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 가족에게는 작은 설레임을 안겨주는 단어, 바로 외식. 식재료를 사 와서 여러 조리기구를 이용해 다듬고 볶고 찌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요리로 만들고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치우는 이 과정을 식사 외에 전부 생략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식물가가 폭등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마트 물가도 올랐다. 안타깝지만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기에 거기서 거기다. 한 끼를 잘 해결하고 남는 시간, 방학 때 남아도는 시간과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딸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여유를 누리기엔 참 좋은 곳이다. 삶의 질을 높여줄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있다. 산책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도 될 거리에 수많은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고, 메뉴 또한 다양하며 고맙게도 동네장사의 특성상 가격 또한 그리 많이 올리지 않았다. 약간의 사치를 부리고 싶다면 조금만 차를 몰고 나가면 수많은 백화점과 외식타운 등, 식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충분하다.
단,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먹을 곳이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먹고 싶은 곳이 없다는 것.
외식 가격은 해마다 계속해서 올랐다. 가격이 오른 것은 봤어도 가격이 떨어진 것은 못 보는 것은 외식도 마찬가지다. 이제 세종대왕이 새겨진 녹색 지폐는 한 끼를 책임지는 것에 있어서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시대다.
원망하진 않는다. 사회 모든 분야의 가격이 오르는데 외식업자들만 희생을 감내할 이유는 없다. 내가 같은 입장이라도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가격이 올랐다고 맛은 더 좋아졌을 꺼라는 부질없는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냥 더 오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꺼라 생각했다.
문제는 ‘당연한 기대’ 또한 사치라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행위라고는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미각(味覺), 즉 맛이다. 바로 그 맛이 없다. 가격은 올랐는데 맛은 반비례하여 오히려 점점 더 떨어진다. 새로운 식당과 메뉴를 시도해도 번번히 내 맛이 아니다. 초심을 잃은 것이 내 혀일까, 아니면 음식을 만든 이들의 손에 담긴 마음일까.
힘든 상황에 불평, 다른 이들의 허물을 지나치게 비판하다가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못한 게 아닐까. 비싼 물가로 인해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며 주머니를 졸라매는 손님을 원망하다 문제가 본질을 놓치고 있는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두 자릿수는 족히 넘게 다녔던 단골 레스토랑이 나날이 맛이 떨어져서 점점 안 가게 되고 어느날 그 거리를 지나보니 망하고 없어진 걸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나는 어떠한가? 돌아보니 근 몇년 동안 불평불만이 참 많았다.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이 없고, 자신의 삶에 자존심을 쉽게 굽히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났다. 겉과 속이 다르고 쉽게 신념을 길거리 호떡보다 더 쉽게 뒤집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판함으로 나의 삶과 행위를 정당화시켰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잊어버리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