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을 좋아하던 아이, 연구자가 되기까지
초등학교 시절, 교실 한쪽에는 담임선생님이 모아오신 어린이 과학잡지가 항상 놓여 있었다. 쉬는 시간에 할 일이 없으면, 조용히 그 잡지를 읽었다. 특히 생물과 관련된 부분을 빠짐없이 읽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생물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모든 아이들이 지루해하던 생물 수업이 나에게는 즐거운 수업 시간이었다. 예고 없는 노트검사에도 떳떳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수학에 자신이 없었지만, 생물을 배우려면 이과를 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이과를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수학을 못하면 이름있는 대학 진학을 위해 문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생물학이 좋다는 이유로 이과를 갔다.
대학 입시에서도 취업률이나 학교 이름을 고려하기보다는, 마음이 향하는 대로 생물학과를 선택했다. 졸업 후 취업이 쉽지 않아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때도 막연히 ‘언젠가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로 바로 취업을 선택했다.
졸업 후 취업 준비를 3년이나 했다. 어쩌다가 계약직 연구원으로 대학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연구비를 관리하는 자리였지만, 자연스럽게 옆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1년쯤 지나니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다는 얘기가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다. 시험삼아 본 영어시험에서 커트라인을 넘기게 되었고, 같은 학교에서 좋은 교수님을 수소문해 바로 석박통합 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취업 준비를 3년이나 했고,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불안정한 미래를 지냈지만 대학원에 오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다고 대학원 생활이 마냥 열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연구자로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했다. 주어진 일만 하고, 스스로 공부를 찾아 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몇 가지가 있다.
심리적인 어려움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불안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청소년기 이후에는 우울증을 안고 살아왔다. 그것이 원래 내 성격이라고 여길 만큼 오랜 시간이었다. 불안과 우울은 생활의 기본적인 에너지를 다 빼앗아갔다. 아침에 이를 닦는 일조차 너무 큰 짐처럼 느껴졌고, 아침 식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잠들기 전에도 눈물이 흘렀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을까.
이끌어주는 선배가 없는 것도 있었다. 연구실에 선배들이 있었지만, 연구 주제가 아예 겹치지 않거나 단순히 허드렛일과 잡무를 맡기기만 했다. 나중에는 내 일 보다 선배의 일이 먼저라고 느껴졌다. 스스로를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연구자로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들로 저는 연구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과도 기대만큼 크지 않았고, 석박통합 과정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야근도 거의 하지 않았고, 여유롭게 지낸 시간이 많았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더 열중했다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돌아보니, 삶은 결국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것 같다. 어릴 적 과학 잡지를 읽으며 시작된 흥미가 대학까지 이어졌고, 돌아 돌아 대학원까지 오게 된 것도 결국 같은 흐름 위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심리적으로 많이 회복되었으니 다시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는 또 다른 길로 흘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