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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Jan 22. 2024

Kenwood House

런던: 최초의 흑인귀족


London Kenwood The Iveagh Bequest (Kenwood House)


네덜란드 황금기의 대표화가 Johannes Vermeer의 몇 점 안 되는 작품의 소장처를 살펴보다가 런던의 Kenwood house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오, 여긴 어딘데 그 귀한 37점 중의 한 점을 소장하고 있는 걸까? Vermeer의 그림을 만나볼 목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햄프스테드 히스 Hampstead Heath 공원은 런던 도심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지는 않다. 근처 Archway역에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이동해도 되고 걷기에 부담 없는 거리라서 슬슬 걸어가도 된다. 오래된 동네의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지나면 Hampstead Heath 공원 북동쪽 끝자락이 나오고 공원 옆에 자리 잡은 기품 있는 주택들의 자태를 감탄하며 걷다 보면 금세 Kenwood house에 도착하게 된다.



Kenwood house는 건물 자체도 우아하지만, 건물을 둘러싼 정원과 호수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방문한 가을날의 단풍 뷰는 풍경화 그 자체였다. 역시 내 눈에만 아름다운 건 아니었나 보다. 영화 Notting Hill과 Sense and Sensibility를 이곳에서도 촬영했다고 한다. 건축물과 소장품도 멋지지만, 아름다운 정원은 기대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정원에 있는 The Brew House에서 스콘과 함께 한 커피 한잔의 여유도 너무 좋았다.




1616년경에 최초로 지어졌던 Kenwood house는 이후 여러 번 소유주가 바뀌다가 1754년에 William Murray (1705-1793)가 매입하면서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건축가인 Robert Adam  (1728-1792)에 의해 새로 건축되었다. 1층으로 들어가서 왼편 첫 번째 방은 건축가인 Rober Adam이 가장 공을 들였다는 Library가 나온다. Rober Adam은 26세인 1754년부터 5년간 당시 귀족자제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그랜드 투어를 하게 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이탈리아 예술가 밑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런던으로 돌아와서 자리를 잡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작업하면서 그의 ‘아담 스타일’로 엄청나게 인기를 얻게 되고 건축과 인테리어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Library의 천장은 로마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돔 모양으로 선이 매우 아름답고 고급스럽다.


(왼쪽벽의 그림) David Martin, Portrait of William Murray, 1st Earl of Mansfield (1770)




이 저택은 William Murray (Mansfield 백작) 사후에는 조카에게 상속되어 관리되다가 1925년이 되어서는 아일랜드에서 Guinness 맥주회사를 운영하던 Edward Cecil Guinness (Iveagh 백작)(1847-1927)이 매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1927년에 사망하면서 정작 그는 이곳을 누려보지 못하였고 Kenwood house는 63점의 컬렉션과 함께 국가에 기증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름답고 평화로움을 담은 올드마스터들이 즐비하게 걸려있다. 특히 천사처럼 예쁜 어린이의 모습과 과장되게 환상적인 풍광 속의 여인들, 사랑스럽게 묘사된 동물 그림들이 이곳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데 이는 어린이와 여성의 초상화를 선호한 Iveagh 백작의 취향이었을 거다. 아름다운 Music Room을 지나 반대편의 Dining에 들어서면 드디어 귀하고 귀한 Vermeer의 기타를 연주하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사이즈는 작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Rembrandt의 자화상 (1665), Frans Hals의 친구의 초상 (1633)등의 명작들을 만나 볼 수 있다.


Johannes Vermeer, The Guitar Player (1672)
(오른쪽) Henry Marriott Paget after A S Cope, Edward Cecil Guinness, 1st Earl of Iveagh by Paget (after


Edward Cecil Guinness는 겨우 20세인 어린 나이에 Guinness 양조장을 물려받아 세계 최대의 규모로 성장시키고, 1886년에는 Arthur Guinness, Son and Company를 런던 증권 거래소에 상장시키며 막대한 부를 이루게 된다. 억만장자가 된 그는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을 기부하고 의학과 과학분야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자선가로서도 뜻깊은 업적을 남긴다. 그는 아일랜드와 런던 등 여러 곳에 집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집안을 가득 채울 예술 작품을 구입하게 된다. 일찍이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지만 컬렉션의 대부분은 1887년에서 1891년까지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수집되었다. 그는 런던의 Bond Street을 거닐다가 들어가게 된 딜러샵을 통하여 212점의 회화를 구입하고 여러 곳의 집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의 컬렉션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완성도가 매우 높다. 초상화가인 Joshua Reynolds경의 작품은 무려 36점이나 구매했다. 그의 컬렉션 중에서 가장 고가로 구입한 작품은 Rembrandt (1606-1669)의 자화상으로 1888년에 £27,500에 구매했다. Rembrandt의 자화상은 대략 40여 점 정도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가 59세에 그린 작품으로 아마도 최고 후기의 자화상일 거다. Vermeer의 기타 치는 소녀 그림은 £1,050를 지불하였다고 한다. Vermeer 그림은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했다고는 하지만 200여 점을 한 번에 사들인 그의 부는 규모를 가늠할 수가 없다.


