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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Feb 12. 2024

루브르 박물관 Musée du Louvre

파리: 보물창고

Musée du Louvre


많은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고 동경하는 도시가 파리가 아닐까 싶다. 나도 파리를 처음 갔을 때 시내에 들어서면서 거리가 돌바닥으로 바뀌던 영화 세트장 같은 첫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곳을 보아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예쁜 도시에서 조차도 나의 첫 방문지는 Musée du Louvre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두 번째 파리 방문 때 까지도 루브르 박물관부터 갔다.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러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듯이 루브르부터 보고 나서야 임무를 수행했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웬만하면 그곳을 찾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 지치기 때문이다. 시차도 있어서 피곤한데 한번 들어가면 어찌나 넓은지 출구를 찾아 나오기까지 무조건 몇 시간이 걸린다. 작품이 너무 많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이곳에서 탈출하려는 마음에 직진만 하는데도 빠져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박물관 동선을 계산해 보면 12km 정도가 된다고 한다. 솔직히 루브르 안에서 헤맬 시간에 바깥에서 먹고 보고 즐길 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고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갈 필요가 있겠냐고 말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알 수 없는 이끌림 때문에 한동안 안 찾았던 그곳을 2019년도에 다시 방문했다. 이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박물관에서 추천하는 동선을 따라 주요 작품만 보고 빨리 나오는 지혜로움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아쉽기도 했다. 아쉽다니 애정이 생겼나 보다.



아쉽게도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2019년도 기준으로 루브르 박물관은 615,797점을 소장하고 있고, 그중에서 3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한 작품 앞에 서서 30초씩만 본다고 하더라도 모두 다 보는데 100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처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싶은 작품 몇 개만 공략하던지 아니면 박물관 추천 동선을 선택하여 쓱 보고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한다. 팬데믹시기에는 482,943점의 작품을 업로드시켜서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니 이 또한 너무 놀랍다. 자료화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동원되었을까. 약 61만 여점을 소유한 것도 놀랍지만, 모든 소장품에 번호를 부여해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은 더 놀라울 뿐이다.



1190년 루브르 자리에는 북쪽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요새가 지어졌고, 16세기에는 프랑수아 1세가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하며 왕궁으로 쓰였다. 1682년 루이 14세 때는 왕궁을 베르사유로 옮기면서 루브르는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일부는 왕실 회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1791년에 프랑스혁명을 겪으면서 루브르는 비로소 공공 미술관으로 대중들에게 개관이 된다. 이후에는 한때 나폴레옹 박물관이라 불렸을 정도로 나폴레옹은 루브르 역사에서 빠질 수가 없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정복하던 1797년에서 1815년 사이에는 인근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북유럽, 스페인, 포르투갈, 이집트, 시리아 등지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예술품을 약탈하여 프랑스로 가져오게 되었고, 이에 따라 루브르의 소장품 규모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나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소집된 비엔나 회의에서는 나폴레옹이 약탈한 작품들의 반환을 명령하였고 예술품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대혼란을 겪게 된다. 당시 루브르 박물관장은 물리적으로 약탈품을 전부 다 반환할 수도 없었고, 일부는 고의로 지하실에 숨겨 두었다고도 한다.


루브르에는 매일 평균 15,000명이 방문한다. 그러니 인기 작품 앞에 가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나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작품 앞에는 관람객이 가득하다. <모나리자>를 보는 게 목표라면 박물관 오픈 시간보다 한참 먼저 가서 줄을 서 있다가 입장을 하고, 동선을 미리 잘 파악해 뒀다가 헤매지 않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도달해야지만 작품과 가깝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요 인기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워낙에 넓고도 넓어서 15,000명의 관람객과 부딪히지 않고도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기한 곳이다. 박물관 곳곳에는 간혹 유령이 나타난다는 스토리도 전해지니 매우 흥미롭다.



원래는 박물관 입구가 길가 쪽으로 여러 곳에 있었는데 몰려드는 관람객을 원활하게 입장시키기 위하여 중앙에 입구를 만드는 방안이 모색되었다. 1981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은 그랜드 루브르 프로젝트를 발표하였고, 이듬해에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I.M.Pei가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프로젝트는 공항이나 터미널처럼 넓은 공간에서 티켓팅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분산되는 구조로 고안되었다. 1989년 완공된 피라미드는 파리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나 건축가 선정 단계에서부터 완성된 후까지 반대와 비난여론이 많았다. 에펠탑 건설 때도 그랬듯이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라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또한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루브르 안뜰에 건축되기에는 부적절하고, 고전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인 루브르와 모던한 유리 건축물은 어울리지 않으며,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는 프랑스의 랜드마크를 맡을 만큼 프랑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미테랑 대통령을 공격했다. 그러나 에펠탑도 그랬듯이 피라미드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보면 볼수록 더 멋지게 느껴진다. 아직 어둑어둑한 겨울의 이른 아침에 도착한 피라미드 앞뜰은 조명과 여명이 한데 어우러져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고미술품과 유물들을 만나러 들어가는 관문으로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는 몰락을 예상하였고, 루브르의 컬렉션을 파리 외곽으로 분산시키기로 결정한다. 1939년 8월 25일부터 박물관 내부 보수라는 공식적인 명목으로 3일간 폐쇄하고 1862개의 나무상자에 주요 작품을 담아 트럭 203대에 나누어 싣고 루아르 계곡의 Chambord 성으로 운반한다. 상자마다 예술작품의 중요도에 따라서 노란색, 녹색, 빨간색 원을 그려서 표시했다고 한다. 모나리자가 들어있는 박스에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3개나 그려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표시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가장 마지막으로 독일의 최후통첩이 만료되는 1939년 9월 3일에 옮겨졌다. 나무 상자에 들어가지 않는 큰 작품들은 담요로 덮어 씌워 운반했다. 1862개는 전체 작품 수량에 비하면 엄선된 일부 작품일 뿐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루브르 지하로 옮겨졌고, 전쟁 내내 나치에게 약탈당하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미 옮겨진 작품들도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여러 번 이동되었다고 한다.


루브르에서 유명한 작품은 너무 많지만 역시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루브르의 자랑이다. 기원전 220년에서 19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조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관장하는 여신인 니케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2.75 미터이다. 발굴 당시 머리와 양팔이 잘린 채로 남아있었다. 로도스섬의 주민들이 에게해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모트라케섬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각상은 1863년 프랑스의 영사 겸 고고학자인 샤를 샴푸아소가 발견했으며, 1884년부터 루브르에 소장되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더 먼저 루브르에 소장된 그리스 조각상이 있으니 <밀로의 비너스>이다.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너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대리석상이다. 높이는 2미터가 넘고 8등신의 황금비율이다. 두 팔은 남아있지 않지만 다양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왼팔로는 사과를 손에 쥐고 있었을 것이고 오른손으로 흘러내리는 옷을 잡고 있었을 거라 추정한다. 이 작품은 1820년 4월 8일에 당시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던 밀로스섬에서 한 농부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당시 오스만 제국 주재 프랑스 대사가 구매하여 1821년부터 루브르에 소장되었다.



특히 이집트 고미술 컬렉션에는 기원전 3300년경의 칼과 기원전 2600년경의 조각상 <앉아있는 서기관>과 <타니스의 대 스핑크스> 등 수천 년 된 유물들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어마어마한 35,000점의 소장품이 있으니 취향대로 요령껏 보면 될 거 같다.


왼쪽 <앉아있는 서기관>          오른쪽 <타니스의 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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