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부엉이
Pablo Picasso (1881-1973)
혹시 전 세계에 피카소 이름을 가지고 있는 미술관이 몇 개인 줄 아시나요. 피카소 미술관을 만날 때마다 참 많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알고 있는 곳보다 훨씬 거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곳들은 거의 다 피카소가 잠시라도 와서 살았거나, 방문해서 머물렀던 곳들이에요.
어렸을 때 일본 하코네에서 피카소 컬렉션을 접하면서 피카소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 후 여러 미술관에서 피카소 작품을 보며 그는 참 부인과 애인이 많았구나, 그리고 그녀들의 초상화를 볼 때에 시대를 구분해서 보게 되었지요.
스페인 말라가 (Málaga) 피카소 생가에서는 “화가가 어렸을 때는 평범하게 그렸구나, 피카소도 보통의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참 잘 그리긴 했네”라고 생각했어요.
바르셀로나에도 피카소 미술관이 있었고요. 마드리드의 Thyssen-Bornemisza National Museum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는 그 유명한 Guernica (게르니카) 작품을 볼 수 있었고, 이 작품은 앞으로도 해외로 반출될 일이 절대 없다고 하니 직접 와서 보기를 잘했구나, 그림 한 장으로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에 힘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은 기대 이상의 품격과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어요. 피카소 사후 그의 작품을 프랑스에 기증하며 상속세를 대신하여 세워진 곳이거든요.
지난봄에는 런던의 옥션하우스 크리스티스(Christie's)에서 피카소 도자기를 주제로 경매가 있었습니다. 딸이 이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컬렉션을 보러 가게 되었어요. 비록 주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작품들이었지만, 한자리에 모아두니 피카소의 도자기 또한 멋있었습니다. 1948년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의 발로리스(Vallauris)에 작업실을 두고 1955년까지 도예 작업에 몰두하였고, 이 지역은 도자기로 유명해집니다.
니스 주변에 국립 미술관이 세 곳 있는데 Marc Chagall National Museum, Fernand Léger National Museum, 그리고 National Picasso Museum입니다. 피카소는 발로리스 마을의 예배당에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벽화를 설치했는데, 이곳이 피카소 국립 미술관으로 지정되었어요. 그리고 발로리스의 지척 앙티브(Antibes)에 Musée Picasso가 한 곳 더 있습니다. 9km 거리에 피카소 미술관이 두 곳이라니! 볼 만큼 본 거 같은데 두 곳을 다 봐야 하나? 고민이 되었어요. 두 곳 모두 방문할 만큼 내가 피카소를 사랑하는가? 그건 아닌 거 같아서 피카소 국립 미술관을 포기하고 바닷가에 위치한 Musée Picasso를 선택했습니다.
니스에서 앙티브까지는 20km 떨어져 있어서 기차로 20분 정도 걸립니다. 기차 타고 가면서 보는 지중해 뷰는 정말 아름다워요. 신비로운 바다 색깔을 보면 저 같은 일반사람도 붓을 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앙티브에는 아기자기한 갤러리들이 많이 있고 지금까지도 도자기 예술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수요일 오전 시간에는 마을에 장이 서서 동네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갓 수확한 듯 자연스럽게 적당히 못생긴 과일과 채소, 바질과 라벤더 등 허브가 심어진 화분들, 장미꽃다발, 갓 구워 나온듯한 페이스트리등이 가득하고 활기찬 시장을 거닐었어요. 멋진 보트와 해변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워요.
14세기에 지어진 샤토 그리말디 (Château Grimaldi)가 미술관이 되었으니 장소부터 압도적입니다. 지리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바닷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도 폐가로 버려졌던 적이 없었습니다. 초기에는 모나코 왕족의 선조인 그리말디(Grimaldi) 왕족이, 17세기에는 프랑스 앙리 4세(Henry IV, 1553-1610)가 소유했을 만큼 욕심나는 뷰를 가지고 있지요.
