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앨범을 정리하다보니 신기한 사진이 많이 나온다. 분명 어린 나는 이 장소에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나는 기억에 없는 것이 많다.
놀이공원이나 박물관, 기념관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정작 나는 내가 여길 가봤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냥 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두루뭉실한 기억..마치 미디어 속 누군가가 갔다온 것을 봐서 나도 갔다온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런데 부모님과 함께한 여행의 시간, 그 기억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여행사진에서는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밀려들어온다. 설령 사진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다 기억할 순 없겠지만, 그 장소에서 누린 시간의 감정은 내 마음 속 추억저장소에 아직도 생생히 자리잡고 있다.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한 공간에 같이 있어도 각자의 일과 생각으로 분주하다. 정돈과 여유라는 단어조차 현대 사회에서는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쉬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끊이지 않으니 결국 조금이라도 쉬었다가 다시 또 해야 하는 고통의 일상이다.
가족여행은 온 가족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다니면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도록 만들어준다. 짐을 싸고 준비하는 시간,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 시간, 도착해서 보고 먹고 다니고 자는 시간,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잠시 '현대 사회 속에서의 나'를 내려놓고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함이다.
그래서 가장 행복하다. 나 혼자 즐기고 끝나는 쾌락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시간이다.
주말에 오히려 더 바쁜 나의 직업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남들처럼 주말에 놀러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딸아이의 학교를 빼주고 여행을 다녀온다. 교과과정을 성실히 이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기에.
물론 어린 우리딸도 모든 여행지와 모든 곳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때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즐거워하며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그 시간의 기억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때는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주부'는 잠시 휴업이다. '가정을 위해 힘써서 일하는 직장인'도 잠시 휴업이다. '가혹한 학습량을 견디는 학생'도 잠시 휴업이다. 물론 또 곧 영업을 재개해야겠지만, 지금은 다 휴업이다. 그리고 각자 영업하느라 한 공간에서도 못 나누었던 수많은 것들을 나눈다. 더 여유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바쁜 일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로는 여행 속에서도 계속 침범해오면서 얼른 다시 하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시간만큼은 우리는 모두 휴업이니까. 그리고 돌아가서 다시 영업에 집중하면서도 다음 휴업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같이 행복을 누리는 가족이 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