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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Sep 12. 2022

02. 발행

올해 시작은 불안이었다. 철부지 같기만 하던 내 동기들은 어엿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있었고 한편 또다시 길고 긴 도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바탕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작년을 돌아보며--

인생에 아무 고비 없이 살아온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항상 긍정적이고 바쁘게 살며 알찬 하루를 보내야 직성이 풀리던 내가, 의욕도 없고 삶의 이유 또한 사라져버렸다. 왜 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제한되었을 때도 집에서 혼자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환경을 탓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울과 무기력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나 보다. 외로움과 함께. 주변에 언제나 그랬듯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돈도 부족함 없이 있었다. 근데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오늘도 끝없는 불면증에 또 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겠지 하며 해가 빨리 뜨기만을 기다렸다. 잠을 못 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처음 알았다. 결국 버티다 수면제를 먹고 무거운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어김없이 해야 할 일을 했어야 했고, 그래도 중간중간에 울창한 나무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멍을 많이 때렸다. 어쩌면 그 시간도 없었다면 내가 더 많이 곪아버렸을 수도 


매주 화요일, 심리 상담을 받았다. 센터를 갈 용기조차 나지 않아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였다.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고 있지 못하다가 선생님께 사실대로, 그리고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말하다 보니 조금씩 괜찮아지긴 했다. 나를 다시 보고 또다시 보며 관찰이라는 것을 했다. 그렇게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갔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올해를 돌아보며--

올해 시작은 불안이었다. 철부지 같기만 하던 내 동기들은 어엿한 사회 초년생이 되어있었고 한편 또다시 길고 긴 도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바탕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나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힘들었던 작년의 나를 원래의 나로 다시 되돌려놓으라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것부터 하라고. 설령 되돌리지 못하더라도 시도라도 해보라는 뜻이었을까 인생 처음으로 쉼을 가졌다. 


대학교 시절, 힘들다고 휴학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갔다. 대학생 방학이 2개월이나 되는데 그동안 쉬면 되지 얼마나 더 쉬려고 그러지?라는 마음이 있었다. 근데 막상 쉬어보니 쉰다는 건 2개월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막상 쉬려고 하니까 너무 불안했다. 내가 쉬어도 되는 걸까? 일이든 공부든 뭐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어떤 것을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잔잔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항상 전공 관련된 것들만 생각했는데 전공 관련된 거 빼고 뭐든 생각해 보자 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나왔다. 그냥 흘러갔던 말로 했던 것들을 보면 되는 거였다. 독서 모임, 카페 알바, 신발 커스 둠, 보드 타기, 글쓰기, 책 내기 등등 찾아보니 많았다. 불안에서 나오기 위해 쉰다는 사람 치고 하고 싶은 것을 정말 열심히 찾아했다. 나는 일이나 공부를 하지 않지만 그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어라는 대변을 하듯 


그렇게 바쁘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니, 이 시간들이 아까워졌다. 내가 나에게 쉼을 줄 수 있는 시간은 올해뿐이라 더 알차게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것들을 좀 한 이 시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이 시간을 들 채워나가야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이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두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 옆집에는 정신병이 있는 분이 살았는데 집주인인 우리 엄마가 그분에게 항상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생활하라고 하셨다. 이거와 같은 맥락이었을까 


그래서 요즘은 잠이 올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다음날 뭐하고 뭐하고 뭐 해야지 하며 자는 것이 아닌 일어나서 오늘은 어딜 가고 싶네 이거 만들어 먹어볼까? 하며 정해진 것을 하는 것이 아닌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자칫 미래가 걱정되거나 조금의 우울과 화남이 오려고 하면 집에서 나가 자전거를 타고 노을을 본다던가 당장 내일의 나의 기분도 모르는데 앞으로를 걱정해서 뭐 하겠어 생각한다. 그러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내가 보이고 룰루랄라하고 있다. 나는 참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사람이다. 


올해의 9월의 시간을 보면 나는 작년과 다르게 많이 극복하고 더 나아가 나를 많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월요일에는 국가 지원 관련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어쩌다 내 작년과 올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선생님께서 인생에 그런 일은 누구나 갑자기 올 수 있고 비교적 금방 잘 이겨낸 거 같아 보인다며 앞으로 그런 일이 와도 또 지혜롭게 이겨낼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속으로 정말 내가 올해 잘 보내왔던 거구나 또다시 나를 인정하고 힘을 얻은 거 같다. 



시간이 지나도 이 세세한 감정과 과정을 잊고 싶지 않아 적어두는 내 스물셋과 스물넷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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