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 golden age Feb 20. 2024

앱슬리 하우스 Apsley House

런던: 세계사를 바꾼 영웅의 집

London Apsley House


화려한 쇼핑가인 Piccadilly 거리. 11월 말부터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과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온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길을 따라 서쪽 끝까지 가면 하이드 파크가 나오고, 공원의 초입 코너에는 웅장한 저택 한 채가 어색하게도 덩그러니 홀로 서있다. 1962년도에 도로가 확장되기 전까지는 이 저택 옆으로 3채의 저택이 더 있었다고 한다. 저택 앞의 넓은 도로 가운데에는 웰링턴 장군이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이 서 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웰링턴 장군의 승전 기념 아치가 세워져 있다. 이 저택은 웰링턴 장군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타운 하우스로 장군과 관련된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며, 건물의 일부는 아직도 후손들이 자택으로 사용 중이다. 장군의 전쟁 역사가 깃든 곳이라 그런지 젊은 관람객은 보이지 않고 연세 드신 관람객들이 흥미로워하며 천천히 둘러보고 있다. 이 나라에는 보물이 너무 흔해서 그런 걸까, 이렇게 한산한 곳들이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1층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눈에 뜨이는 디지털 작품이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Sir Michael Craig-Martin (1941-)의 작품이다. 1817년 Thomas Lawrence가 그린 웰링턴 장군의 초상화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가만히 서서 보고 있으면 크레이그 마틴 특유의 단순한 레이아웃에 강한 파스텔색이 입혀져, 카멜레온처럼 아주 서서히 색상이 바뀌고 있었다. 1분 정도로 세팅되어 있는데 역시나 환상적인 색감이고 이 박물관에서 유일한 현대 작품이다.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미국과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문학과 역사도 공부했다. 1973년부터 런던의 Goldsmiths College에서 미술을 가르쳤고 오랫동안 미술대학의 학장으로 있으면서 영국의 대표 현대화가인 Damian Hirst를 포함한 YBAs (Young British Artists)가 탄생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나아가 영국이 현대미술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Tate Gallery의 이사로 있으면서 영국 현대 미술의 위상을 널리 알렸고, Freeze가 설립된 초기에는 앞장서서 예술가들에게 홍보하였다. 화가로서도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인데,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다니 더 반가운 작품이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디지털 초상화 <웰링턴, 2014>


토마스 로렌스경 <1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슬리, 1817>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세계사와 미술사는 톱니바퀴처럼 함께 움직이니 저절로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일단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몇 가지 질문이 생겼다. 첫째는 영국 이외의 다양한 나라들에서 가져온 기념품들이 1층 방안에 가득했는데 어떻게 수집하게 된 걸까. 둘째는 나폴레옹도 이 집에서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나폴레옹과 관련된 그림이 많았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은 적군의 관계인데 그 이상의 스토리가 있었던 걸까. 세 번째로는 귀하고 귀한 스페인 작가의 작품들이 비중 있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수집했을까. 이제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미술관을 다녀온 후에 거꾸로 역사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재미있다.


Apsley House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771년부터 1778년까지 영국의 총리였던 Apsley 경의 집이었다. 국무장관 중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른 총리가 건축한 집이었기에 이 정도 수준이 될 수 있었나 보다. 이 저택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나오는 첫 번째 집이었기 때문에 공식 주소는 아니지만 “Number One, London”  즉, 런던의 일번지라고 오랫동안 불렸다. 1805년에 이 저택은 매각이 되면서 Richard Wellesley라는 사람이 매입하였는데 그는 웰링턴 장군의 형이었다. 그에게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기면서 저택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때마침 성공해서 런던으로 돌아온 동생 Arthur Wellesley, 즉 Wellington 장군이 넉넉한 가격에 매입하며 형을 도와주게 된다.


