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 golden age Feb 11. 2024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파리: 아름다웠던 시절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인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전 유럽이 평화로웠던 1800년도 후반부터 1914년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태평성대의 시기를 말한다. 문학, 철학, 미술등의 중심지였던 파리에는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서로 친구가 되었고 화려한 작품의 꽃을 피웠다. 흑백 필름으로 봐도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웠던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Musée d'Orsay 오르세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오르세 미술관이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면 화려했던 19세기의 기차역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텔등의 부대시설까지 갖추고 있던 기차역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세 곳에 자리한 큰 앤틱 시계가 기차역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찻길 자리는 조각상으로 채우고 양옆 플랫폼은 층층이 테마별 회화로 채웠다. 만국박람회에 맞춰서 1900년에 개통된 오르세역은 1939년까지만 해도 프랑스 남서부 노선의 종착역으로 이용되며 하루에 200편의 기차가 오가는 중요한 곳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기차는 점점 길어졌지만 플랫폼을 더 길게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이 역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전쟁 중에는 소포 보관소와 포로들이 대기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전쟁 후에는 영화 촬영지로도 활용되었으나 이후에는 호텔등 다양한 건축방안이 논의되었다. 센강과 건너편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튈르리 정원등의 아름다운 주변환경과 현대적 건축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 내며, 1978년에 기존의 외형을 유지하며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발표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음에도, 각계각층의 여론을 수렴하여 도출된 결과라니 프랑스가 도시계획과 예술보존에 얼마나 신중했는지가 느껴지며 진심으로 부러운 마음이 든다.



1977년 퐁피두 센터가 개관하면서 고대와 중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박물관과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가교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오르세가 맡게 되었다. 1986년 12월 오르세가 개관하였을 때 많은 미술 애호가들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미술관 그 자체“라며 성공을 축하했다. 오르세는 루브르 박물관과 Petit Palais 그리고 Jeu de Paume에서 조각품과 회화작품들을 가져왔다. 소장품은 1848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19세기 서양 미술의 흐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여 회화, 조각, 건축, 장식 예술품,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특히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 다 나열할 수도 없이 많은 유명 작가들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모네와 르누아르 시슬리는 종종 함께 그림을 그리며 의지하던 좋은 친구였는데 이곳에 그들의 작품이 함께 걸려있다니 그들 생전에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을까.



2010년 1월, 딸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짧은 휴가를 내고 에어텔 패키지만 예약하고 딸과 단둘이 파리 여행을 했다. 무척 추웠고 튈르리 정원에는 눈이 쌓여있었다. 그즈음에는 해외 미술관을 주제로 한 도서가 많이 출판되었었다. 그 책들을 읽으며 미술관 여행을 꿈꾸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실현이 되었고, 이 여행이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꿔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열 군데가 넘는 미술관을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면 중1도 어린 나이인데 용케도 군말 없이 잘 따라다닌 거 같다. 물론 중간중간 기념품도 사주고 예쁜 초콜릿 가게도 들어가며 당근을 줬지만. 리사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동화책 MADELINE (파리의 기숙사에서 지내는 12명 소녀의 스토리, 주인공은 7살 막내)의 도시에 와서 무척 신기했을 거다. 다행히도 그때 파리 여행은 또렷이 기억을 하는듯하나, 바로 전 해 여행 중에 들렸던 미술관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고생스러운 여행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는 거 같다.



