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언젠가는 조용한 퇴사가 아닌 정년퇴직을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날이 내일이 될지 몇십 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노후 준비는 피할 수 없다.
공무원 연금으로는 밥만 먹고사는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하겠지만, 밥만 먹고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또 한 번 연금 개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저항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윗 세대 공무원들은 퇴직 후 탄탄한 연금을 받는 사실만으로도 박봉을 견딜 수 있었겠지만, 연금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고 젊은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불평을 공무원이 아닌 지인에게 하거나 글로 쓰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다.
공감은 바라지도 않지만, 겉으로는 아니라도 속으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이나 실컷 하지 않음 다행이었다. 공무원의 인기가 식은 탓에, 예전보다는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쨌든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요즘이 낫기는 하다.
공무원은 이상한 직업이다. 막상 그만두려고 하면 부모님, 조부모님, 아니면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퇴직한 친척들까지 뜯어말린다. 그에 못지않게, 요즘 공무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며? 라며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냐며 어쩐지 고소해하는 듯한 친척도 있었다.
정년이 보장되니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퇴직 후에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일 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도 다니고, 휴일에는 쉴 수 있으며, 6시 정시 퇴근의 삶, 정년이 보장되니 더 이상의 골치 아픈 자기 계발은 평생 안 해도 되는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 생활이 쉬울 리 없으며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은 허황된 꿈으로 판명 났다.
골치 아픈 자기 계발은 안 하더라도 골치 아픈 업무는 쌓여만 가고, 종종 만나는 날 선 민원인들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점점 잃게 만들었고 , 정년 보장은 족쇄가 되는 삶이 지속되었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어른이 된 후 20년이 훌쩍 가버린 것처럼 이렇게 20년이 또 훌쩍 지나가 퇴직할 날이 금방 다가올 것이다.
과연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퇴직 후 점점 연금을 받는 나이가 늦어지고 있는데, 연금을 받는 시점까지 소득 없이 생활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노년이라고 해도 60대는 아직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일 텐데, 이런 경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퇴직 후 소득도 없이 독서, 운동과 모임 등으로 채우는 삶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년이 늘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런 답답한 생활은 60세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시설직렬이나 사회복지직렬 등은 퇴직 후에도 전문성을 살려 사회에 재취업의 기회가 있는 듯 하나, 행정직렬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가 없다.
물경력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문성은 없지만 익숙해진다면 누군가로 대체되어도 상관없는 그런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공무원 중에 여려 직렬이 있지만, 일반행정이라는 이 직렬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어떤 일에도 전문성은 가질 수 없고, 어떤 누군가로 대체되어 그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라도 전체적으로 조직이 잘 돌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그런 일이 바로 행정이다.
20대나 30대처럼 박차고 의원면직을 당당히 할 수도 없고, 이 나이에 이런 경력으로 더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을 리는 없고, 프리랜서는 더더욱 가능 할리 없어, 하루하루 참으며 다니고 있다. 그렇게 참고 다니니 적응이 되고 안주하게 되는 날들이 지속되다가, 또 어떤 날은 참을 수 없기도 하다.
당장 퇴직하는 것은 아니니, 잊어버리고 있다가도 어떤 날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조금씩 삶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노력이 부족한 탓에 성과는 전혀 없다.
꾸준히 하면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일터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40대가 되니 그 어느 때보다 안 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커진다. 어렸을 때는 언제든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지 않으면 끝까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해는 브런치에 한 달에 한번 글쓰기와 매일 영어공부 기록 남기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목표는 어차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