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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Sep 12. 2022

나의 알바일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19살 후반, 액세서리 샵에서 포장하는 일을 잠깐 했다. 편도 1시간 걸리는 명동까지 가서 했는데 지각 한번 한 적 없었다. 어딜 가면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했던 나는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다고 해봤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귀걸이나 액세서리를 분류해 빠르게 포장하는 것, 그리고 눈치껏 일하는 요즘 말로 알 잘 딱 깔 센(‘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고 센스 있다’의 줄임말)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대학 떨어지면 여기 와서 일하라고 정직원 시켜주겠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몇 년이 지나 그곳은 망했다. 전국에 가맹점이 있던 곳이라 사라진 것이 놀라웠다.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알바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사실 힘든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한테 나 알바 할까? 하면 뭐 하려 하냐 그 힘든 일을...라는 답을 매번 들어설까 알바에 대한 내 마음은 쉽게 불붙었다 꺼지고 시간과 함께 사라졌다.


 중간에 특수교육의 전공을 살려 다문화 멘토링(1:1 수업)을 하긴 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거라 체계가 허술했다. 그리고 놀랍게 아무도 나와 학생의 수업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저 방과 후에 빈 교실 하나 내주기만 했다. 한글이 서툰 다문화 학생과 공부보단 그림 그리며 노래 부르며 점토 만지며 시간을 보냈고 그게 내 대학 생활에 했던 알바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드디어 내 인생에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제일 하고 싶었던 건, 연희동 개인 카페에서 알바하기. 꼭 연희동과 개인 카페여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가 연희동에 살았기 때문이었고, 정해진 교복도 안 입던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프랜차이즈점의 정해진 유니폼은 입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자부심을 품던 나의 전공과 그 몇 번의 멘토링 경험은 아무 짝이 쓸모없었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우선 여러 카페에 지원했다. 알바 지원은 문자보단 전화가 더 빠르고 좋다. 낯선 번호에 전화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은 너무 떨린다. 하루는 내가 망설이는 동안 누군가가 채용되었고 하루는 내 정성 들여보낸 문자가 씹히기도 했다. 하루는 내가 뭔 알바냐 그냥 용돈으로 놀지 싶다가도 조급한 마음에 알바 구인 사이트를 들어갔다.


 그 결과 아무 경력이 없는데, 운이 좋게 면접을 두 군데나 보게 되었다. 수요일, 긴장 가득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경력을 주로 보는 연희동은 포기하게 되었고 홍대와 신촌에 있는 카페로 가는 길에 또 다른 하나의 공고를 보았다. 우리 집에서부터 교통이 필요 없는 연남동이었다. 바로 연락드렸고 저녁에 면접 보러 가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할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긴장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홍대와 신촌에서 면접을 봤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왔더니, 이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사장님들은 자신의 가게에, 삶에 최선을 다해 책임감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냉정했다. 난 이제껏 내 삶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며 마지막 면접인 연남동으로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장님께서 바로 같이 일하자고 하셨다. 주변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기뻐 정말이냐고만 5번 넘게 말했고 그렇게 책임감 가득 안은 첫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아기자기한 쿠키와 주문 제작 케이크를 주력으로 파는 곳이라 포장 손님은 있어도 커피 마시러 오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하루에 풀타임 8시간 일하는데 5팀 오시면 많이 오는 편이었다. 하루 매출이 10만 원도 안 나왔다. 난 이 카페에 더더욱 도움이 되고 싶었고 일 잘하는 알바생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시키지 않은 일을 찾아서 하다가 컵을 깨고 병을 깨곤 했다. 사장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지 잠들기 전까지 속상해하곤 했다.


 일한 지 4개월이 될 때쯤, 친오빠가 그랬다. 가서 제발 나대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하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니가 내 맘을 뭘 알아 했지만 시간 지나고 보니 그건 책임감을 잠깐 내려놔도 된다는 말이었다. 항상 손님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내가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거 같았다. 주변에는 이미 임용고시에 합격해 자신의 반 학생들을 가진 동기들이 있었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장인 친구들도 있었다. 일이 바쁘면 몰라도 카페가 한가하다 보니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일한 지 6개월이 될 때쯤, 사장님께 그만둔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금 더 바쁜 개인 카페로 옮기게 되었다. 카페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임감을 더 느끼고 싶어서일까. 아니다. 나도 모르게 드는 책임감을 내려두기 위해서다. 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개인 과제보다 팀 과제에 더더욱 열을 들였고, 내 마음보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신경을 써왔던 난 태생 기질이 정 많고 책임감이 많던 사람이었다. 뭐든 건 다 때가 있다. 세상이 그렇지 않더라도 난 지금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물넷, 이 시간은 책임감 또한 잠시 내려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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