오르세 미술관은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설렌다. 너무 많은 작품이 있어서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허둥댈 수 있지만 효율적으로 관람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오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뮤지엄에 도착하면 무조건 5층으로 올라가서 오르세의 상징인 벽시계 앞에서 사진부터 찍는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아침시간에 여유롭게 인증 샷을 남긴 후에 5층에 몰려있는 인상파 그림을 보기 시작한다. 이곳에는 그동안 책에서 봐왔던 그 유명한 그림들이 놀라울 정도로 다 모여있다. 특히 Édouard Manet (1832-1883)의 주요 작품들이 인상 깊었다. 퇴폐적이라 비난받았던 마네의 <The Picnic, 1863>, 다양한 해석이 있는 <Olympia, 1863>, 그리고 <The Fife Player, 1866>와 함께 모네의 초기 작품들, 그리고 반고흐의 대표작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 언급할 수도 없이 많은 귀한 작품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충분히 다 보고 난 후에 5층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하게 빵과 커피도 마시며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 카페에서도 센강 쪽으로 외벽에 있는 큰 시계를 하나 더 볼 수 있다. 5층에 더 이상 아쉬움이 없을 때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인상파에 영향을 끼친 화가들의 작품을 본다.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1857>과 <만종, 1859> 도 놓치지 말자.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다.


 


인상파 작품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편이다. 19세기에는 증기 기관차도 생기며 이동이 편리해지기도 했고, 1841년에는 밀봉이 가능한 튜브 물감이 발명되면서 야외 작업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Claude Monet (1840-1926)의 <루앙 대성당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작품은 모네가 1892년부터 노르망디의 작은 도시 루앙에서 2년여간 머무르면서 그렸다. 대성당 길 건너편에 임시 스튜디오를 임대하고 총 30여 점의 루앙 성당을 그려가며 빛을 연구했다. 그의 나이가 52세 정도 되었을 때니 이미 인상파 화가로 자리 잡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던 시기였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회화에 한계를 느끼며 불만족스러웠고 이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건초더미와 루앙성당과 같은 단일 주제를 가지고 빛 표현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계절과 날씨, 빛의 움직임에 따라서 피사체가 변화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다양한 색을 사용하여 피사체가 품은 빛을 표현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모네 같은 대작가도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그리지는 않았구나. 끊임없이 관찰하고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성당은 하나하나 독립적인 작품으로만 봐도 모두 다 명작이다. 이런 집요함과 끈기, 그리고 고찰의 과정이 있었기에 이후에 <수련> 시리즈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twitter@MuseeOrsay


오르세 첫 방문 때 뮤지엄샵에서 아주 두꺼운 화집을 샀었다. 리사가 골랐는데 고양이가 들어간 그림들을 모아둔 꽤나 무거운 소장용 책이었다. 나는 그 해 봄, 첫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이후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고양이들을 입양해서 지금은 총 네 마리를 키우고 있다. 딸도 독립해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서 8년째 키우고 있다. 고양이 덕분에 혼자 유학하는 생활이 외롭지 않았고 책임감도 느꼈다고 한다.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양이 집사 인생에 있어서 고양이 화집이 복선의 역할을 한듯하다. 방문했던 뮤지엄에서 도록을 구매하는 건 나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얇은 책이건 두꺼운 책이건 한 권은 꼭 사서 이고 지고 가져온다. 세월이 지나면 내가 다녀온 곳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진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다 찾아볼 수도 있지만, 서가 한켠을 뮤지엄 도록으로 채워두고 언제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아날로그가 더 좋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에는 절대로 안 꺼내보겠지만, 그저 기념품이고 나중에 나이 들어서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게 될 때 다시 봐야지 하는 마음에 추억을 모아두는 정도 되는 거 같다.


미술관에 다닐 때 특별한 작품은 사진을 찍어 두는 것도 나만의 컬렉션을 갖기에 좋은 방법인 거 같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이라면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떠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피에타 Pietà>나 <최후의 만찬> 작품을 만날 때마다 사진으로 간직한다거나, 피카소의 여인들 초상화는 작품수가 워낙 많아서 자주 만나게 되는데 사진으로 남기고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보통 한 작가는 비슷한 작품을 반복해서 그리는데 반 고흐는 해바라기를 여러 점 남겼다. 화병에 담긴 해바라기 작품은 총 6점이 남아있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해바라기 꽃도 여러 점이다. 같은 주제지만 다른 색감과 붓터치, 그리고 몇 송이의 해바라기가 화분에 꼽혀있는지 등을 비교해도 좋을 거 같다. 간혹 기획전은 사진이 금지이니 주의하며 에티켓도 지키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로댕 미술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