 Arthur Wellesley, 웰링턴 공작(1769–1852)은 유럽의 격동의 시기에 군 생활을 시작하며 약 60번의 전투에 나갔고, 웰링턴 전쟁에서의 승리로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며 영웅이 되었다. 그는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는 워털루 왕자, 스페인에서는 공작, 포르투갈에서는 백작 등의 칭호를 수여받으며 전 유럽에서 나폴레옹의 정복자로 칭송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 유럽을 들 쑤신 나폴레옹 시대를 종식시켜 주었으니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감사했을까. 황제, 차르, 왕 등의 유럽의 통치자들은 앞다투어 감사의 선물과 트로피를 보내었고, 이렇게 선물 받은 그림, 조각품, 은제품, 도자기, 지휘봉과 검 등 3000여 점의 귀한 선물들로 박물관실을 만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옆에 큰 조각상이 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전성기인 1806년에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리오 카노바 (1757-1822)에 의해 제작된 나폴레옹의 대리석 조각상이다. 완성된 작품은 1811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에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가 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공개되었는데, 그는 이 작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나폴레옹이 퇴위된 후인 1816년에 영국정부가 이 조각을 사들이고, 당시 섭정 중이던 훗날의 조지 4세가 웰링턴 공작에게 이 조각상을 선물했다.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존경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고개가 좀 갸우뚱 해진다. 나폴레옹의 멋진 전신상을 굳이 웰링턴에게 선물을 해야 했을까?


안토니아 카노바 <평화를 이루는 화성 역의 나폴레옹, 1806>


2층에는 나폴레옹과 그의 가족들의 초상화도 여러 점도 볼 수 있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워털루 전쟁에서 처음으로 적군으로 만났음에도 웰링턴은 늘 나폴레옹을 존경한다고 표현했고, 그의 초상화도 직접 수집했다고 한다. 웰링턴이 프랑스 대사이자 연합국 점령군의 사령관으로 파리에서 지내던 1814년에 대사관저로 사용할 용도로 Hotel de Charost를 구매했다. 이 저택은 지금까지도 파리주재 영국대사의 공식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데, 나폴레옹이 가장 아꼈던 여동생인 Pauline Bonaparte가 살던 곳이었다. 폴린은 이 저택을 매각하고 엘바섬에서 유배 중인 나폴레옹을 찾아가서 필요한 재정을 도왔다고 한다. 이후 웰링턴은 런던으로 귀국하면서 Apsley House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의 컬렉션에는 프랑스 역사화가 Robert Lefèvre (1755-1830)가 그린 폴린 보나파르트와 나폴레옹 부부의 초상화가 있다. 폴린의 초상화는 웰링턴이 가장 아끼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Robert Lefèvre  Josephine 과 Napoleon


Robert Lefèvre <Princess Borghese, Pauline Bonaprte, 1806>


Apsley House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워털루 갤러리>이다. 세계사를 바꾼 이 승리를 기념하며, 왕실의 공작과 외국대사, 그리고 워털루에 참전했던 장군들을 초대해서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6월 18일마다 연회를 열었다. 그들의 연회 장면은 여러 그림에 남겨져 있고, 갤러리의 내부의 모습도 배경도 담겨 있는데 지금과 거의 비슷하다.  <워털루 갤러리>에는 스페인 왕실 소장품 200여 점 중에서 83점이 전시되어 있다. 1813년 6월 스페인 북부의 비토리아 전장에서 나폴레옹의 형이자 스페인왕이었던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열차를 탈취하게 되고, 마차에서 200여 점의 넘는 그림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그림들은 그가 도망가면서 스페인 왕실 컬렉션을 챙긴 것으로 액자는 없이 그림만 돌돌 말려져 있었다. 대부분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로 운반이 용이한 작품들로 급하게 골랐을 거다. 웰링턴은 이 작품들을 스페인에 돌려주고자 하였으나 복위한 스페인 황제 페르난도 7세가 정중히 사양하며 스페인을 구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공식적으로 웰링턴에게 선물하며 이곳에 소장되게 되었다. 이곳에는 무리요, 루벤스, 고야, 반다이크,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4점) 등의 명작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  <세비야의 물장수, 1622> , 고야의 <웰링턴 공작의 승마 초상화, 1812>를 놓치지 말자. 이 외에도 방마다 웰링턴이 직접 수집한 그림들과 화려한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의 역사를 바꾼 웰링턴, 런던에 동상이 여러 개 있을 만큼 영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이다.


워털루 갤러리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                                    <세비야의 물장수, 1622>


작가의 이전글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