Rembrandt, Self-Portrait with Two Circles (1665–1669)


Kenwood house 입구에 들어서면서 걸려있는 초상화 두 점이 궁금하다. 특이하게도 흑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입구에 걸려있는 거 보니 이곳과 연관된 중요한 인물인듯한데 누구일까. 오른쪽은 대법관이 되기 전 젊었을 때의 William Murray의 초상화다 (Jean Baptiste, 1684-1745). 왼쪽 그림의 주인공은 Dido Elizabeth Belle로 Mikéla Henry-Lowe (b.1993)의 2021년도 작품이다. 이 작가는 런던에 거주하는 자메이카 예술가로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초상화로 찬란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면 Dido Elizabeth Belle (1761-1804)은 누구일까. 그녀는 노예였던 Maria Belle과 왕립 해군 장교인 John Lindsay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이 둘이 결혼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여러 기록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로 언급된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18세기에 혼혈 아이가 영국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자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고 게다가 그녀는 정식 교육을 받고 상류층 여성들과 교류하며 30여 년간 Kenwood house에 머무르면서 낙농업을 감독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녀는 왜 이곳에서 지내게 되었을까.



Mikéla Henry-Lowe (b.1993), Dido Elizabeth Belle (2021)


1754년에 Kenwood house를 매입한 William Murray는 Dido의 아버지인 John Lindsay의 삼촌이고, Dido에게는 할아버지가 된다. 서인도제도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1765년에 Maria Belle과 사생아인 딸 Dido와 함께 귀국한 John Lindsay는 자녀가 없었던 그의 삼촌 William Murray에게 Dido의 양육을 부탁한다. William Murray (Mansfield 백작 1세)는 1756년에서 1788년까지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법관이었다. 노예무역의 합법성을 조사하는 여러 사건을 다뤘고 1772년의 재판에서 노예제도를 “혐오스럽다”라고 묘사한 기록으로 보아 노예무역에 반대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유언장에는 조카 Dido는 자유로운 여성이라 명시되었고 그녀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며 재정적인 지원과 유산도 남긴다. 다른 사촌들과 비교했을 때 Dido가 상속받은 금액은 완벽하게 동등하지는 않아서 아쉽지만, 여러 정황으로 충분히 귀족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녀는 영국 최초의 흑인 귀족이었을 거다. 그녀의 인생은 2014년도 영화 <Belle>로도 제작되었다.


David Martin, Dido Elizabeth Belle Lindsay and Lady Elizabeth Murray (1778)


그녀의 초상화가 한 점 남아있는데 Kenwood house에서 함께 자란 사촌 Elizabeth Murray와 함께 있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Dido는 전혀 노예의 딸로 보이지 않는다. 여느 귀족집안의 딸처럼 사촌인 Elizabeth와 매우 동등하게, 오히려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이렇게 흑인과 백인이 동등하게 등장하는 모습은 18세기 영국 미술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Dido가 입고 있는 실크드레스와 진주목걸이도 고급스럽다. 단지 깃털 달린 터번과 들고 있는 열대과일은 그녀의 사촌과는 조금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그림은 스코틀랜드 초상화가 David Martin (1737-1797)의 작품으로 훗날 Murray에게 상속받은 Kenwood house를 매각하면서 스코틀랜드 Perth시에 위치한 Scone Palace으로 이 그림을 옮겨 보관하고 있다. 이후 그녀는 영국으로 이민온 프랑스인과 결혼하였고 세 자녀도 두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영화 같은 스토리이다 보니 영화로도 나와있나 보다. 이 숨겨진 스토리를 알고 다시 방문해서 보면 더 재밌을 거 같다.


자료조사를 하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 영국인들의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세례 받은 날짜, 그곳에 참석한 사람이 누구인지, 상속뿐만 아니라 용돈으로 지출한 내용까지도 기록해 두고 보존한 것을 보니 매번 놀라지만 참 대단하다. 버리는 게 하나도 없는 나라인 거 같다. 정원의 조각들은 계절마다 다르게 다가올 듯하여 다른 계절에도 또 방문해 보고 싶다. 런던 도심에서 멀지 않으니 풍광과 스토리를 한 아름 담아 오길 반나절 코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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