1925년에는 앙티브시가 그리말디 성을 인수하여 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나폴레옹 시대의 유물을 전시했어요. 박물관 큐레이터인 Romuald Dor de la Souchere는 넓은 내부를 채우느라 애를 쓰다가 근방에 거주하던 피카소에게 2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겠냐고 권했습니다. 피카소는 1946년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만 작업실을 사용했어요. 워낙 다작에 능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짧은 두 달 동안 회화 23점과 드로잉 44점을 그렸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시기라 최상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피카소는 이 작품들을 영구 소장해 주는 조건으로 박물관에 기증하였고, 1948년에는 발로리스에서 제작한 도자기 78점을 포함하여 다른 작품들을 추가로 기증합니다. 그리말디 박물관은 1966년에 Musée Picasso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1991년에는 피카소의 미망인 자클린이 피카소의 회화와 도자기 등 22점의 작품을 기증함으로 컬렉션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피카소는 (1881-1973) 1904년 고향 스페인을 떠나 파리로 이주했어요. 1912년 아비뇽(Avignon)을 처음 방문했을 때에 리비에라(French Riviera: 프랑스 남부 해안지역, 니스 앞바다, 프랑스어로는 코스타 다쥐르 Còsta d'Azur)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한국인 우버 기사님을 만났을 때, 어디에 거주하시냐고 여쭤봤더니 아비뇽에 산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 피카소의 아비뇽?! 그곳인가요? 아는 척을 했더니 피카소 그림의 아비뇽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거리 이름이라 하시더라고요^^;
피카소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도 아비뇽에 자주 방문했습니다. 나치가 점령한 기간 동안에는 파리에 머물렀고요.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는 새로 사귄 애인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 1921-2023)와 함께 앙티브로 내려옵니다. 피카소의 몇 번째 애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녀도 화가였고 젊었어요. 21세의 질로는 당시 61세였던 피카소를 만났어요. 피카소는 무척 들떠있고 행복했습니다. 중년이 넘어가는 나이에 그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고,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도 낳았습니다. 그의 고향과 자연적 환경이 많이 비슷한 리비에라에서 지중해 햇살과 바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를 보며 사랑했어요.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의 독재정권과 맞서며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피카소에게 리비에라는 고향과 가까워 정신적 위로가 되었을 거예요. 그는 1973년 칸 근처의 무장(Mougins) 별장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을 아를(Arles)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칸, 발로리스, 앙티브등 남부지역에서 거주했습니다.
피카소가 이곳에 머무르며 작업한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행복과 환희에 차 있습니다. 지중해 신화, 와인, 음악과 춤, 바다, 그리고 물고기와 성게등이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지요. 이 당시에 그린 작품 중에 <율리시스와 인어 Ulysse et les sirènes septembre>는 이곳에서 그려진 마지막 작품입니다. 1947년 6월, 박물관 큐레이터는 그리말디 성 본관 벽에 걸 작품을 요청했고, 피카소는 3일 만에 작품을 완성합니다. 오랜 시간 신화에 관심을 가졌던 피카소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신화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학 오디세이아(Odyssey)에 나오는 스토리는 고대부터 예술작품에 종종 사용되어 온 소재였어요. 그러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피카소는 그만의 스타일로 그렸지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그림 속에서 찾아봐야 할 것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 율리시스와 바다의 요정 사이렌 (인어), 배, 바다, 산이예요. 저는 다 찾았습니다^^
