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eght Foundation
프랑스 남부, 최고의 아름다운 마을로 꼽히는 Saint-Paul-de-Vence (생폴드방스)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마을 중 하나입니다. 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The Maeght Foundation (마그 재단)은 1964년에 Maeght(마그) 부부에 의해 설립되었어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듯 한 예쁜 마을 생폴드방스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마그 미술관이 주는 기쁨으로 이곳에 대한 감동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곳은 Maeght (마그) 부부의 뜻으로 개관한 미술관이지만,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값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하고 미술품을 기증했으니, 컬렉션 또한 최상급이지요.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 정원에서 조각품과 파란 하늘을 보며 마셨던 커피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석판화가 겸 조각가로 활동하며 인쇄기술을 배우던 Aimé Maeght (아이메 마그, 1906-1981)는 1928년에 Marguerite (마르그리트, 1909-1977)와 결혼하고, 남부의 칸(Cannes)에 인쇄소를 차렸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메는 출판작업뿐만 아니라 인근 예술가들의 석판화를 도와주게 됩니다. 특히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는 아이메에게 판화 채색 작업을 맡겼고, 그들은 나이차이를 뛰어넘어 절친한 친구가 됩니다. 아이메의 인쇄소는 작업실로도 사용되다가 마침내 ARTE 갤러리로 개관하고, 남부지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돼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마그부부는 안전을 위하여 아이들과 더 깊은 시골마을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와 이웃이 되었어요. 마그부부의 어린 아들은 마티스 할아버지에게 우유를 갖다 드렸고, 마티스는 답례로 아이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주며 가깝게 지냈지요. 또한 마르그리트는 마티스의 모델이 되어주어 마티스의 그림에 20여 번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프랑스 남부 지역은 북부의 점령 지역에서 탈출한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피난처가 되었고,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지냈어요. 이때 피카소와도 인연이 되었지요.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부부는 파리로 이주하여 Gallery Maeght (갤러리 마그)를 오픈합니다. 남부에서 인연을 맺은 예술가들 Pierre Bonnard, Henri Matisse, Georges Braque (1882-1963) 뿐만 아니라, Fernand Léger (1881-1955), Joan Miró (1893-1983), Marc Chagall (1887-1985), Alexander Calder (1898-1976), Raoul Ubac (1910-1985), Alberto Giacometti (1901-1966), Wassily Kandinsky (1866-1944)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교류하며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그러던 1950년 8살밖에 안된 둘째 아들 Bernard가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부는 바로 갤러리를 접고 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공기가 좋은 남부 생폴드방스로 내려가서 투병생활에 올인합니다. 그러나 3년 후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부부는 깊은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예술가 친구들의 위로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조르주 브라크는 슬픔에 잠긴 부부를 찾아와 이곳 저택에서 뭔가를 시작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평소 마그부부가 원하던 대로 예술 작품을 위한 최상의 전시 공간을 이곳에서 만들어보라고, 자신이 돕겠다며,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희망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페르낭 레제 역시 자기도 작품은 물론이고 바위에 그림을 그려서라도 돕겠다고 하지요. 그렇게 마그부부는 자신들의 저택에 새로운 예술 공간을 구상하며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마그재단 (Maeght Foundation)은 마그부부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세상을 다 잃은 듯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빠져있을 때에 그들을 위로하는 예술가 친구들의 진심 어린 도움으로 탄생하게 된 미술관입니다.
스페인 카탈로니아 출신의 화가 호안 미로는 1947년 파리 Gallery Maeght에서 초현실주의 전시회로 마그부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호안 미로는 매년 마그 가족의 집에서 몇 달씩 머무르며 작업을 했어요. 또한 에이메와 협업으로 1500여 점의 인쇄를 하고 서적을 내기도 했지요. 마침, 호안 미로가 1953년 마요르카섬 (Mallorca)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건축하였는데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에이메도 미로의 스튜디오를 높이 평가하며 건축가 호셉 루이스 세르트 (Josep Lluís Sert, 1902-1983)를 소개받아 미술관 건축을 맡기게 됩니다.
에이메는 미술관 정원을 미로에게 맡기고 조각품으로 꾸며달라고 부탁하였고, 미로도 흔쾌히 현장작업을 시작합니다. 파티오 벽에는 도자기로 도마뱀을 만들어 달고, 도자기 타일로 한쪽벽 전체를 장식하고, 대리석으로 새 형상을 조각하는 등 대형 작업뿐만 아니라 작고 귀여운 조각들로 미술관 곳곳을 채워갔습니다. 그리고 미로는 자신의 작품 수백여 점도 선물합니다. 이곳을 사랑하는 미로의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들이라 그런지 자연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조르주 브라크가 디자인 한 작은 수영장과 그 뒤에 서있는 호안 미로의 작품도 잘 어울립니다. 파리의 Galerie Maeght는 1950년부터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파리 독점 딜러가 되었습니다. 1969년에는 이곳 Fondation Maeght에서 칼더의 회고전이 있었지요. 칼더는 1962년부터 프랑스 Tours에서 작업했는데, 이곳에서 그의 조각과 모빌 형태의 유쾌한 작품 여러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들로 꽉 차 있어서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소홀하게 볼 수가 없어요.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컬렉션은 안뜰에 있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트 자코메티의 작품들입니다. 파리의 Galerie Maeght는 1950년에 자코메티 첫 전시회를 개최하였어요. 자코메티는 마르그리트의 초상화를 그릴정도로 부부와 각별한 사이가 됩니다. 1959년, 자코메티는 뉴욕시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위해 <키 큰 여성, Grande Femme Debout II, 1960> <Grande Tête, 1960> < 걷는 사람, L'Homme qui marche I, 1960>등을 제작했는데 뉴욕에서의 설치가 취소되었어요. 이에 아이메는 즉시 자신이 짓고 있는 미술관에 그 작품들을 가져오자고 제안합니다. 이 시기는 자코메티 예술 인생의 절정이었고, 사이즈도 가장 큰 작품으로 자코메티와 마그의 깊은 신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내부 첫 번째 홀에도 자코메티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크 샤갈과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 정말 황홀한 홀이에요. 같은 마을에 거주하던 샤갈 또한 정성이 가득한 회화와 모자이크를 선물했지요. 근방에 거주하던 페르낭 레제의 작품에서도 진심 어린 성의가 느껴집니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동생 디에고 (Diego Giacometti, 1902-1985)가 디자인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서 레스토랑 이름이 <카페 디에고>에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칼더의 모빌과 샤갈의 벽화를 보며, 멀리 소나무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미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호강을 했습니다. 뮤지엄숍에서도 지난 전시의 포스터와 현대 작가들의 책을 보면서도 헤어 나올 수가 없었어요.
훌륭한 컬렉션 없이는 훌륭한 미술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 남부와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술품 딜러로서 완벽한 수집가였던 마그 부부는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가장 뛰어나고 상징적인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 감각만으로는 친분을 쌓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겠지요. 부부는 사업을 뛰어넘는 사명감과 예술에 대한 진심으로 소통했을 거예요. 이미 부부가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만으로도 완벽했을 미술관에, 사랑과 우정이 더해져서 감동으로 채워지고 흘려보내며 세상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감수성을 자극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요.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 벅찬 미술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