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읽고 방학 기간 6시에 일어나 24시까지 공부할 계획만 야심 차게 세웠다.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꼭두새벽부터 늦은 밤이 될 때까지 공부만 한다고 생각하니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져 며칠 만에 그만두었다. 끈기는 없는 사람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날은 오전 내내 졸다가, 오후 4-5시쯤 되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오전 내내 졸았던 탓에 밤이 되면 불면증처럼 잠은 안 오고 그다음 날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만 가득했다. 그때도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고, 매번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결심은 실패했다.
아침형 인간이 꼭 답은 아니라고 위로하며 저녁형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아침잠이 많던 젊은 시절에는 아침형 인간은 불가능했다.
다시 미라클 모닝이 유행했다. 하루 중에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침이라고 했다.
아침 시간에 운동을 하면 건강한 사람이 되고, 독서를 하면 다독가, 외국어 공부를 하면 외국어 잘하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고, 늙을수록 아침잠이 줄어든다고 하니 미라클 모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귀한 아침잠 반납 때문인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스크롤 내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고 더 생산적이 되긴 했다.
다섯을 세고 아무 생각 없이 벌떡 일어나면 된다고 하며, 미라클 모닝을 하려면 그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면 된다고 하는데, 다가오는 내일의 시작이 싫은데 느긋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밤을 반납하고 온갖 압박이 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아침형 인간인 아이들도 따라서 더 빨리 일어난다. 하루는 새벽 5시에 일어나니 첫째가 따라 일어나, 이른 시간이니 더 자도 된다고 했다. 6시 정도에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남편도 내가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들락날락 방해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 아침 준비에 이것저것 준비해야 될 시간이 다가오고 미라클 모닝인지 뭔지 일찍 일어나 이게 뭐 하는 건가 싶다.
집에 머무르는 대신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의 관심을 피해 달리기를 하러 갈 수도 있으나, 새벽 5시 30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10시에 잠들면 요즘 최대 목표인 영어공부 할 시간이 사라진다.
어차피 아침형 인간도 아니었으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저녁형 인간으로 살자 했다. 아침은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교 준비나 열심히 하자고 마음먹었다. 자고 있으면 방해하지 않지만 일찍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아이들의 요구사항도 많아지고 신경 쓸 일도 많아졌다. 일찍 일어나서 할 일 없으면 독서를 하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고요해서 가보면 어김없이 휴대폰이나 닌텐도가 손에 들려져 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스스로 독서할 수 있도록 습관도 잡아주고 한다는데 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참 속 시끄러운 미라클 모닝이다.
그렇다고 저녁에 방해 안 받는 것도 아닌데, 아침에는 귀한 아침잠을 반납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언젠가 잠을 자러 간다는 희망과 아이들이 언제 깰지 모른다는 불안의 차이도 미라클 모닝 실패의 한 요인이라고 변명해 본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아침이 오는 게 싫다. 아침이 오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 늦게 일어났는데, 출근은 아침을 더 싫게 만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퇴근하고 싶다.
일을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더 이상 20-30대도 아니고 아무리 퇴사가 대 유행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만둘 용기도 없다. 아마도 참을만한 모양이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퇴근 후의 저녁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아침형이 되려면 그 전날 저녁 술 약속 따위는 없어야 한다지만, 저녁형 인간도 다르지 않다. 독서나 운동 외국어 공부 따위를 하려면 인간관계와 술약속은 최소한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도 미라클 모닝은 새해 결심처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 시간이 행복해지면 미라클 모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라클 모닝을 하다 보면 아침 시간이 행복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굳이 미라클 모닝을 할 필요가 뭐 있냐 싶지만, 다들 미라클 모닝으로 삶이 변했다고 하니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실천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