멋진 석고상 두 점이 눈길을 끕니다. 젊은 시절에 만났던 연인 마리-테레즈 월터(Marie-Thérèse Walter, 1909-1977)에게서 영감 받아 만든 조각으로 1950년에 이곳에 설치했습니다. 피카소는 1955년에 첫 번째 법적 부인이 사망한 후 월터에게 청혼하였으나 거절당합니다. 둘 사이에는 딸 Maya가 있었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여러 여자관계를 지켜봐 왔던 월터는 피카소에게 더 이상의 신뢰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두 조각품은 1931년과 1932년에 피카소의 부아젤루 성(Château de Boisgeloup)에서 제작되었고,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의 스페인공화국 파빌리온에 게르니카와 함께 전시되었던 작품이에요. 피카소는 고전주의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사랑을 듬뿍 담아 월터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의 끝은 아름답지 않았고, 그녀는 끝내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그의 연인들의 이야기는 건너뛰고 싶었지만, 작품을 보려면 그녀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미술관 내부는 중세 성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낮은 천장과 곡선이 많은 문틀, 굴곡진 벽으로 재미있는 구조입니다. 다른 미술관에서 보지 못했던 피카소의 새로운 그림들이 많았어요. 워낙 장수하며 모든 사조를 다 거쳐갔고 작업 분량도 방대하다 보니, 피카소는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전시실에 걸려있는 <앙티브의 야간낚시 Pêche de nuit à Antibes, 1987-1988>는 양모에 태피스트리로 제작한 작품으로 1939년 8월에 그려진 원화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 New York)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격동의 시대 중심에서 피카소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어요. 저는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공포심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 평생 딱 한번 밤바다에서 야간 낚시를 해보았는데 그때부터 밤바다를 무서워하게 되었거든요. 보라색과 녹색의 대비로 밤과 바다를 표현한 것은 기가 막힌 팔레트의 조합입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또 다른 연인 도라 마르 (Dora Maar, 1907-1997)와 함께 하였는데, 그녀 역시 사진작가이자 화가였지요. 그녀는 초현실주의를 탐구했고 피카소와 정치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이는 피카소의 작품활동에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합니다. 특히 당시에 피카소는 반전 메시지를 담은 <게르니카, 1937>를 제작했고, 도라 마르는 제작과정을 사진으로 남겨줬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의 작품 245점 이외에도, 프랑스 남부에서 작업을 많이 했던 Joan Miró (호안 미로)와 Fernand Léger (페르낭 레제)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태어나 앙티브에서 사망한 작가 Nicolas de Staël (니콜라 드 스탈, 1914-1955), 역시 앙티브에서 사망한 Hans Hartung (한스 하르퉁, 1904-1989, 독일), 모나코에서 활동한 Kostia Terechkovitch (콘스탄틴 테레치코비치, 1902-1978, 러시아), Paul Leuquet (폴 뢰케, 1932-2023, 프랑스 보르도), Claude Raimbourg (클로드 랭부르그, 1935-, 프랑스), Germaine Richier (제르멘 리시에, 1902-1959, 프랑스) 등 다소 낯선 작가들의 회화와 조각품도 지중해와 잘 어울렸어요. 특히 뒤뜰에 놓인 니스 출신 작가 아르망 (Arman, 1928-2005)의 작품은 <À ma jolie. Hommage à Picasso 내 사랑, 피카소에 대한 경의> 제목을 가지고 있었어요.
비록 두 달여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피카소는 이곳에서 다친 부엉이를 발견하여 구조했고 보살폈어요. 그 부엉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뒤에 부엉이 작품도 보이시지요? 이후 제작한 도자기에 부엉이가 많이 등장합니다. 역시 피카소가 스쳐 지나간 곳은 어느 한 곳도 소홀히 볼 수가 없네요. 다음 기회에 프랑스 남부에 가게 되면 피카소 국립 미술관도 가보아야겠어요.
다음은 피카소 이름이 붙은 미술관들이에요. 참고하세요~! (퍼옴)
*Museo Casa Natal Picasso (Málaga, Andalusia)
Also in Málaga, this museum occupies the building where Picasso lived during his childhood before his family moved to La Corunha and then Barcelona.
*Museo Picasso (Málaga, Andalusia)
The Picasso Museum in Malaga is the result of the collaboration of the local institutions with the heirs of Pablo Picasso. Christine and Bernard Ruiz-Picasso (grandson and daughter in law) donated over 200 pieces to the Foundation that created the museum,
*Museo Picasso - Colección Eugénio Arias (Buitrago del Lozoya, Madrid)
*Casa Museo Picasso (A Coruña, Galicia)
The house where Picasso and his family lived in A Coruña between 1891-95 is now a small museum
*Centre Picasso (Gosol, Catalonia)
Gosol is a little village in the Pyrenees, 2 hours drive from Barcelona, that Picasso visited in 1906 together with his girlfriend Fernande Olivier, invited by a friend.
*Centre Picasso (Horta de Sant Joan, Catalonia)
Picasso visited twice this small village near the Ebro river, 2.5 hours drive from Barcel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