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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befree Sep 27. 2022

조용한 퇴사 Quiet quitting

조직에 대한 소심한 복수

오래된 만성피로로 아침마다 피곤하다. 큰맘 먹고 산 비싼 비타민제를 먹으려다 출근하는 데 굳이 무슨 힘을 내야 하나 싶다. 비타민제 하나도 일터를 위해 쓰는 게 아깝다.

퇴근 후 더 힘을 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때 먹기 위해 비타민을 아껴둔다. 필요한 만큼의 업무를 하겠지만, 그 선을 넘기는 싫다. 6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조금도 더 있기 싫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한다. 자아실현 따위를 꿈꾸며 공무원 시험 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고 일을 미루거나 안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만, 더 많은 것은 하기 싫고, 초과근무는 그렇다 치고 주말 전체 문자(비상근무는 해야 할 일이므로 밤낮 주말 가리지 않고 전체 문자 인정한다), 잦은 회식 등은 싫은 정도가 아닌 화가 날 지경이다. 6시까지 일하는 것도 시간이 아까운데, 모든 삶을 이곳에 쓰고 싶지 않다.

Quiet quitting이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단어를 생각해 냈지, 천재가 아닌가 했다.

수많은 세월 직장에 올인해서 남는 것은 월급 외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월급도 로그아웃 되고 없다. 직장 내 인간관계도 직장을 그만두는 동시에 유지될 수 없을 것 같고, 자아실현 따위는 바라지도 않으며, 비전이란 것은 아무리 봐도 없는 곳에 할 일만 하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고용자 입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문제인 건가?

밤낮으로 일 생각만 하며, 회식이 자리에서 상사에게 충성하고, 밥 먹듯이 야근을 해서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올려야 하는데 딱 근무시간에 할 일만 하겠다니 문제가 되는 건가?

돈을 벌기 위해서 진짜로 퇴사는 하지 않지만, 해야 할 일 외에 더 많이 일하지는 않는다는 조용한 퇴사는 새로운 단어이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조직보다 개인을 더 생각했고, 워라벨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워라벨을 추구하는 이유가 일을 덜하기 위해서일까? 취업하기 힘든 시기에 입사 초기부터 받은 만큼만 일하고 무조건 워라벨을 추구해야지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직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알 수도 있고, 불합리한 조직에 계속 다녀야 하나 할 수도 있고,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다니기는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조용한 퇴사나 워라벨 따위를 추구하는 요즘 세대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마냥 쉬고 놀려고 워라벨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계속 이렇게 불만만 가지고 살 수는 없지 않나?

긴긴 직장 생활 끝에 나를 위로해 주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6시까지도 모자라 10시 11시까지 일을 하다 보면, 나를 위한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할 일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보게 된 시험이지만 처음부터 이 직업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오만 정이 떨어져, 사람을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난 후 시켜주는 승진도 하고 싶지 않았다.

6시 이후 1분도 이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주말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야 될 때면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퇴사라는 것을 알고 나서, 10명 중 4명이 하고 있다는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모든 에너지를 일터에 쏟아붓고 집에 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조직의 성장보다 개인이 성장하려면 에너지의 분배도 중요하다. 조직은 개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너무 잘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개인이 성장하는 것이 조직에 피해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전체를 위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 개인이 조금씩 발전할 때 사회가 더 발전하는 것 아닐까? 정말로 퇴사를 할 수는 없으니, 나를 이렇게 부려먹는 조직에 복수라 생각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용한 퇴사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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