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했던 마티스
Henri Émile Benoît Matisse 1869-1954
19세기말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은 공통적으로 파리를 흠모하며 파리에 모여들어 함께 예술을 사랑하며 교류했어요. 그러나 평화롭던 파리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이들을 흩어지게 했지요. 이들 중 일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곳은 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코트다쥐르(Côte d'Azur, 영어: 리비에라)였어요.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1869-1954) 역시 결국에는 남부로 이동해서 정착한 한 명이 되었지요. 아마도 니스는 검증된 지상 천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니스에는 마티스 미술관 (Matisse Museum)이 있어요. 지대가 높고, 벨 에포크시대 저택들이 아름다운 시미에즈(Cimiez)에 위치한 미술관의 입구 왼편에는 AD 63년 고대 로마 네로 (Nero) 황제에 의해 설립된 속주국인 알프 마리티마에 (Alpes Maritimae) 시대의 고대 경기장, 원형 극장, 교회 등의 유적지 발굴 현장이 있어요. 17세기에 지어진 빌라는 1963년부터 마티스 미술관이 되었지요.
미슬관에 들어서면 대형 컷아웃 (cut-outs)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마티스가 노후에 병상에 누워서 제작한 작품으로 그의 컷아웃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가로길이가 8m 높이는 4m가 넘는 작품이에요. 그는 밝은 색의 구아슈 종이를 잘라내어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벽에 붙여보며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대칭으로 오리며 꽃과 과일을 표현했어요. 그의 말년에 제작된 이 컷아웃은 마티스에게는 우상향만 있을 뿐 하강곡선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 북동부의 Le Cateau-Cambrésis에서 출생한 마티스가 왜 니스까지 내려왔는지를 그의 작품과 인생 여정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이곳의 컬렉션은 오랜 시간 마티스가 가지고 있던 작품들과 자녀들에게 상속된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도자기,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마티스의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가구와 소품도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사물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었어요.
특히 이곳에는 마티스의 조각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도 등장하던 작은 조각품은 총 72개가 제작되었는데 그중 54개가 이곳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마티스가 작업한 조각의 절반 이상이 1900년에서 1909년 사이에 만들어졌어요. 특히 마티스의 초기 조각품인 <Le Serf, 노예>는 그가 처음으로 만든 인물 조각이자 실제 모델을 관찰하며 제작한 유일한 남성 누드예요. 그는 자신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물화도 풍경화도 아닌 인물이라고 했지요. 마티스는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 어떤 조각에도 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적이 없어요. 이 작품은 창가옆에 서 있습니다.
마티스가 어린 시절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 프랑스의 고등 미술교육기관)에서 공부할 때에 그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어요. 어릴 때 그려서 풋풋함이 느껴지는, 다른 대형 미술관에서 보기 힘든 그림들이에요.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안고 배우면서 그린 그림이라서 그런지 판매하지 않고 평생을 소장했답니다.
그는 여행을 많이 한 작가예요. 알제리(1906년),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1912년, 1913년), 타히티 (1931년) 등을 다녀서 그런지 이국적 모티브들은 그의 회화에 녹아들었어요. 여행이나 심경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작품의 분위기가 바뀌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또한 수집가였던 그는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에 관심을 가졌고 그곳의 유물을 수집했어요. 이슬람 마샤라비야 (Mashrabiya) 문양의 장식품과 무어인(Moor, 이슬람계로서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향로, 중국 화병, 티베트의 불교 그림인 탕카 (thangka painting)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통하여 비서양 문화를 만나는 것은 마티스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MATISSE MEDITERRANEE(S)> 기획전이 진행 중이었어요. 전 세계를 두루 다녀본 마티스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지중해. 이곳에서 30년 이상을 머무르며 작업한 작품들을 통하여 마티스의 눈에 비친 매력적인 니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중헤의 모습도 변해가고 알록달록한 색상들로 채워지며 부드러워집니다.
마티스는 1917년에 기관지염을 치료하고자 처음으로 따뜻한 니스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 매년 겨울마다 니스를 찾았어요. 1918년 11월, 호텔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 <Tempete a Nice, 니스의 폭풍>은 낯선 니스의 풍경이에요. 니스에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때가 있구나 새롭네요. 마티스는 따뜻한 날씨를 기대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니스에 왔으나 한 달 내내 비가 왔어요. 악천후에 실망한 그는 니스를 떠날 결심을 했는데, 그를 붙잡으려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다음날 비가 그치고 환상적인 날씨가 되면서 그는 감탄하게 됩니다. 그는 니스의 바다와 하늘의 빛을 발견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고, 매일 아침 그런 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믿을 수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마티스는 강렬한 레드를 많이 사용했지만, 초록색과 파란색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가 말년에 애정한 파란색은 바다에서 영감 받은 푸른색이 아니라 연구해서 얻어낸 색이었지요. 그는 어느 지점의 파란색은 빛과 색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에는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야자수와 석류도 그냥 채택된 모티브가 아니었어요. 타히티 여행에서 영감 받은 야자수, 방스에서 지낼 때 창문 앞에 있던 야자수와 석류 등 작가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림이 더 자세히 보이는 경험이었어요.
그가 절정기에 작업한 화려한 회화들에 비하면 이 미술관의 컬렉션은 잔잔하고 소박한 그림들이지만, 초기 작품 속에서도 조용하게 마티스가 느껴지고, 훗날 그려진 대작들에서도 그 느낌대로 마티스가 보였습니다.
그의 회화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해 가는지를 살펴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기작품들은 이곳에서 만나볼 수 없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마티스의 대작들은 다른 대도시 미술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곳에서는 여행을 좋아했던 마티스 인생을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