도 했다. 최소한 1년은 버티자, 1년만 버티고 다른 회사로 들어가면 큰 자산이 될 거라는 엄마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잘 죽을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진짜 죽을 거 같아서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에 대해 회사에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나가라고 했고, 한 순간 백수가 됐다.
백수가 됐을 때 매일 회사를 출근하고 퇴근했던 집도 싫어지고, 무기력해졌다. 스스로를 싫어할만큼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싫어하고 싶지 않았고, 죽고 싶지 않았고, 잘 살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나를 아끼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살고 싶어서, 스스로를 좋아하고 싶어서 똑같은 일상과 장소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마침 제주도 한 달 살기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봤고, 바로 다음 날 제주도 티켓을 끊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상의를 하며 결정을 했지만 이 때는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통보했다. “내일 제주도로 떠날거야.” 평소와 달랐던 나의 모습에 다들 당황했지만 힘들었던 모습을 같이 봐왔기 때문에 그냥 응원해주었다.
제주도를 가서 무엇을 했냐고 다들 물어볼 것이다. 제주도로 도착한 순간 술만 먹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무엇을 해야될지 몰라 헤맸고, 술을 먹으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잠시라도 잊혀지는 듯했다. 기분 좋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 같았다. 모르는 곳에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술에 의지를 했다. 제주도의 높은 도수의 소주,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매일 먹었다. 술을 먹다가 기억을 잃어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적도 있고, 토를 하기도 했다. 다음 날 숙취는 기본 옵션이었다.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다리를 절뚝절뚝거리면서 아무도 걱정해주는 사람 없는 이 곳에서 바다를 보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술로 인해 느끼는 기쁜 감정은 진짜 감정이 아니었다. 나를 속이는 가짜 감정이었다. 정말 기쁘지 않았다. 술을 먹고 생긴 것은 부상과 나빠지는 건강 뿐이었다.
나에게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애써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힘든 순간들을 유머스럽게 이야기하거나 울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제주도에서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작은 마을에 와서 큰 캐리어를 끌고 낑낑거리며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고 있었다. 마침 주륵주륵 비가 내렸고, 바람을 세차게 불었다. 12월 바다로 둘러싸여져 있던 곳은 꽤 추웠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캐리어는 잘 끌리지 않았다. 캐리어가 끌리지 않아서인지, 날씨가 추워서인지 모르겠지만 왈칵 눈물이 났고, 화가 났다.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소리를 지르고 펑펑 울었다. 서울에서 소리 지르고 울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거나 미친 사람이구나하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뱅뱅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곳은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오롯이 나만 있었고, 내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다. 몇 분동안 펑펑 울었더니 술을 먹으며 기쁜 척했던 것보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나를 들여다보는 순간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힘들었다. 울고 싶었다.
술을 먹지 않는 게스트하우스를 갔다. 그 때는 주말이고, 조금은 번화가에 있던 곳에 위치를 옮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는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이미 펑펑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문을 열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또 눈물이 나왔다.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조절이 안 되는 거 같기도 했다. 4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둘러싸고 앉았고, 힘든 상황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토닥토닥해주며, 위로해 주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요.”,“저라도 많이 힘들었을거에요.” 그 순간이 지금 생각하면 추운 겨울 밖에 있다가 후다닥 들어와서 따뜻한 솜이불을 덮었을 때처럼 너무나도 따뜻했다. 전화번호나 SNS 계정을 받지 않아 얼굴이 가물가물해졌고, 잘 지내는지도 알 수 없지만 따뜻하고 고마운 기억은 선물처럼 남아있다.
그 뒤 술을 먹지 않았다.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울고 싶을 때 울고, 지치면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먹기도 했다. 마음이 울적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순간들이 좋았고,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 정도 이 생활을 반복하다가 문득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가 가장 잘 알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중독에 대해 배우는 중독재활복지학과라는 특이한 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 중독자들을 만나기도 했고, 대학병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중독이나 정신질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직업을 삼았을 때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고, 회피성으로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독의 문제랑 우울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가지고 있던 통장잔고가 0이 되갈 무렵 집으로 가서 중독과 관련된 기관을 지원했고,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하면서 느낀 점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참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따라서 내가 상담하는 사람들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술에 의존을 하고, 자신을 망가뜨리려고 한다. 과거의 나처럼 술을 먹으면 잠시라도 힘든 일이 잊혀지고, 기쁘기도 하기 때문에 술은 끊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쁨에 대한 정보 제공을 한다. 우리의 뇌는 보상회로라는 곳에서 도파민이 분비가 되어 기쁨을 느끼는데 술이나 마약을 하게 되면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가 된다. 과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의 기쁨을 잊지 못해 술과 마약을 계속하게 되고, 더는 일상생활 속 기쁨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인위적인 기쁨이라고도 하는데 결국은 술과 마약으로부터 중독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뇌의 중요한 부분인 전두엽까지 망가지게 된다. 전두엽이 망가지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10층에서 슈퍼맨이라고 생각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등의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중독의 결말은 교도소, 정신병원, 죽음 뿐이다. 중독의 개념에 대해 확실히 알려주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고, 술에 본인을 의존하지 않도록 돕고 있다.
중독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죽겠다라는 말이 정말 살고 싶다라는 신호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이 죽음으로 인생의 결말을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현재의 깊은 우울함 때문에 중독으로부터 멀어지다가 깊은 동굴로 들어가 버리는 대상자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동굴 밖에서 언제든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는 제주도에서 길을 헤매며 울던 나의 모습도, 전 회사에서 상처를 받고 죽고자 했던 나의 모습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대신 조금은 밝아진 나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로 조금씩 인생을 채워나간다. 인생이 너무 춥다고 생각할 무렵 따뜻한 이불이 되어주고, 조금씩 용기내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었던 기억 속 사람들처럼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따뜻한 이불이자, 빛을 함께 찾아나가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빛을 칠해주고자, 마음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행복을 찾아주고자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