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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Sep 12. 2022

01. 환경이 주는 힘

 서대문구와 양천구, 나의 10대의 시간을 쥐어줬던 곳. 그곳에 살게 된 이유는 단순한 부모님의 선택이지만 두 환경은 서로 대비되었고, 나에게 큰 깨달음과 아픔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초등학교 2학년, 나는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 갔다. 친화력이 좋아 전학 가서도 친구들과 잘 지냈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면 같이 놀 친구들은 없었다. 모두가 하교 후 학원을 갔기 때문이다. 영어 학원, 수학 학원, 영재과학 학원, 글쓰기 학원 등,, 학원은 학교 끝나고 가는 두 번째 학교와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무턱대고 목동에 온 나의 부모님은 주변을 보고 얻은 불안으로 인해 자녀의 교육에 열을 올렸다. 초등학교 6학년, 난 학교를 위해 학원을 다녔고 학원을 위해 과외를 했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학원에서 하는 수학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매달 월말평가를 보면 틀린 것이 많아 고치고 가느라 집에 제일 늦게 가는 학생이 되었다. 아침에 가면 저녁에 집에 돌아왔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또 어두웠다.


 중학교 1학년, 목동에서 제일 잘 나가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더했다. 공부는 물론 주변에 집에 돈이 많은 친구들밖에 없었다. 당시 스마트폰 보급이 시작되었을 때였는데 반에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없었다. 사실 그 나이에 없는 게 당연한데 우리 반은 당연함 보다 한 단계 이미 앞서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잘 보냈지만 내 속은 까맣게 타버렸다. 밑에 백화점이 있는 88층 친구네 집, 큰 러닝머신이 그저 집에 있는 작은 소품으로 느껴졌다. 친구들은 다 이뻤고, 성격도 다 좋았고, 집에 돈도 많았다. 그런 친구가 한 명이면 모른다. 네 명이 다 그랬다. 그러곤 집에 오면 우리 집은 개미집 같았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온다고, 당시 가족 간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잦았고 아빠는 오빠를 믿지 못했다. 엄마 또한 나를 믿지 못했다. 하루는 엄마와 아빠의 싸움이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이 되었고, 오빠는 자신의 아빠를 신고했다. 그리곤 부엌의 칼을 들었다. 남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힘들었다. 우리 모두가 힘들었다. 밖에서는 잘 웃고 다녔지만 집에 오면 문을 걸어 잠갔다. 공부는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이미 어렸을 때부터 격차가 벌어져있었다. 하루는 학교 갔다 온 후에 학원을 안 가고 방에 누워있었다. 이를 알게 된 엄마는 화가 나서 가방으로 내 머리를 쳤고 난 귀에서 피가 났다. 그때는 엄마를 탓했지만 지금은 탓하지 않는다. 그저 그때 왜 나에게 가기 싫냐고 물어봐줄 수 없었을까 라는 의문만 남을 뿐이다.


 전쟁 같던 삶에 이사라는 빛이 내려왔다. 목동에서 오빠의 대학교 입시가 잘 안 되자 아빠는 원래 살던 서대문구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곳은 목동에 비해 내신 따기가 쉬우니까. 그리고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중학교 3학년을 맞이했다. 그때 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저녁 7시 옥상의 황홀한 노을을 알게 되었다. 더운 여름의 푸릇푸릇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서대문구는 양천구와 정반대였다. 동네에 학원도 한두 개 밖에 없었고, 모두가 다 그럭저럭 하게 살았다. 아니 사실 나보다 못 사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행복은 타인과 비례한다. 자신에게 찾으라 하지만 자신에게 찾는 행복 또한 결국 누군가보다 더 잘하거나 상황이 낫거나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일찍 가는 목동과는 다르게 여기서 난 반 대항전을 위한 배구 연습을 하기 위해 학교를 일찍 갔었다. 내 삶에서 나의 행복을 알게 된 시점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어른이 되고 나서 목동을 바라보았을 때는 잃은 것이 많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안 갔다면 내가 행복을 더 일찍 찾지 않았을까? 바꿔지지 않는 과거를 상상하곤 한다. 고등학교 와서 공부도 뛰어나게 잘하진 않았지만 공부의 재미도 알아가며 나름 괜찮은 대학교에 원하는 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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